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로 띄우는 그림편지Ⅳ] <7> 화순-오견규
화선지 꽤나 버린 뒤 운주사 돌부처가 보이더라
2018년 07월 19일(목) 00:00

‘조선 소나무’

나는 종종 운주사를 찾는다. 화순에서 사는 덕에 거리가 가깝기도 하지만 때론 사는 게 외롭거나 쓸쓸할 때 자연스레 그곳으로 발을 옮긴다. 운주사는 창작욕이 바닥나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거나 타성에 젖은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갖기에 좋은 장소다.

계절따라 달라 보이는 풍경은 덤이다. 화창한 봄날의 햇볕을 받고 있거나 한겨울 눈에 덮인 석탑이나 석불을 상상해보라. 고즈넉한 산사를 찾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그 중에서도 운주사를 찾는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엄숙한 대웅전 법당에 정좌한 부처님을 뵈는 것은 당연한 예의고 들판 이곳저곳에 앉아 있거나 선 채로 있는 혹은 누운채로 방치된 듯한 돌부처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거기엔 함께한 고요와 비움과 겸손, 그리고 멈춰버린 시간과 마주하면 마음을 내려놓기 딱 좋은 장소다.

처음 운주사를 찾던 때가 80년대 중반 무렵이었다. 당시에는 교통편이 몹시 불편했다. 광주에서 화순으로, 다시 능주에서 중장처로 가는 길은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과 비포장 자갈길은 지금같았으면 포기했을 힘든 여정이었다.

운주사의 첫 인상은 황량했다. 능선따라 콩이나 목화가 심어진 논밭이 한켠에 자리한 작은 산골짜기에 지나지 않았다. 다만 여느 절집보다 석불과 석탑이 유달리 많다는 것 뿐 곳곳을 둘러봐도 경주의 석굴암 부처의 신비스런 미소같은 미적 경험은 기대할 수 없었다. 아마 인근 마을에서 돌담이나 쌓던 석수(石手)가 겨우 돌의 높낮이나 결을 터득해 어설프게 정으로 쪼개거나 파낸게 아닌가 싶었다. 그야말로 바보스럽고 평범해 보였다.

십수년 전 광주에서 화순으로 이사를 했다. 차츰 나이가 들면서 나의 화업도 깊이를 추구했다. 그 무렵 운주사는 가볼만 한 남도 여행지로 널리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술계도 운주사를 테마로 한 전시회가 빈번해졌다. 덩달아 나도 초대작가로 참여하게 됐다.

‘운주사 돌부처’
석불과 석탑은 참신하고 완벽한 회화의 오브제가 되었다. 단지 수묵화의 특성상 암석의 질감이나 풍상으로 씻겨버린 얼굴의 윤곽을 표현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런데 더욱 애를 먹인 것은 형상 뒤에 숨겨진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

‘장자’의 우화 ‘포정해우’(포丁解牛)가 생각났다. 포씨라는 백정이 처음 소를 잡을 땐 소만 보이더니 다음엔 소가 소로 보이지 않았고 몇년이 지나자 소가 소로 보이지 않았고 몇년이 지나자 소를 보지 않고 마음으로 소를 대하고 잡았더니 소의 고통도 덜어줬고 일도 빨리 끝냈다는 교훈이다.

나도 돌부처의 형상에만 집착하다가 보이는 것 바의 그 무엇을 얻은 것은 화선지 꽤나 휴지통에 내동댕이치고 난 후였다. 그것은 비록 나 혼자만의 생각일진 모르지만 ‘누구나 근본 본성을 찾고 깨달음에 이르는 자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가의 가르침에 부합하듯 누구나 표현할 수 있는, 꾸밈없는 석불의 모습이 진실해보였다.

흔히 작품을 작가의 내면 세계라고 한다. 뛰어난 재주는 오히려 흠결이 될 때가 있지만 무기교의 소박은 편안해서 만든 이의 고운 심성이 눈에 선하다.

‘완전한 것은 모자란 듯하다. 아주 곧은 것은 굽은 듯하고, 뛰어난 솜씨는 서툰듯하다.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질박하고 이 도(道)를 채우려 하지 않았다.’

노자에서 따온 대목이다. 도는 어려운 의미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다. 나는 평범하고 단순한 삶, 그 이상의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본다. 천불천탑에 스며든 불계공졸(不計工拙)의 내적인 미를 깨닫는 데 그렇게 시간을 요했다.

수해 전, 작품 준비차 절에 들렀을 때 산불이 난 적이 있었다. 불난 자리에 다시 심었던 조선 소나무가 제법 자랐다. 초입의 석탑 옆에, 지금은 사라진 감나무가 서 있던 자리에서 물끄러미 돌부처를 쳐다보았다. 돌부처도 나를 내려다 본다. 바람 끝에 풍경소리가 하늘에 맑다.
무제


※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등 심사운영위원 역임

-동신대학교 및 남부대학교 외래교수역임

-제15회 광주시 문화예술상(허백련 미술상)본 상수상

-제1회 대동미술상 수상(대동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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