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를 찾아서] (9) 제우스는 아테나를 사랑하는 ‘딸 바보'
2017년 08월 10일(목) 00:00
오늘이 마지막인 듯 사랑해 볼까, 제우스 후예처럼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제우스 신전.

일행은 아크로폴리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제우스 신전으로 내려간다. 제우스 신전의 기둥들이 주택가 안에 우뚝 솟아 있다. 제우스를 ‘신들과 인간의 아버지’라고 불렀던 이는 눈먼 시인 호메로스였다. 나는 그리스 신들 중에서 제우스를 가장 좋아한다. 더욱이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속의 조르바는 흡사 제우스의 후예 같다. 서구문학의 최초작가인 호메로스도 그렇다. 요석공주와 사랑을 나눈 원효와 어머니 앞에서 옷을 벗고 춤을 춘 경허도 국적이 그리스라면 나는 역시 제우스의 후예 같다고 말했을 것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삶을 사랑하고, 열정을 남김없이 다 연소하고, 절망과 죽음을 비웃었던 초월적인 실존들이 아니었나 싶다.

제우스는 티탄 신족인 크로노스와 레아 사이에서 태어난 육남매 중 한 명이다. 형제로는 여신 헤스티아, 헤라, 데메테르와 남신 포세이돈, 하데스가 있다. 제우스는 누이 헤라와 결혼하여 세 남매 아레스, 헤베, 에일레이티이아를 낳았다. 요즘말로 하면 근친상간이다. 또 다른 아들 헤파이스토스는 아내 헤라가 남편의 도움 없이 홀로 낳았다고 한다.

제우스는 통치를 했을 뿐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자신의 다섯 형제에게만 주지 않고 일곱 명의 신들에게 권능을 양도했다. 일곱 명의 신은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 전쟁의 신 아레스, 철을 다루는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 음악과 예언의 신 아폴론, 숲과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와 전령의 신 헤르메스였다. 제우스 육형제와 일곱 명의 신을 합치면 열세 명이 된다. 그런데 왜 열두 명의 신이 올림포스 산에서 살았다고 할까. 이는 저승을 주관하는 하이데스가 올림포스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우스 신전 터는 주택가에 둘러싸여 협소한 느낌이다. 아마도 주택들이 야금야금 먹어 들어와 현재의 공간만 남았을 것이다. 제우스 신전은 파르테논 신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그 규모가 컸다고 한다.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이 46개인데 비해 제우스 신전의 기둥은 104개나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높이는 11m지만 제우스 신전은 17m_. 규모만큼이나 신전을 완공한 기간도 길다. 기원전 515년경에 조성하기 시작했지만 아테네인들의 관심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되고 만다. 그러다가 340년이 지난 기원전 174년쯤 다시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후원자가 죽게 되어 공사를 또 멈춘다. 이후 300년이 흐른 뒤 그리스를 정복한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기원후 132년에 마침내 완공한다. 650여 년 동안 공사를 한 셈인데 만약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그리스문화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제우스 신전은 지금까지 미완성일지 모른다. 하드리아누스는 로마 황제들 중에서 특히 그리스문화에 심취했다고 한다. 문화란 후원자와 애호가의 사랑을 먹고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닌가. 우리 판소리처럼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판소리를 이나마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은 신재효 선생이 판소리 여섯 마당을 집대성하고 명창들을 후원해주었기 때문인 것이다.

신전의 기둥들을 보다가 나는 무릎을 치고 만다. 신전 기둥머리의 아칸사스 나뭇잎 문양을 보니 틀림없는 코린트식 기둥이다. 에레크테이온 신전은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기둥머리가 덩굴손 문양이었던 것이다. 두 곳의 기둥머리에는 모두 식물 문양이 장식돼 있다! 그렇다. 비록 돌기둥이지만 그리스인들은 신성한 나무라고 생각하며 세웠을 것이다. 특별한 나무를 신성시했다는 방증이다. 신목(神木)은 동서양에 산재해 있는 듯하다. 우리에게도 단군시대의 신단수(神檀樹), 즉 신목이 있고 마을을 외호하는 당산나무가 있잖은가. 문화 교류가 전혀 없었던 시기에 신목 같은 문화형태를 동서가 공유한 이런 현상을 무어라 하는지 은사님께 묻지 않을 수 없다. 은사님께서는 원형이론으로 설명하신다.

“원형이론이라는 게 있어요. 원형(原形) 즉 아키타이프(Archetype)라고 해서 동양인과 서양인, 아프리카인들이 아무 교류를 하지 않았는데 아득한 시대의 고대인들이 이루어 놓은 문화형태를 보면 비슷한 것이 있어요. 가령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까마귀도 그래요. 까마귀는 검정색 아닙니까? 그리스신화에 까마귀가 검정 새가 된 이야기가 나와요. 하루는 어떤 여신의 아들이 절벽에서 놀다 떨어져 죽었어요. 까마귀가 날다가 그 광경을 봤지요. 그래서 까마귀가 어머니 여신한테 아들이 죽었다고 전하지요. 슬픈 소식을 들은 어머니 여신은 울며불며 장례를 지냅니다. 장례를 지내고 나서 어머니 여신이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불길한 소식을 전해준 까마귀가 흉조이지 길조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지요. 그런데 그때까지 까마귀는 흰 새였지요. 어머니 여신이 제우스신에게 알린 뒤부터 저주를 받아 검정 새로 바뀐 거지요. 어쨌든 동서양이 서로 교류하지 않았으나 까마귀를 흉조로 여겼다는 점은 같아요.”

어느 민족이나 인종이 오랜 세월 같은 유형의 경험을 반복하는 동안 일정한 정신적 반응을 하게 되면 반드시 집단적으로 무의식적인 경향을 지닐 수밖에 없는데, 이것을 구체화한 문화형태가 아키타이프(原形)이라는 것이다. 아키타이프는 문화인류학자인 제임스 프레이저(James Fraser)나 칼 구스타프 융(C.G. Jung) 같은 심리학자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었으며, 문학평론가들은 원형이론으로 문학작품을 규명하기도 한다는 강의를 대학생시절에 들었던 것도 같다.

“용(龍)만 하드라도 그래요. 그러고 보니까 나나 정찬주 작가는 용띠군요. 용은 파충류 모습이지요. 이것도 동서양이 같아요. 옛날사람들이 생각해낸 것인데 동서양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합의해 만들었겠어요? 그건 아니지요. 그런데도 다리가 달렸고, 물을 뿜고, 머리에 뿔이 나 있는 등등 동서양의 용 모습이 거의 같아요. 독일 영화 ‘니벨룽겐의 반지’처럼 용에게 나쁜 의미도 있어요. 이런 용은 한국에서 독룡이라고 하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독룡도 있고, 황룡도 있고, 청룡도 있고 그러잖아요. 물론 용에게 좋은 점이 많지요. 농경사회에서는 용이 구름과 비를 몰고 온다 해서 굉장히 중요하지요. 황제를 상징하기도 하고요. 용포, 용상 등이 그렇지요. 용의 상징이 조금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어쨌든 가상의 존재인 용이라는 것이 동서에 있고, 학자들이 그런 현상을 연구하는데 원형이론이라고 해요. 그리스신화에 우리 신화와 비슷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보면 더욱 흥미로울 겁니다. 아프리카, 남미, 남태평양 제도의 신화나 전설을 볼 때도 마찬가지겠지요.”

평지에 있는 제우스 신전에서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파르테논 신전을 보려면 고개를 들어야 한다. 아버지 신인 제우스가 딸인 아테나를 올려다보는 셈이다. 서로 위치가 바뀐 것 같아서 흥미롭다. 요즘말로 하자면 제우스는 ‘딸 바보’ 같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보듯 제우스는 딸 아테나가 마음상하지 않도록 항상 배려한다. 트로이전쟁에서 트로이 편을 들었던 아레스가 아테나의 공격을 받고 상처를 입자, 제우스에게 아테나를 너무 귀여워하니까 다른 신들을 함부로 대한다고 불평을 터트렸을 정도였다. 제우스가 딸이 원하는 것을 받아주는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곳곳에 많이 나온다.

제우스가 아킬레우스에게 쫓겨 트로이 성벽을 세 바퀴나 도는 헥토르를 보고 불쌍히 여겨 그를 죽음에서 구할까 말까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아테나가 어차피 죽을 운명을 가진 인간을 다시 구하려고 한다며 비난을 퍼붓자 제우스는 얼른 아테나에게 상냥하게 대하며 마음대로 하라고 말한다.

“안심해라, 트리토게네이아여. 내 딸이여. 내 진심에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란다. 너에게는 늘 상냥하게 대해주고 싶구나. 그러니 네가 좋을 대로 하고 더 이상 주저하지 마라.”

딸을 사랑하는 마음은 제우스신이나 인간세계의 아버지들이나 대동소이한 듯하다. 나도 두 딸을 가진 아비로서 ‘딸 바보’ 제우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것 같다.

/글·사진=정찬주 작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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