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호 영암 신북성당 주임 신부] 그들은 왜 새로운 삶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2019년 05월 03일(금) 00:00
빛이 길어졌다. 계절이 바뀌는 중이다. 나는 가끔 새벽녘에 성당 입구에 자리한 정자각에 앉아 있곤 한다. 이제 옷차림이 가벼워도 제법 견딜 만하다. 성당 마당의 화려했던 벚꽃은 눈을 흩뿌리듯 철쭉 위에 내렸다. 계주봉을 이어받은 듯 철쭉들의 연한 연두색 잎 사이에서 붉은 꽃봉오리들이 머리를 살짝 내밀더니, 이제는 활짝 피었다. 감상에 젖은 것도 잠시, 태양이 월출산 봉우리를 넘어 기웃거린다.

문득 나는 ‘떠올라라! 태양아! 그리고 우리에게 새날을 주게나. 우리가 새 삶을 살아가게!’하며 기도한다. 빛으로 시작된 하루는 모든 것을 깨우는 힘이 있고, 새로움을 선사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 맞는 새로운 날이야말로 지금까지 살아보지 못했던 선물 같아 감사함을 느낀다. 어제의 삶을 계속 이어가고 싶지 않다. 물질적 시각으로 비판하고 판단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던 나의 천박함으로 새날을 살고 싶지 않다. 편견과 선입견으로 똘똘 뭉쳐진 편협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며 선물과도 같은 오늘을 살고 싶지 않다.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이해하며, 좀 더 받아들이며, 좀 더 손해보며, 좀 더 희생하며 ‘바보’라는 별명을 지니셨던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마음으로 살고 싶다.

왜냐하면 사랑과 희생이 진실한 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을 이용해 내 주머니를 채우려는 비겁한 짓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비겁함은 새로운 날을 선물 받은 나에게 용납되지 않는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루카 5, 38) 그렇지 않고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으면 술도 버리게 되고 부대도 터져버리게 된다. 이런 삶은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제의 삶들이 자꾸 오늘의 새 삶을 방해한다. 누렸던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받았던 달콤한 칭찬과 언사들이 자신이 옳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새로운 삶은 방해를 받는다. 그래서일까?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자신의 앞날만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내어놓는 논리는 어떤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오기를 부릴 뿐이다. 자기편에 서지 않는 자는 모두 빨갱이, 종북이며, 좌파라고까지 떠들어댄다. 이 이념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던가!

대우를 받으려면 그에 맞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그 대우를 받지 못할 것 같으니 과격한 단어로 목청을 높이고,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칼로 찌르듯 입에 담지 못할 말들로 못된 심술을 부리기까지 한다. 몽니도 이런 몽니가 없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의식은 성숙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국민은 무지몽매하기에 자신들의 말만 들어야 하고, 자신들의 이념에 갇혀야 하며,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그들의 구태의연함에 어이가 없을 뿐이다. 비단 정치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높은 자리, 많은 나이, 남성 우월주의, 부유하다는 이유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이들에게서 몽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 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차별이라는 벽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소유한 것을 나누고 싶지도 않다. 특권 의식을 누가 쉽게 버리겠는가? 그래서 결국 그들은 희생양이 필요하다. 그래야 그들은 자신들이 못된 심술을 부리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것을 유지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시대의 희생양은 그들의 이념과 불합리한 논리로 계속 양산한다. 결국 그들은 비겁하다. 이 얼마나 슬프고 불안해하는 존재들인가?

한계성을 지니면서 몽니를 일삼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빛은 새날을 밝힌다. 희생양이 필요해 예수를 죽였던 이들, 예수를 묻었던 무덤을 찾아왔던 여인들과 제자들은 비어 있는 무덤과 빛을 체험하고 놀라워하였다. 빛은 우리를 초대한다. 그러나 예수의 삶을 단 한 번도 살아보지 못했던 이는 두려울 뿐이다. 두려움 때문에 폭력을 행사하고, 개념 없는 논리로 이념들을 만들어 희생양을 양산한다. 그러니 그들의 몽니가 끝이 없는 것이다. 빛으로 시작되는 새로운 날! 왜 그들은 이 새로운 삶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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