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천불전’ : 천개의 불상이 가르치는 깨달음… “부처는 어디에나 있다”
2019년 05월 29일(수) 00:00
석공 10명이 6년동안 만든 1000개 불상
경주 불석산서 만들어져 해남 대흥사로
가허루 지나 해탈문 나와 반야교 건너면
욕심·증오 사라지고 해탈 경지 다다를 듯

보물 제1807호로 지정된 대흥사 천불전(위)과 호남의 명필 창암 이상만의 글씨가 돋보이는 가허루.

1811년(순조 2년) 2월 어느 날, 한겨울 동장군이 위세를 떨쳤다. 대흥사에 불이 났다. 실화였다. 대흥사를 방문한 가리포(완도) 첨사(지금의 군수) 일행의 횃불에서 불씨가 떨어졌다. 횃불을 들고 창고에 들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불길은 삽시간에 허공으로 솟구쳤다. 바람을 타고 불은 빠르게 누각으로 옮겨 붙었다. 불은 불을 불러, 더 큰불로 이어졌다. 그 사이 천불전과 가허루, 대장전이 가없이 스러졌다. 천년의 꿈이, 천년의 기원이 허랑하게 잿더미로 변한 것이다. 모든 것을 태운 불길은 새벽녘에 사그러들었다.

사위는 깊고 고요했다. 깊고 차가운 겨울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동이 튼 다음 펼쳐진 경내의 풍경은 처참했다. 그을음과 몇 줌의 재가 사라진 누각의 실체를 증명할 뿐이었다. 서산대사의 서기가 서린 천년 고찰의 웅혼한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비탄과 허허로움만이 매서운 바람에 나부낄 뿐이었다.

지금의 천불전은 화재가 일어난 지 2년 후인 1813년 중건됐다. 제 10대 강사였던 완호 윤우스님이 주축이 돼 권선문을 짓고 법당 중건에 참여했다. 이후 천불전은 2013년 8월 8일 보물 제1807호로 지정됐다.

천불전. 그 뜻이 좋다. 천개의 불상이 모셔진 법당이라는 뜻이다. 부처는 어디에나 있다는 의미다. 하여 미거한 내게도, 세상과 지나치게 맞닿은 이에게도 부처의 속성이 있을 터이다. 속인에게는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여서, 천불상이 만들어진 내력이 못내 궁금하다. 대흥사로 향하는 발걸음이 달뜨다.

천불전(千佛殿)에 담긴 의미를 헤아리며 발길을 재촉한다. 불교에 조예가 깊은 이성춘 송원대 교수가 동행했다. 그는 ‘빈 멍에’를 뜻하는 가허루(駕虛樓)를 설명하며 얽매임 없는 삶을 역설한다. 가허루 현판을 쓴, 평생 가난했지만 지고한 예술의 길을 걸었던 창암 이삼만을 이야기하며 오늘의 종교와 예술을 안타까워한다. 응대를 하며 가는 길이라 해남이 지척이다.

남으로, 남으로 내려갈수록 계절을 역류해 들어간다. 소만(小滿)을 지나자 산하의 색이 바뀐다. 바야흐로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경계다. 만화방창 꽃들이 지고 선들한 바람은 잦아들고 여름의 문턱이다. 연초록이 초록으로 바뀌는 시점이다. 이제부터는 진초록이 빠르게 숲을 점령할 것이다. 그러나 소만의 이름대로 푸르름이 가득할지언정, 여백이 있는 초록이었으면 싶다. 다 차버리고 나면 서운한 마음 붙들길 없으니 말이다.

이맘때 옛사람들은 보리피리 불며 보릿고개를 넘겼다. 누렇게 익은 보리밭 정경에서 소만의 절기를 생각한다. 모든 것 또한 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 아득한 허기짐과 서글픈 풍류 사이에서 그렇게 옛사람들의 오뉴월은 지나갔으리라.

대흥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천불전으로 향한다. 일주문을 지나, 반야교를 거쳐, 해탈문을 넘어서자 선계가 펼쳐진다. 해탈문에서 천불전까지는 100여 미터 거리. 멀리 대둔산 완만한 능선은 누운 부처의 모습 같아 다사롭기 그지없다. 오랜 눈짓으로 대불을 알현하고 가허루에 들어선다. 멀찍이 천불전이 보인다. 아니 천불전이 스스럼없이 방외인을 맞아준다.

“큰 불이 나고, 완호 스님은 천개의 불상을 계획했습니다. 초의 스님을 비롯한 아홉 분 스님들께 경주 불석산에 가, 옥불로 불상을 만들어오게 했지요. 그렇게 해서 석공 10명이 6년여에 걸쳐 1000개의 불상을 완성했습니다.”

박충배 성보박물관장의 설명이다. 박 관장은 “불상을 두 개의 배에 실고 해남으로 오던 중 한 배가 부산 동래 앞바다에서 풍랑을 만났다”며 “이후 일본 오시마에 표착해 나가사키로 이송됐다”고 덧붙인다.

그 배에는 모두 768좌 불상이 실려 있었다. 나머지 232좌만 대흥사로 오게 됐다. 일본에서는 옥불을 토대로 절을 지어 모실 요량이었다. 그들 또한 옥불이 예사 불상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러자 희귀한 일이 발생했다. 일본인들의 꿈에 자꾸만 이 천불이 나타나 ‘우리는 지금 조선국 해남의 대둔사로 가는 중’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선몽이었다.

마침내 1818년 옥불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었다. 돌아온 불상에는 어깨나 좌대에 일(日)자가 표시돼 있었다. 그러나 옥불의 기이한 이적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꿈에 다시 나타난 불상이 ‘가사를 입혀달라’고 하소연했다. 박 관장은 “이러한 꿈들은 모두 선몽으로 그만큼 대흥사 천불상의 영험이 만만치 않다”고 강조했다.

천개의 불상 앞에 선다. 불상은 저마다 옷을 입고 있다. 숨이 멎을 듯하다. 아니 장엄하다. 옥돌을 하나하나 깎고 다듬었을 석공들의 가없는 열정이 느껴진다. 일본인들이 탐을 낼 만도 하다. 그러나 세상의 부귀영화는 소유할 수 있지만 너머의 가치는 붙들 수 없다.

천불상 앞에서는 천개의 욕심이 사라질 것 같다. 천개의 욕망도 타버린다. 천개의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천개의 미움과 천개의 증오, 천개의 고통, 천개의 슬픔, 천개의 번뇌도 해탈의 경지 속으로 잦아든다.

가허루 안쪽에 자리한 천불전에는 1000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옥으로 만든 1000개의 불상은 누구나 수행을 하고 마음을 닦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준다. 천불전문에 새겨진 아름다운 연꽃무늬 꽃살.
해탈이 무엇이던가. 속세의 욕망을 털어버리고 자비를 행한다면 이 또한 해탈이 아닌가. 누구나 수행 정진하면 될 일이다. 수행에 특별한 행위나 의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더더욱 ‘행위를 닦는다’는 뜻 앞에서는 빈부귀천, 장삼이사, 지위고하가 별무다. 말과 행위, 생각을 바로 하면 그것이 수행이고 열반의 수련이다.

불교의 최초 경전이라는 ‘숫타니파타’에는 이런 말이 있다. “눈을 조심하여 남의 잘못을 보지 말고 맑고 아름다운 것만을 보라. 업을 조심하여 쓸데 없는 말을 하지 말고 착한 말, 바른 말, 부드러운 말, 고운 말만 하라.”

천불전을 나오자 불당 문 꽃살무늬가 눈에 들어온다. 불상에만 마음을 빼앗겨 작고 정밀한 꽃을 보지 못했다. 화려하고 장엄한 꽃에 마음이 닿는다. 불심이 피워낸 꽃이다. 예리한 칼끝에서 움튼 미의 실체! 바람이 불면 꽃잎이 하나 둘씩 흩날릴 것 같다. 화르르.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아름다움에 취하면 몸이 반응한다. 그 꽃잎의 영상을 눈에 담고 천불전을 나온다. 다시 가허루를 지나, 해탈문을 나와, 반야교를 건넌다. 그리고 일주문을 나와 말 많고 탈 많은 세상으로 들어선다. 사찰에서 보았던 모든 것을 잠시 잊어버리자. 한동안 술에 취한 아득한 기분이다.

법구경 한 구절을 되뇌인다. 죽비처럼 들리는 말. “술에 취하여 밤과 낮을 알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사람, 그는 지금 자신의 생명의 뿌리를 마구 파헤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여, 이를 알아라. 절제 할 줄을 모르는 것은 죄악이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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