<19>문화와 역사의 도량 : 서산대사 ‘호국’ 초의선사 ‘다도’… 문화로 흐르는 법맥
2019년 10월 16일(수) 04:50 가가
‘서산대제’
조선시대부터 행해져온 국가제향
서산대사 구국정신 기려
‘초의문화제’
차문화축제의 장…1992년부터 개최
초의선사 다도정신 계승
조선시대부터 행해져온 국가제향
서산대사 구국정신 기려
‘초의문화제’
차문화축제의 장…1992년부터 개최
초의선사 다도정신 계승
‘일체중생(一切衆生) 실유불성(悉有佛性)’. 모든 중생은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단다. 대승불교의 가르침인데, 그 말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범속한 이들도 지고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 아닌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속인들은 결코 부처가 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부처가 되고 안 되고는 욕심을 내려놓느냐에 달려 있기에 그렇다. 우리의 마음은 조변석개와도 같아 하루에도 수십 번 여반장 하듯 변한다. 마음은 욕망을 좇아 검게 물들기 십상이다. 매일매일 심중의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세상의 온갖 추함이 쌓이게 되는 이치다.
그래서 원효대사는 ‘발심수행장’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던가.
“천당에 이르는 길을 방해하는 이가 없는데 가는 이가 적은 것은 삼독의 번뇌로 자신의 재물을 삼은 탓이며, 지옥으로 오라 유혹하지 않았음에도 그 길로 가는 이가 많은 것은 사사로운 오욕으로 마음의 보배를 삼았기 때문이다.”
(無防天堂 少往至者 三毒煩惱 爲自家財(무방천당 소왕지자 삼독번뇌 위자가재)/ 無誘惡道 多往入者 四蛇五欲 爲妄心寶(무유악도 다왕입자 사사오욕 위망심보)
원효대사는 삼독(三毒)인 탐진치(貪瞋痴) 때문에 인간이 스스로 천당과 지옥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마음에 욕망이 발하여 그것의 과보인 고통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매일 같이 마음밭을 갈아엎어야 하는 이유다.
어느 결에 10월도 중순을 넘었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자 시간은 그야말로 또 줄달음친다. 산사에도 가을이 왔겠다. 해남 대흥사(주지 법상) 천년의 숲이 어른거린다. 미세한 바람에도 저마다의 색과 향기를 발하는 자연의 생리가 가없다. 사찰의 가을은 산문 밖의 가을처럼 종요롭고 아름다워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절경이고 절창이다.
머잖아 산사는 저마다의 색으로 옷을 갈아입을 것이다. 절정 때보다 지금이 아름다운 것은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비어 있음의 미학이다. 극치, 극미의 순간은 짧고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오히려 허무하기까지 하다. 만(滿)보다 조금 모자란 것이 아슴하면서도 아련한 정서를 환기한다.
대흥사는 자연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무형유산과 무형문화 또한 그에 못지않다. 전통 사찰의 보편성과 이곳만의 독특한 특성을 반영하고 있어서다. ‘삼재가 미치지 않는 땅, 진기한 꽃과 풀이 철마다 진경을 이루는 곳’이라는 서산대사의 혜안이 오늘의 유산과 문화에까지 투영돼 있다. 이곳의 무형유산은 다음과 같은 양상으로 전승돼 왔다.
“첫째는 수행을 하는 과정에 형성된, 자연스럽게 생성된 정기적인 일상의례와 함께 수행자로서 삶의 과정에 나타나는 통과의례, 스승과 선배 수행자에 대한 주기적인 추모의례를 들 수 있다. 대흥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서산대제와 초의선사 다례를 꼽을 수 있다. 둘째로 수행자들은 스스로의 수행을 이루는 것과 동시에 아직 불교를 만나지 못했거나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중생들을 교화하고 그들의 기원을 축원해주는 신행문화로서 각종 법회와 기도가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다.”(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학술총서-무형유산Ⅱ』, (주)도반HC 디자인사업부 비담, 234쪽)
비단 이것뿐만이 아니다. 중생들의 삶 속으로 들어온 문화도 있다. 템플스테이는 세상사람들이 산사의 체험을 공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시간이다. 또한 여느 사찰에서 행해지는 것과 같은 세시의례가 있는데 방생법회, 입춘기도, 동지기도, 사월초파일 등의 법회가 그것이다.
서산대제는 대흥사의 전통과 가치가 면면히 이어져오는 대표적인 국가제향이다. 서산대사의 구국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조선시대부터 행해져 왔다. 선조는 1602년 임란 때 수천의 승병을 이끌고 나라를 구한 대사의 공훈을 기려 당상관과 증호를 내렸다. 이후 정조는 1789년 유교식 사당인 표충사를 대흥사 내에 건립하게 하고 친필편액까지 내렸다.
대흥사 월우 스님은 “여러 문헌의 고증을 거쳐 지난 2012년 4월 28일 서산대사 탄신 492주년에 처음으로 향례를 재현했다. 2년 후 2014년 ‘탄신 494주년 호국대성사 서산대제’ 때는 3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제향을 올렸다”며 “이후 북한 보현사에 있는 서산대사의 또 다른 사당을 방문해 남북합동제향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초의문화제는 초의선사 다도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2년부터 개최해오고 있다. 한마디로 지역의 다인들과 함께하는 ‘차문화축제의 장’이다. 초창기와 달리 조금씩 프로그램에는 변화가 있지만 전통 차문화를 계승하고 선사의 다도정신을 받들자는 취지다.
아울러 이곳 템플스테이는 ‘지금을 디디고 내일을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른바 ‘디디고 템플스테이’. 한반도의 시작점 땅끝이자, 사시사철 새 기운이 움트는 대흥사에서 소중한 나를 돌아보자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요가 명상, 숲속 걷기, 108배, 만다라 심리치료, 나의 감정 찾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1박2일 자율형, 1박2일 주말형, 2박3일 특별체험형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밖에 일요가족법회, 보살계수계 산림법회, 어린이 글짓기 사생대회 등도 진행된다. 이 모든 무형문화와 의례는 대체로 선산대사와 초의선사를 둘러싸고 진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호국정신과 호법의지의 발현인 셈이다. 한편으로 차와 선의 일치를 지향했던 다선일여문화와 맥을 같이한다.
대흥사 경내를 둘러보고 나니 시간이 오후 나절로 줄달음쳐 있다. “땡그렁, 땡그렁” 풍경소리가 귓가를 아련히 물들인다. 대숲을 고요히 흔드는 소리, 구곡옥수를 어루만지는 풍경소리가 더없이 좋다. “풍경이 우는 건가? 바람이 우는 건가?” 아니 “마음이 우는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풍경과 바람, 마음 모든 것이 우는 것인가?”
불현듯 부처 열반 이후 법등을 이어온 제17조인 승가난제자존자가 가야사다(후일18조가 됨)와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두고 이들은 선문답 같은 대화를 나누었던 모양이다. 승가난제자존자의 말이다.
“마음의 법은 본래 생겨남이 없으나/ 원인이 있어 그 결과가 생겨나는 것이니라./ 인연과 종자가 서로 방해하지 아니하면/ 꽃과 열매 또한 그러하지 않으랴”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속인들은 결코 부처가 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부처가 되고 안 되고는 욕심을 내려놓느냐에 달려 있기에 그렇다. 우리의 마음은 조변석개와도 같아 하루에도 수십 번 여반장 하듯 변한다. 마음은 욕망을 좇아 검게 물들기 십상이다. 매일매일 심중의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세상의 온갖 추함이 쌓이게 되는 이치다.
“천당에 이르는 길을 방해하는 이가 없는데 가는 이가 적은 것은 삼독의 번뇌로 자신의 재물을 삼은 탓이며, 지옥으로 오라 유혹하지 않았음에도 그 길로 가는 이가 많은 것은 사사로운 오욕으로 마음의 보배를 삼았기 때문이다.”
어느 결에 10월도 중순을 넘었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자 시간은 그야말로 또 줄달음친다. 산사에도 가을이 왔겠다. 해남 대흥사(주지 법상) 천년의 숲이 어른거린다. 미세한 바람에도 저마다의 색과 향기를 발하는 자연의 생리가 가없다. 사찰의 가을은 산문 밖의 가을처럼 종요롭고 아름다워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절경이고 절창이다.
머잖아 산사는 저마다의 색으로 옷을 갈아입을 것이다. 절정 때보다 지금이 아름다운 것은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비어 있음의 미학이다. 극치, 극미의 순간은 짧고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오히려 허무하기까지 하다. 만(滿)보다 조금 모자란 것이 아슴하면서도 아련한 정서를 환기한다.
대흥사는 자연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무형유산과 무형문화 또한 그에 못지않다. 전통 사찰의 보편성과 이곳만의 독특한 특성을 반영하고 있어서다. ‘삼재가 미치지 않는 땅, 진기한 꽃과 풀이 철마다 진경을 이루는 곳’이라는 서산대사의 혜안이 오늘의 유산과 문화에까지 투영돼 있다. 이곳의 무형유산은 다음과 같은 양상으로 전승돼 왔다.
“첫째는 수행을 하는 과정에 형성된, 자연스럽게 생성된 정기적인 일상의례와 함께 수행자로서 삶의 과정에 나타나는 통과의례, 스승과 선배 수행자에 대한 주기적인 추모의례를 들 수 있다. 대흥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서산대제와 초의선사 다례를 꼽을 수 있다. 둘째로 수행자들은 스스로의 수행을 이루는 것과 동시에 아직 불교를 만나지 못했거나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중생들을 교화하고 그들의 기원을 축원해주는 신행문화로서 각종 법회와 기도가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다.”(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학술총서-무형유산Ⅱ』, (주)도반HC 디자인사업부 비담, 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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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스테이에서 지금을 디디고 내일을 본다’라는 의미의 대흥사 디디고 템플스테이 장면. |
비단 이것뿐만이 아니다. 중생들의 삶 속으로 들어온 문화도 있다. 템플스테이는 세상사람들이 산사의 체험을 공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시간이다. 또한 여느 사찰에서 행해지는 것과 같은 세시의례가 있는데 방생법회, 입춘기도, 동지기도, 사월초파일 등의 법회가 그것이다.
서산대제는 대흥사의 전통과 가치가 면면히 이어져오는 대표적인 국가제향이다. 서산대사의 구국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조선시대부터 행해져 왔다. 선조는 1602년 임란 때 수천의 승병을 이끌고 나라를 구한 대사의 공훈을 기려 당상관과 증호를 내렸다. 이후 정조는 1789년 유교식 사당인 표충사를 대흥사 내에 건립하게 하고 친필편액까지 내렸다.
대흥사 월우 스님은 “여러 문헌의 고증을 거쳐 지난 2012년 4월 28일 서산대사 탄신 492주년에 처음으로 향례를 재현했다. 2년 후 2014년 ‘탄신 494주년 호국대성사 서산대제’ 때는 3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제향을 올렸다”며 “이후 북한 보현사에 있는 서산대사의 또 다른 사당을 방문해 남북합동제향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초의문화제는 초의선사 다도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2년부터 개최해오고 있다. 한마디로 지역의 다인들과 함께하는 ‘차문화축제의 장’이다. 초창기와 달리 조금씩 프로그램에는 변화가 있지만 전통 차문화를 계승하고 선사의 다도정신을 받들자는 취지다.
아울러 이곳 템플스테이는 ‘지금을 디디고 내일을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른바 ‘디디고 템플스테이’. 한반도의 시작점 땅끝이자, 사시사철 새 기운이 움트는 대흥사에서 소중한 나를 돌아보자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요가 명상, 숲속 걷기, 108배, 만다라 심리치료, 나의 감정 찾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1박2일 자율형, 1박2일 주말형, 2박3일 특별체험형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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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에서 실시한 어린이 사생·글짓기대회 장면. |
이밖에 일요가족법회, 보살계수계 산림법회, 어린이 글짓기 사생대회 등도 진행된다. 이 모든 무형문화와 의례는 대체로 선산대사와 초의선사를 둘러싸고 진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호국정신과 호법의지의 발현인 셈이다. 한편으로 차와 선의 일치를 지향했던 다선일여문화와 맥을 같이한다.
대흥사 경내를 둘러보고 나니 시간이 오후 나절로 줄달음쳐 있다. “땡그렁, 땡그렁” 풍경소리가 귓가를 아련히 물들인다. 대숲을 고요히 흔드는 소리, 구곡옥수를 어루만지는 풍경소리가 더없이 좋다. “풍경이 우는 건가? 바람이 우는 건가?” 아니 “마음이 우는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풍경과 바람, 마음 모든 것이 우는 것인가?”
불현듯 부처 열반 이후 법등을 이어온 제17조인 승가난제자존자가 가야사다(후일18조가 됨)와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두고 이들은 선문답 같은 대화를 나누었던 모양이다. 승가난제자존자의 말이다.
“마음의 법은 본래 생겨남이 없으나/ 원인이 있어 그 결과가 생겨나는 것이니라./ 인연과 종자가 서로 방해하지 아니하면/ 꽃과 열매 또한 그러하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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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에서 실시한 어린이 사생·글짓기대회 장면. |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