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
2019년 09월 15일(일) 18:20 가가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중략)/ 쓸쓸한 낯이 옛날 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 같이 차게 울었다….”
백석(1912∼?)의 시 가운데 ‘여승’이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 어느 가족의 삶을 소재로 당대 민족의 아픔을 정치하게 그렸다. 여승이 되기 전 여인에게는 남편과 딸이 있었던 모양이다. 한때 농사를 짓고 살았지만, 남편이 돈을 벌기 위해 금광의 광부가 된 이후 소식이 끊겼다. 아내는 옥수수 행상을 하며 수년째 남편을 찾고 있지만 행방을 알 수 없다. 그러는 사이 안타깝게도 어린 딸은 죽고 만다.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에 딸을 묻은’ 여인의 심사가 오죽했을까. 세상사에 더 이상 미련이 없는 여인은 속세의 인연을 끊고 산문(山門)에 든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는 표현에서 보듯 여인의 슬픔과 회한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최근 이언주 의원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철회와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며 삭발을 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좌절하고 희망을 잃고 분노가 끓어오르며 잠을 못 이루는데 나라도 그 분노를 대신 표출해 주자”는 의미였다고 주장했다. 박지원 의원은 이에 대해 “국회의원이 하지 말아야 할 3대 쇼는 의원직 사퇴, 삭발, 단식”이라며 평가절하 했다.
표현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기에 삭발을 하든 그 행위에 의견 표명을 하든 뭐라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 의원은 지난 2017년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급식노동자들 파업에 대해 “그냥 밥하는 동네 아줌마들이다. 별 게 아니다. 왜 정규직화가 돼야 하냐”라고 말해 공분을 산 적이 있다. 우리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 그 가운데 이 의원이 ‘아줌마’라고 비하한 여성 노동자들 가운데는 혼자 생계를 꾸리고 아이들을 교육시켜야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시대는 다를지언정 시 ‘여승’의 주인공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진정성 있는 언행을 했다면 삭발은 ‘쇼’로 비치지 않았을 터다. 이 의원의 삭발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