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형 청년창업 모델을 찾아서 <9> 獨 ‘팹랩 베를린’
아이디어 공유하고 디지털화 … 청년들 ‘창업 실험실’
2017년 11월 23일(목) 00:00

매주 금요일 초보자들도 각종 장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행사를 연다.

검은색으로 꾸민 건물 외관이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널찍한 회의테이블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치자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온갖 공구들과 3D프린터 등 장비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가운데 테이블엔 청년들이 앉아 무엇인가 ‘작당’을 꾸미는 것처럼 보였다.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앞에 두고 고민하는 사람도, 홀로 방문해 3D프린터를 조작하는 사람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분방하다.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팹랩 베를린’(Fab Lab Berlin)은 마치 앞서 방문했던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 ‘베타하우스’(Betahaus)를 닮았으면서도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각종 장비들이 구비돼 있고 간혹 톱날이 돌아가며 목재를 자르는 특유의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팹랩은 제작(Fabrication)과 연구소(Laboratory)의 합성어로 자신이 생각한 아이디어를 디지털 장비로 현실화할 수 있는 공간을 뜻한다. 팹랩은 2001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에서 시작돼 현재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각지로 뻗어나가고 있는 추세다.

팹랩 베를린 관계자는 “우리는 국제적인 팹 연구소의 일원이다”며 “전문 DIY스튜디오와 훌륭한 제작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팹랩 베를린은 600㎡(182평) 규모로 3D프린터와 레이저커터, CNC라우더, 목공장비, 비닐커팅, PBC밀링 등 다양한 장비·시설을 갖추고 있다. 전문적인 수준이 아니어도 기본적인 교육만 거치면 누구든 조작할 수 있는 디지털 장비다.

아직 장비를 다루기 힘든 이들을 위해 매주 금요일 저녁 실험실 문을 열고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개방형 랩 데이’로 기계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고, 디지털 제작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하는 것이다. 장비를 다루는 방법도 배우고 팹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지난 2013년에 문을 연 팹랩 베를린 역시 베타하우스처럼 이용자들에게 요금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기술적인 서포트를 제공하며, 워크숍과 커뮤니티를 운영한다는 측면에서는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실제 이곳에서는 구축돼 있는 장비를 활용해 창업해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회사도 방문할 수 있었다.

한국의 베 짜는 기계와 똑 닮은 장비와 제봉틀을 이용해 가방을 만드는 비영리회사 ‘mimycri’다. 이들은 시리아 등 난민과 함께 난민들이 타고 오다가 버려진 고무보트를 재료로 고품질의 가방·배낭을 생산하고 있었다. 장비와 공간을 활용해 아이디어를 실현 시킬 수 있다는 게 느껴졌다.

또 재밌는 것은 팹랩 베를린이 최근 공간을 확장해 이전할 수 있었던 계기는 독일 기업의 도움이 있다는 점이다.

독일의 의족·의수 제작회사로 잘 알려진 장애인 헬스케어 기업 오토복(Ottobock)은 팹랩 베를이 자신들의 건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팹랩의 장비를 활용해 다양한 의족·의수 등 장애인을 위한 제품을 기획하고 직접 생산해 시험할 수 있는 등 상부상조하고 있다.

이제 팹랩은 미국과 유럽을 넘어 일본과 한국에서도 청년창업에 있어 핫아이템으로 부상하고 있는 분위기다. 서울에 이어 부산 등지에서도 팹랩이 문을 여는 등 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광주지역에서 팹랩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 공간을 찾는다면 ‘무한상상실’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과학관·도서관·주민센터 등에 무한상상실을 공방처럼 꾸린 뒤 함께 실험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스토리텔링·아이디어 클럽을 운영하는 곳이다.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던 사업이다.

광주에는 현재 국립광주과학관과 바림미디어스페이스 등 2곳이 있지만 아직 청년들의 창업을 위한 공간으로는 적극 활용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메이커(Maker) 운동’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시점에서 광주에서도 메이커 운동에 대한 관심과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박기웅기자 pboxer@kwangju.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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