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행진’
2019년 08월 26일(월) 04:50
“절대자인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불경스럽게 들리겠지만 이런 질문은 아주 오래전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초대 그리스도 교회가 낳은 위대한 사상가이자 ‘고백록’의 저자이기도 한 아우구스티누스가 이 질문에 대해 들었던 대답 중 하나를 농담조로 소개한 일화가 지금도 전해진다. “깊은 신비를 조사하려는 너 같은 자들을 위해 지옥을 만들고 계셨다.”

권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의 권위를 부정하고 자신을 구름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시도일 가능성이 크다. ‘전능한 하느님일지라도, 자신의 숨겨진 신비를 세상에 드러내려는 사람들에게는 적의를 보일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권력을 향한 인류의 강력하고 뿌리 깊은 열망을 설명해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중국이 홍콩 거리를 뒤덮은 ‘검은 행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 역시 “홍콩의 시위는 중앙정부의 권위에 도전하고 일국양제의 마지노선을 건드린 것”이라는 정부 입장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범죄인 인도 법안 철회’를 촉구하는 시위대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순간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권위는 흔들리게 되고, 일단 강고한 권위가 의심받게 되면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권력이 모래성처럼 스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홍콩의 거리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고 있다. 광둥어로 불리고 있지만, 5·18민주화운동과 촛불 혁명의 상징이 된 ‘임을 위한 행진곡’은 대만과 홍콩 노동계에선 이미 널리 알려진 노래다. 한국의 민주주의 혁명 및 시민혁명과 함께 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민주주의를 향한 홍콩 시민의 대장정에 또다시 함께하고 있는 셈이다.

1980년 광주 시민이 의로운 피로 피워 냈던 한국 민주주의의 꽃 5·18광주민주화운동과 2016년 차가운 겨울 전국의 아스팔트를 뜨겁게 덥혔던 촛불 혁명은 군부 독재자와 부패한 지도자들이 쌓아 올린 권위를 바닥에서부터 흔들어 무너뜨렸다. 총과 칼, 그리고 거짓과 강요로 이뤄진 권위와 권력은 결국엔 모래성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홍콩 시민들이 장대한 역사의 무대에서 또다시 입증해 주기를 기대한다. /홍행기 정치부장 redpl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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