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걸어요 통일의 길] 5. 북한 주민생활 바꾸는 장마당
자본주의 즐기는 北 2030 … 장마당은 ‘한류바람’ 진원지
2017년 05월 08일(월) 00:00

지난달 13일 열린 여명거리 준공식에서 공개된 여명거리의 모습을 조선신보가 4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한국인이라면 통일은 누구나 꿈꾸는 미래다. 다만, 방식이 다를뿐. 북한 주민들이 변화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장마당’(시장)이 있다. 아시아·세계를 넘어 북한에 부는 한류 바람도 진원지는 장마당이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칼머리’ 등 청년들의 헤어스타일과 패션에서 통일을 느낀다. 북한주민들의 생활변화를 이끄는 ‘장마당’을 들여다보자.

◇북한 공설시장 383곳…상품이 넘쳐난다=북한 전역에는 383개 정도의 공설시장이 있다. 또 이보다 많은 비공식시장도 운영되고 있다.

이는 정은이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가 ‘북한주민생활의 변화상에 관한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밝힌 연구결과다.

정 교수에 따르면 19개 행정구역과 3개 군으로 이뤄진 평양은 각 구역마다 1곳 이상씩, 총 31곳의 시장이 운영되고 있다.

이를 북한 전체 행정구역으로 확대하면 24개 시에 평균 4∼8곳, 138개 군에는 각 1곳 이상, 그리고 21개 구역에 각 2곳 등을 포함해 총 383곳의 공설시장이 돌아가고 있다는 추산이다. 이는 일정한 시설을 갖추고 국가에 세금을 내면서 운영하는 ‘공설시장’에 대한 집계다. 여기에다가 이른바 ‘골목시장’, ‘메뚜기 시장’ 등 ‘비공식시장’은 공설시장의 최소 2배 이상은 될 것으로 추정했다.

정 교수는 각 지역 탈북자 심층면접 조사와 구글어스(Google Earth)에 나타난 누적 변화 등을 종합해 이 같은 현황을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논문에서 “북한은 시장의 발전으로 인해 상품이 부족한 상황이 아니라 넘쳐나는 것이 문제가 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의 진화는 계층화를 낳고 있다.

서울이 한강을 중심으로 강남과 강북으로 나뉘듯, 평양은 대동강을 중심으로 동평양과 서평양으로 분류된다고 했다. 서평양은 부자동네인 강남에, 동평양은 강북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서평양 중에서도 중구역·모란봉·보통강 구역 등은 주택가격이 10만(약 1억원)∼15만 달러를 호가하는 반면, 동평양 등의 주택가격은 이의 5분의 1 수준인 2만 달러로 계층화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시장의 분업화도 뚜렷해지고 있다. 신의주를 중심으로 중국 선양·칭다오·단둥 등을 거쳐 가전제품이나 화장품·자동차·기계부속 등 고가 상품이 거래되고 있다. 평양과 가까운 평성 시장은 전국 옷 가공 및 도매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각 지역 도매시장 간 네트워킹과 대량 물류 이동이 가능하게 된 데에는 도로와 운송수단의 개선이 큰 몫을 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운송업의 발달은 상품의 대량유통이 가능하도록 해 상품 가격을 하락시키고 전국 어디서나 동질의 상품에는 동일한 가격이 형성되도록 함으로써 가격을 안정시키는데 기여했다고 덧붙였다. 즉, 평양과 신의주, 혜산의 쌀 1㎏당 가격 차이가 거의 없어지는 효과를 낳았고, 지역별 환율 변동 차이도 줄었다.

◇평양, 사유화 빠르게 진전=북한의 엘리트층이 거주하는 평양에서 시장경제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곽인옥 서울연구원 연구위원과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평양 시장경제 실태와 특징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 “(평양의) 공식 경제비중은 13.3%, 비공식 경제비중은 86.7%로 파악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평양의 기업소, 상점, 식당, 자동차, 백화점 등은 겉으로는 국가 기업소 명의를 걸어 놓았을 뿐 개인이 자금을 투자하고 운영해 이윤을 창출하고 있다”며 “사유화가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장경제의 상위에는 국가 특권기관과 내각하의 무역회사가 독점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며 “이들은 국가 재산인 광석, 수산물, 농산물, 노동력을 수출하고, 수출대금의 일부로 중국으로부터 식량과 생필품을 수입해 전국적으로 유통하면서 막대한 부를 창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北 시장에 소고기 등장…택시 영업도 확대”=북한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택시영업이 확대되고 일반주민들이 접하기 힘든 소고기가 시장에 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강택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발간한 한국개발연구원(KDI) 북한경제리뷰 4월호에 게재한 ‘2016년 북한 시장 동향’ 보고서에서 “북한 당국이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해 시장영역이 확대되는 것을 묵인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해 북한의 시장 물가는 안정세를 보였고, 시장 규모 역시 꾸준히 확대돼 국영 부문과 시장 부문이 밀접하게 결합해 발전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시장에서 관찰되는 변화와 관련해 2012년께부터 공식적으로 허용된 개인약국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고, 택시영업이 활발해지면서 평양에만 1500대 이상이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산이 대부분이지만 소고기가 시장에 등장한 것 역시 최근의 북한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변화 양상 중 하나다.

북한에서 소는 생산수단으로 간주돼 공동소유만 가능하므로 사적인 도살이 금지돼 있다. 이처럼 소에 대한 관리가 엄격해 일반 주민은 소고기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지만 최근 시장에서 소고기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임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시장의 발전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라며 “이는 북한 당국이 볼 때 아직까지 체제나 정권 유지에 위협적 요소보다 효용성이 큰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北 청년들, 한류 스타일=북한 공안당국의 ‘비사회주의 문화’에 대한 강력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머리 모양이나 패션을 남한 스타일로 바꾸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고 북한 전문매체인 데일리NK가 최근 보도했다.

함경북도 소식통은 이 매체와의 통화에서 “고리타분한 조선(북한) 머리보다 자본주의 스타일의 머리 모양을 즐기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다”며 “청진과 회령 등의 도시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청년들은 최근 머리를 연한 갈색으로 염색하거나 앞머리를 삐죽삐죽 길게 내린 ‘칼머리’, 몸에 달라붙은 ‘맘보바지’ 등을 선호한다.

북한이 이런 행위를 ‘비사회주의 문화’로 규정하고 공안당국을 내세워 통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20∼30대의 ‘장마당’ 세대들은 모자를 쓰거나 수건 등을 이용해 머리를 가리는 방법으로 단속을 피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주장했다.

소식통은 “이러한 문화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라며 “남조선 드라마나 영화가 청년들의 몸치장뿐 아니라 의식도 변화시킨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정욱기자 jw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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