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열 4·19민주혁명기념사업회장] 위대한 민주화 발원지 금남로공원
2017년 11월 21일(화) 00:00
대한민국 민주화의 시원이요 초석을 놓은 1960년 4·19혁명과 3·15의거,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 1987년 6월 항쟁, 2016년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광주 시민은 금남로를 거점으로 항상 선봉에서 주도했다.

민주화 투쟁 거점이자 격전지였던 금남로에는 불의에 항거한 광주 민중의 한과 피와 넋이 스며 있다. 질곡의 역사가 각인된 금남로가 전국 국민에게 알려지면서 “금남로가 어디냐?”고 묻고 찾는 외지인들이 많아 관광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특히 광주학생독립운동과 광주4·19민주혁명, 5·18광주민중항쟁의 역사는 불의에 항거한 광주 3대 민중항쟁으로 다른 시·도와 차별화되는 광주만의 역사다. 광주의 정체성과 광주정신의 산실이요 뿌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3대 민중항쟁 역사 중 4·19 역사만이 소외되어 왔다. 군사 정권에 의해 30여 년간 망각의 역사로 묻혀왔던 배경이 있지만 보다 큰 원인은 관계 기관의 무관심에 있다. 1992년 문민정부 탄생으로 4·19는 대한민국 민주화를 이룩한 역사로 헌법 전문에 3·1독립운동과 더불어 명기되어 국가의 기본인 헌법 정신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광주 4·19 역사는 위상에 걸맞지 않게 시민의 무관심과 관계 기관의 향토역사 관리 소홀로 광주공원에 추모비 하나 있을 뿐 기념탑조차 없이 방치되고 있다. 1960년 3·15의거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광주 3·15의거는 마산3·15의거보다 3시간 앞서 일어났으나 역사의 기록은 마산만을 기록하고 있다. 이 역시 향토역사 관리 소홀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한민국 민주화 성지인 금남로의 금남로공원에는 ‘4·19혁명 진원지’라는 표지석이 있다. 4·19기념사업회는 민주성지 광주의 위상 정립을 위해 광주금남로공원의 명칭을 금남로4·19공원으로 변경해줄 것을 2010년부터 광주시와 동구에 13회에 걸처 요청한 바 있다.

이에 동구는 지난 5월 금남로공원을 ‘금남로4·19공원’으로 변경하는 작업을 추진하기 위해 광주 16개 사회단체에 타당성을 물은 결과 12개 단체가 찬성 했다. 이후 행정 절차에 따라 지난 8월 30일 지명위원회를 진행하는데 ‘호남 4·19단체’ 명의로 금남로공원을 ‘광주3·15공원’으로 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지명위원회는 결과를 유보한 채 보류하고 있다.

호남4·19단체연합회는 지난 2011년 4월 4·19기념사업회와 4·19혁명동지회, 4·19문화원으로 구성 설립된 비영리 민간단체다. 본 조직의 4·19기념사업회와 4·19혁명동지회는 금남로공원의 명칭을 ‘금남로4·19공원’으로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부에서 ‘광주3·15공원’을 주장하면서 ‘호남4·19단체’명을 사용해 마치 호남 4·19단체 전체가 3·15공원을 주장하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다.

물론 호남 4·19단체 내 이견은 민주성지 광주를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의견 대립이다. 금남로공원은 3·15역사와 4·19역사를 아우루는 공원으로 조성되어야한다.

만물은 순리에 따라 이루어젔다. 의견 대립도 순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3·15의거는 4·19혁명 원인이요, 도화선의 역사다. 헌법 전문에 3·15의거가 기록되지 않고 4·19 민주 이념이 기록된 것은 역사의 순리를 중요시함을 알수 있다. 따라서 금남로공원의 명칭을 민주화의 발원지로 각인된 금남로 지명과 민주화의 시원인 4·19를 상징하는 ‘금남로4·19공원’으로 바꾸어 민주화의 상징 공원으로 함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광주3·15의거 역사를 바로 세우고 제대로 된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금남로4·19공원에 3·15표지석을 건립하고 표지석 글에 1960년 광주3·15의거는 전국 최초로 알려진 마산보다 3시간 앞선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음을 표기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래야 금남로가 대한민국 민주화 발원지이자 투쟁 거점임을 알릴 수 있고

민주 성지 광주의 정체성과 광주정신도 드높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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