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주의유럽 예술기행] <11> 체코-프라하
2018년 12월 13일(목) 00:00
카프카박물관에는 K가 가려고 했던 ‘城’이 있다
소설 속 ‘城’은 K에게 신의 상징인가, 구원의 장소인가
아니면 엄격했던 카프카 아버지를 형상화한 장치였나
동굴처럼 어두운 박물관, 부조리한 세상 보는 듯 하네

몰다우 강변에 있는 카프카박물관, 의자에 K가 인상적이다.

카프카가 살았던 건물 앞의 카프카 거리.








마침내 체코 프라하를 가는 날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프라하의 카프카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고등학교 시절 내게 영감을 주었던 작가는 카프카와 카뮈였다. 헤밍웨이 작품을 즐겨 읽기는 했지만 그의 작품이 내 심혼에 불을 당겨주었다기보다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려웠고 그 밖의 고전들은 번역문장에 대한 인내심이 부족해서 정독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카프카 단편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리는 카뮈 장편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와 이복형제가 아닐까 싶다. 두 주인공 모두 세상 사람들에 의해 ‘변신’을 당한 ‘이방인’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실제로 카뮈는 카프카를 흠모하여 그의 작품세계를 논문으로 발표한 적이 있다.

아침 7시에 IMK 직원 이재호 군이 숙소로 와 있다. 오늘은 이재호 군이 프라하까지 운전하고 안내해 주기로 한 것이다. 말이 잘 통하니 무엇보다 안심이 된다. 이재호 군도 회사에서 내근하는 것보다 프라하를 가는 것이 즐겁다고 하니 다행이다. 프라하까지는 승용차로 3시간 남짓 걸린다니 서울에서 장성간 거리다. 아침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빈에서 동쪽으로 난 고속도로를 달린다. 고속도로 양쪽 들판의 풍차들이 장관이다. 드넓은 목초지를 풍력발전소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2시간 정도 달렸을까. 구릉에 형성된 체코의 제2도시 부르노가 보인다. 부르노부터는 프라하가 가까워졌음인지 트럭 행렬로 승용차가 제 속도를 내지 못한다. 이군이 프라하까지 4시간쯤 걸리겠다며 웃는다.

눈을 잠시 감고 있는데 ‘변신’과 ‘이방인’의 첫 문장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사춘기 때는 최면에 걸린 듯 몰입해 읽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부조리한 비극을 암시하는 상황과 복선임을 눈치 채고 읽을 것이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리는 악몽을 꾸다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이 흉측한 벌레로 변했다는 것을 알았다(‘변신’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았다(‘이방인’ 첫 문장).’

그레고리가 흉측한 벌레로 변한 것도 세상과의 단절이고, 뫼르스의 어머니가 죽은 것도 세상과의 단절을 암시하고 있지 않은가.

이윽고 승용차가 프라하 시가지 입구인 다리를 건너는데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삼성 갤럭시9 광고판이다. 로마 포폴로 광장에서 보았으니 두 번째로 마주치는 셈이다. 프라하 도시 역시 오스트리아 빈처럼 기품이 있다. 1백 년 이상 된 고택들이 도심지에 들어서 있다. 9세기경에는 중부유럽의 정치 경제 중심지였고, 14세기에는 전 유럽에서 파리 다음 가는 큰 도시였다고 한다. 몰다우(체코인들은 블타바(Vltava)라고 부름) 강변에 번영한 이 도시는 ‘석탑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고색(古色) 짙은 건물들이 많아 중세의 향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유럽에서는 ‘5월의 프라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5월 태양에 비치는 프라하의 아름다움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마침 우리가 찾아온 달도 5월이다.

이군은 프라하의 랜드마크 같은 카를다리는 여러 번 왔지만 카프카박물관은 처음이라고 한다. 일단 몰다우 강변 공원 주차장에 승용차를 주차하고 다리를 건너서 카프카박물관을 찾아보자고 말한다. 몰다우 강을 건너려고 공원을 어슬렁거리는데 낯익은 이름의 동상이 보인다. 체코를 대표하는 작곡가 드보르작(1841-1904)이다. 체코의 민족 음악을 가장 먼저 과감히 차용한 작곡가는 ‘나의 조국’으로 유명한 스메타나이지만 이를 세계화시킨 사람은 드보르작이다. 드보르작의 ‘유머레스크’가 우리 귀에 익숙한 것은 한때 차임벨 리듬이나 결혼식장 음악으로 많이 들었기 때문일 터. 드보르작 동상 옆에 또 하나의 동상이 있다. 체코의 민족주의 화가 유제프 마네스(1820-1871) 동상이다. 체코의 국민운동(1848)에 자극받아 그때부터 농민예술을 탐구하였고 체코의 근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체코의 국민화가인 셈이다.

구글로 검색해 보니 뜻밖에 카프카가 살았던 건물이 부근에 있고, 카프카박물관은 다리 건너편에 있다. 건널목을 하나 건너니 카프카거리가 있다. 그러나 카프카가 살았던 건물은 대대적으로 수리 중이다. 2018년 10월 23일 개관한다는 작은 푯말이 보인다. 카프카 카페도 수리 중인데 간판은 그대로 붙어 있다. 겉에서나마 생가를 보았으니 이제는 다리 건너편의 카프카박물관으로 가본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에서 사업에 성공한 유대인 아버지와 내조밖에 모르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부족함이 없는 학창시절을 보낸다. 이후 그는 1906년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년 뒤 보험회사에 입사한다. 그러나 문학창작을 위해 5년 만에 직장생활을 청산한다. 창작생활을 방해하는 것은 권위적인 아버지와 건강이었다. 불행하게도 결핵에 걸려 1924년에 빈 교외의 결핵요양소에서 41세의 나이로 요절한다. 남은 여동생들은 세 명 모두 나치강제수용소로 끌려가 죽었다고 전해진다.

카프카박물관 마당에는 두 사내의 청동상과 K자를 디자인한 의자가 있다. K는 카프카 장편소설 ‘성(城)’의 주인공이다. ‘성’은 인간을 지배하는 상징물인 동시에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신을 상징하는 미답의 공간일 터. 아마도 성은 신과 같은 권위를 지닌 카프카 아버지를 형상화한 소설적 장치였지 않나 싶다. 실제로 카프카 아버지는 카프카에게는 신처럼 절대적인 인물이었다고 한다.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늘 카프카에게 “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이만큼 해냈는데, 부족한 게 없는 너는 왜 그렇게밖에 못하느냐!”라고 핀잔과 수모를 주었는데, 아버지의 캐릭터는 카프카의 어느 소설이든 등장해 주인공을 괴롭힌다. ‘성’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날 밤, 주인공 K는 눈 쌓인 한 마을에 도착한다. 측량기사 K는 마을 부근의 성(城)에 일하러 왔다고 말하지만 마을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못한다. 이튿날 아침 K는 혼자서 성을 향해 올라간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가는 길을 물어도 냉소를 지을 뿐이다. K는 기묘한 기분을 느끼며 성을 찾지만 헛수고만 하고 만다. 아무리 찾아도 성을 발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관으로 돌아오니 두 명의 조수가 와 있다. 그러나 K가 데리고 일하던 조수가 아니다. 알 수 없는 불온한 사람들이다. 기묘한 분위기, 낯선 조수들과의 만남 속에서 K는 되풀이해서 성에 도달하려고 시도하지만 끝내 무위에 그친다. 목적은 결코 이루지 못한다는 명제를 남긴 채 소설 ‘성’은 끝난다. 도대체 K의 성(城)은 무엇일까? 인간이 가상으로 설정한 신일까? 인간을 구원하는 장소일까? 그러나 소설은 그런 것에는 도달할 수 없다는 세상의 부조리를 보여주고 결말을 짓는다.’

카프카박물관에 들어서는 기분이 묘하다. 마치 내가 K가 된 듯하다. K가 들어가려고 했던 성(城) 같기도 하다. 다른 박물관과 달리 내부가 동굴처럼 어두컴컴하다. 일부러 카프카의 삶처럼 모호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듯하다. 밝은 빛을 차단한 창이 없는 공간이다. 진열된 사진이나 자료들이 작은 조명등에 의해 겨우 드러나 있을 뿐이다. 카프카의 작품을 이해해 주었던 37세의 여기자 밀레나 예젠스카 사진도 있고, 가족사진도 보인다. 엄한 아버지 때문인지 모두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하나같이 19세기의 흑백사진들이다.

카프카박물관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모르겠다. 작은 조명등의 불빛 속에서 드러난 과거의 사진들 몇 장만 기억난다. ‘성’의 주인공 K가 천신만고 끝에 박물관으로 들어왔다고 해도 무엇을 보았는지 잘 설명하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면 카프카박물관의 컴컴한 분위기는 적어도 부조리한 세계를 상징하는데 성공한 듯하다. 이군의 곤혹스러운 표정이 재미있다.

“사실 저는 카프카의 작품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박물관의 분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몰다우 강의 다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를다리.




몰다우 강의 다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를다리.






우리가 다음으로 들른 곳은 카를다리다. 프라하 성은 멀리서만 보고 돌아서기로 한다. 오늘 여행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별로 아쉽지가 않다. 몰다우 강의 다리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카를다리의 명성답게 관광객들 인파에 떠밀릴 정도다. 나는 가게에서 가죽지갑을 하나 산 뒤 이군에게 이제 빈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오늘밤에 빈 필 하모닉오케스트라 연주를 감상해야 하거든. 표가 있어. 안톤 브루크너 작품을 마에스터 에센바흐가 지휘한대.”

크리스토프 에센바흐는 1940년 독일 출신으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이다. 빈 필에서 초대할 정도로 이력이 화려하다. 프랑스 파리 관현악단 음악감독, 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및 음악감독, 미국 국립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지휘자인 것이다.

체코를 지나 오스트리아로 들어서자 아침에 보았던 풍차들이 다시 나타난다. 풍차의 날개 끝에는 빨간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이군은 풍차들이 자기를 향해 달려들 것 같아서 무섭다고 말한다. 그러나 풍차를 향해 돌진했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있었지만 고정된 오스트리아의 풍차가 달려들 일은 없을 것 같다.

/글·사진 정찬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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