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설산의 꿀벌
2019년 08월 27일(화) 04:50
흔히 사람들은 산에 가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어차피 내려올 텐데 왜 (산에) 오르냐?” 이에 대한 답변으로 영국 산악인 조지 맬러리(George Mallory)의 말이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린다. “산이 거기 있으니까.”(Because it is there) 그는 1924년 6월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서 실종됐는데 정상 등정 여부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기자는 지난 11~19일 7박9일간 ‘영·호남 중국 하바설산 원정등반대’와 함께 설산 정상에 올랐다. 하바설산은 중국 윈난성(雲南省) 상그릴라(香格里拉)현에 자리한 해발 5396m의 눈 덮인 산이다. 양자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는 옥룡설산(해발 5596m)이 마주 보고 있다. 두 설산 사이 협곡이 그 유명한 후탸오샤(虎渡峽)인데, 호랑이가 강을 건너뛰었다는 말이 전해져 온다. ‘하바’는 그곳에 사는 소수민족 나시족 언어로 ‘황금 꽃잎’(金子之花朶)을 의미한다.

산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마주한 설산의 풍광은 경이로웠다. 한여름 날씨임에도 정상부는 새하얀 만년설로 뒤덮여 있었다. 새벽 두 시에 해발 4100m의 베이스캠프를 출발해 정상까지 꼬박 일곱 시간 남짓 걸렸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공기도 희박해져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기가 너무 힘겨웠다. 만년설 구간에서는 등산화에 아이젠을 착용하고, 피켈로 얼음을 찍으며 올라야 했다.

만년설위에 우뚝 선 해발 5396m의 정상에는 정작 눈이 쌓여 있지 않았다. 또한 5~6명이 앉기 어려울 정도로 비좁았다. 정상 남쪽은 천길 낭떠러지였다. 숨을 고르며 여유를 찾고 고개를 돌려 보니 옥룡설산 등 주변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대원들은 정상 표지목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등정의 기쁨을 만끽했다.

하산 길에 눈 위에서 버둥거리는 꿀벌 한 마리를 봤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없는 5000m 고지대까지 벌은 왜 날아왔을까? 미물은 정점(頂點)에 오르려 애쓰는 현대인들에게 화두(話頭)를 던진다. 이상과 현실, 안주와 도전. 산에 오르는 이에게 자아와 정체성을 일깨우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 같은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송기동 문화2부장 son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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