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남지 제6부-사상·종교의 산실 호남-조성제 무천(舞天)문화연구소 소장] ④ 한국의 전통종교는불교 아닌 무교다
더불어 살아가자는 ‘생생지생’ … 21세기가 요구하는 시대정신
2017년 08월 01일(화) 00:00

함경도 망묵굿보존회 서유정 회장이 망묵굿 해당화불사거리를 하고있다.

한국의 전통종교라고 하면 무엇을 생각할까? 많은 사람들이 당황해하다가 불교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불교가 이 땅에 들어 온지 1600년이 넘었으니 전통종교임에는 틀림없지만 왠지 불교를 전통종교라고 하기에는 2%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다.

그러면 한국의 전통종교는 무엇이란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민족의 전통종교는 없다. 우리 민족이 믿고 따르던 전통신앙은 있어도 종교는 없다고 말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민족신앙은 조직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은 우리 민족의 신앙은 서양의 종교와 달리 조직과 경전을 이용해 신앙을 강요하거나 경전을 핑계로 구속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종교는 개개인의 사정에 따라 자발적으로 절대신을 믿고 받들어왔다.

전통신앙이라면 가장 먼저 무속을 생각한다. 그러나 무속을 샤머니즘(shamanism)이라고 하지 신앙이나 종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우리의 전통신앙은 존재하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통신앙은 삼신을 창조신으로 받드는 신교, 즉 무교다. 무교라는 신앙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며 심성으로, 우리의 가치관과 도덕적 기준이 되었다. 또 무교는 할머니·어머니들의 삶, 그 자체였으며 생활을 지혜를 제공하여왔던 신앙이었다.

전통신앙의 모체가 되는 삼신신앙은 ‘인간의 본성은 태양의 빛과 같이 선하고 깨끗하고 후덕해야 한다’고 선청후(善淸厚)라 했으며 삼진(三眞)이라 했다. 이 선청후(善淸厚)를 지키는 관문은 성명정(性命精)으로 삼관(三關)이라 했고, 삼진인 선청후가 머무는 집을 심기신(心氣身) 삼가(三家)라 했다. 또 인간을 타락시키는 삼망인 악탁박(惡濁薄)이 들어오는 통로인 식감촉(息感觸)을 삼도(三途)라 하였다.

인간은 삼도인 바로 호흡과 느낌과 접촉을 통해 악박탁이 들어와 마음과 기운과 몸을 물들이고, 이것들이 세 개의 관문인 성명정을 부수고 최종적으로 그 안에 존재하는 삼진인 선청후를 소멸시키면 인간은 본성을 잃어버리고 생명이 다한다고 했다.

이를 바탕으로 모든 육체적 감각(관능적인 욕구)을 극복하여(禁觸) 행실을 닦고(修身) 정기(정력)를 성실하게 함으로써(精誠) 성인군자를 추구하는 사상이 유교가 됐다. 모든 느낌을 끊어 버리고(止感) 마음을 맑게 하여(明心) 본래의 성품을 깨달아(覺性) 성불을 추구하는 사상이 불교가 되었으며, 숨을 고르게 쉬고(調息) 원기를 길러(養氣) 불로장수(長命)하는 신선을 추구하는 사상은 도교가 되었다.

이렇게 삼신신앙에서 유불선이 파생된 것이다. 그러기에 불교·도교·유교를 우리민족의 전통종교라 하기엔 뭔가 꺼림칙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에겐 신앙은 있어도 종교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전적 해석을 빌리면 신앙은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를 믿고 받드는 일”이고, 종교는 “신 또는 초인간적·초자연적인 힘에 대해 인간이 경외·존숭·신앙하는 일의 총체적 체계”라고 되어 있다. 이 내용들을 살펴보면 신앙과 종교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종교는 총체적 체계라는 말이 더 들어갔다.

여기서 ‘총체적 체계’라는 말을 되새겨봐야 한다. ‘총체적 체계’란 종교의 구성요건으로 조직과 경전 그리고 통일된 의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즉 종교는 어떤 특정집단이나 권력이 유일신(唯一神)을 내세우며 경전에 입각하여 통일된 의식을 지속적으로 행하면서 믿고 따르게 조직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은 누가 강요하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아도 인간들이 스스로 개개인의 정서에 따라 특정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를 믿고 받드는 것이다. 즉 신앙은 조직이 존재하지 않고 특정 경전을 통한 통일된 의식도 없는 개인의 정서에 따라 혼자 믿고 받드는 행위로 유일신이 아닌 다신(多神)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말은 우리 민족은 특정집단이나 권력에 의하여 강제로 유일신이나 절대적인 신격을 만들어 믿게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삼신으로부터 시작된 민족의 많은 신들을 누구의 강요도 없이 관습적으로 스스로 믿고 받들었다.

신앙의 특징은 조직과 경전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또 신앙은 정기적인 집회를 가지지 않으며 사람들이 자기가 필요로 할 때 아무 때나 가서 믿고 받들면 된다. 그러므로 신앙은 통일된 의식이 아닌 지역에 따른 관습적인 의식과 특정 경전에 구속되지 않지만, 스스로 자제(自制)하며 믿고 받들어졌다. 그러니 신앙으로 인하여 누구에게 통제를 받거나 강요받는 일은 없다. 특정 집단이나 경전 또는 사람이 자제하지 않지만 스스로 자제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민족의 신앙이라 할 수 있는 무교는 경전이나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다. 경전이 없어도 인간의 본성을 깨우치고 우주의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의 가치를 인정하여 더불어 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왔다. 무교는 자연의 법칙을 순응하고 스스로 믿고 받드는 신앙이었지 특정인 강요하고 통제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상고시대엔 요천(繞天)이라는 의식이 있었다. 요천이란 멀리 지나간 일을 되새겨서 근본에 보답함은 곧 금생(今生)을 거듭하여 뒤에까지 계속하여 보전코자 하는 가르침이라 했다.

이것이 바로 고조선과 예맥의 무천(舞天),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마한의 소도(蘇塗)라는 제사의식이다. 종합하면 소도라는 신성한 곳에서 동쪽을 향하여 재물을 바치고 북을 치고 장단에 맞춰 하늘을 향해 춤을 추면서 뜨는 해와 달과 별을 맞이하는 의식이 요천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이 오늘날 굿의 기원이며 지금도 무당들이 행하고 있는 일월성신맞이 굿이다. 이렇게 시작된 무교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그 시대의 정서를 가슴에 심어주고, 굿이라는 형태를 빌어서 좁게는 개인, 나아가서는 마을, 더 나아가서는 나라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면서 민중과 함께 하여왔다.

이렇게 민중에게 굿을 통하여 무교의 가장 큰 근본인 생생지생(生生之生)을 자연스럽게 가르치며 실천해 왔다. 생생지생이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정신이다. 다른 말로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이렇게 모든 사물을 존중하여 신격을 부여하게 되었으며 이를 섬기는 사람, 즉 무당을 만신(萬神)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생생지생은 상생과 달리 두 당사자 또는 집단의 합의가 아무런 상관없는 제3자도 유익해야 한다는 정신으로 이 시대가 추구해야 할 정신이다.

굿이 종교적 가치로써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수없이 많다. 마을굿은 일상생활에서 생긴 이웃 간의 반목과 개인 간의 갈등을 모두 풀어버리고 서로 협력하여 마을의 발전과 개인의 번영을 위하는 화해동참(和解同參)과 해원상생(解寃相生)을 이루어 냄으로서 민족의 대동단결을 이끌어 내는 하나의 구심점 역할을 하여왔다.

무교의 몰락은 바로 민족의 정체성을 상실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무교의 탄압이 극에 달한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를 돌이켜 보라. 그 시대에는 민족의 정체성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그 시대는 우리 것을 생각 할 수도 없는 남의 정신으로, 남의 시각으로, 남의 잣대로 살아가던 시대란 것을 알 수가 있다. 즉, 타 민족의 이념과 사상으로 물들어 버린 우리들은 스스로 우리 것을 폄하하고 매도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가 전통신앙 또는 문화라고만 생각하는 무교가 바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살아 숨 쉬는 민족종교라는 것을 인식할 때, 민족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진정한 자주국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유라시아역사문화콘텐츠학회 이사

-한국무교학회 이사

-명지대 사회교육원 겸임교수

-무속칼럼니스트,무속공연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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