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시간속을 걷다]<5>1946년 미영스튜디오
2017년 03월 16일(목) 00:00 가가
70년 세월 켜켜이 추억속 그 사진관
사진관에 앉아 주인 조한범(66)씨와 인터뷰를 하는데 20대 초반 젊은이가 들어왔다. 사진 촬영을 하겠다는 그에게 주인장이 용도를 물었다. 여권이나 이력서에 넣을 사진인가 싶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좀 의외였다. “선원수첩에 붙일 사진인데요.” 청년의 말을 듣고 “아, 여기가 목포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관이 문을 연 70년 세월 동안 ‘바다’로 나가 삶을 이어가려는 수많은 선원들이 이 곳에서 사진을 찍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을 터였다.
목포역 바로 인근에 위치한 ‘미영스튜디오’의 원래 이름은 미영사였다. 올해 문을 연지 71년 째로 처음 ‘그자리’ 그대로다. 일본식 가옥이었던 건물이 40여년 전 5층짜리 건물로 바뀌었을 뿐이다.
미영사는 초창기 후지, 코닥 등 필름을 비롯한 사진 관련 제품들을 판매하고 사진 촬영도 함께 했다. 홍도 등 섬으로 들어가는 선착장 슈퍼마켓에서도 필름을 판매하던 시절엔 매출이 어마어마했고 제주도까지 물건을 납품했다. 본사에서는 미영사를 ‘호남 지역 보증 수표’로 불렀다.
섬마을에 다니며 사진을 찍어주는 일도 많았다. 섬 사람들 결혼식이나 환갑잔치 모습을 앵글에 담았다. 나이 든 섬 사람들 중에는 ‘사진은 무조건 미영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도 많단다.
미영사의 원래 주인은 김호중씨였다. 조씨는 39년 전 그에게서 가게를 이어받었다. 첫 만남은 ‘악연’에서 시작됐지만 결과는 ‘행운’이었다. 조씨는 당시 목포 2호 광장에서 ‘아름사’를 운영중이었다. 누군가 조씨가 김씨 거래처에 납품을 하고 있다며 음해를 했고 자초지종을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에 만남이 이뤄졌다.
“선창가 횟집에서 만났죠. 회 한 접시가 3000원 하던 시절이었죠. 어르신의 거래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저 절대 그런 사람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오해를 풀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전화가 왔어요. 당신 사진관을 이어받을 생각이 없냐고요. 대를 이어서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자식들이 서울대 출신으로 다 제일을 하고 있어 마땅히 뒤를 이을 사람이 없으셔서 고민중이셨나 봅니다.”
‘자네가 인수하소’라는 말과 함께 가게 이름까지 그대로 물려준 김씨를 그는 지금도 은인이라고 생각한다.
1980년∼90년대는 활황이었다. 특히 목포에서 처음으로 자동 인화기를 구입했던 1980년대 초는 최전성기였다. 많을 땐 하루에 2만 2000장을 인화하기도 했고, 평균 5000장이 넘었다. 한창 때는 직원을 9명까지 뒀다. 광주에서 유명한 사진 기사를 연봉 5000만원과 거주 할 아파트까지 제공한 후 모셔오기도 했다.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 등으로 사진관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한 때 목포에 100여개 넘었던 사진관은 이제 30여개 정도 남았다. 미영스튜디오 역시 직원을 줄여야 했다. 사진을 전공한 아들과 둘이서 운영을 하던 기간을 거쳐 2년 전부터는 혼자 사진관을 지키고 있다. 학교 앨범 작업 등을 할 때만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아들이 함께 작업한다. 4층까지 스튜디오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아기 사진 촬영을 접으면서 1층과 2층만 사용하고 있다.
단골 손님들은 언제나 반갑다. 백일 사진을 찍었던 이들이 이제는 결혼해 아이들을 데려와 다시 가족 사진을 찍는다. 지난 설날 연휴기간, 스무 가족의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한곳에 오래 있다보니 가족처럼 느껴 어려운 부탁을 하는 이도 있다.
“언젠가 가족 사진을 찍은 분이 오셔서 며느리 사진을 파달라고 하는 거예요. 며느리가 집을 나갔다는 말을 하면서요. 제가 그랬어요. 사진에 찍힌 세 아이들에게는 이 엄마가 가장 소중한 사람일 수 있다고. 잠시 기다려보자고요. 얼마 후 엄마는 다시 돌아왔고, 지금 잘 살고 있어요.(웃음)“
흑백필름, 컬러, 디지털 시대를 모두 아우른 그에게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손님을 가족처럼 대하는 것이다. 이날 70대 할머니가 휴대폰에 담긴 사진을 정리하러 왔을 때 일일이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조씨는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으로도 활동중이다. 사진관에는 백두산 천지와 목포 전경 등 그가 찍은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특히 33년전 찍은 목포 전경 사진은 지금까지 6000만원어치가 팔린 히트작이다. 삼학도에서 바라본 목포 시내 전경을 담은 와이드 사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남진등 수많은 사람들이 구입했고 목포 지역 가게들이 개업할 때면 많이 사간다.
조씨는 지난해 개업 70년을 맞아 어르신들을 위한 특별행사를 진행했다. 60∼100세 노인들을 대상으로 모든 사진에 대해 50% 할인 행사를 열었고 올해는 70∼100세 어르신 영정 사진을 50% 할인하고 있다.
“세월이 지날수록 내 집에 오는 손님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조씨는 “좋은 인연’을 만나 오랫동안 사진관을 운영할 수 있었다”며 작은 부분이나마 고객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
목포역 바로 인근에 위치한 ‘미영스튜디오’의 원래 이름은 미영사였다. 올해 문을 연지 71년 째로 처음 ‘그자리’ 그대로다. 일본식 가옥이었던 건물이 40여년 전 5층짜리 건물로 바뀌었을 뿐이다.
미영사는 초창기 후지, 코닥 등 필름을 비롯한 사진 관련 제품들을 판매하고 사진 촬영도 함께 했다. 홍도 등 섬으로 들어가는 선착장 슈퍼마켓에서도 필름을 판매하던 시절엔 매출이 어마어마했고 제주도까지 물건을 납품했다. 본사에서는 미영사를 ‘호남 지역 보증 수표’로 불렀다.
“선창가 횟집에서 만났죠. 회 한 접시가 3000원 하던 시절이었죠. 어르신의 거래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저 절대 그런 사람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오해를 풀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전화가 왔어요. 당신 사진관을 이어받을 생각이 없냐고요. 대를 이어서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자식들이 서울대 출신으로 다 제일을 하고 있어 마땅히 뒤를 이을 사람이 없으셔서 고민중이셨나 봅니다.”
‘자네가 인수하소’라는 말과 함께 가게 이름까지 그대로 물려준 김씨를 그는 지금도 은인이라고 생각한다.
1980년∼90년대는 활황이었다. 특히 목포에서 처음으로 자동 인화기를 구입했던 1980년대 초는 최전성기였다. 많을 땐 하루에 2만 2000장을 인화하기도 했고, 평균 5000장이 넘었다. 한창 때는 직원을 9명까지 뒀다. 광주에서 유명한 사진 기사를 연봉 5000만원과 거주 할 아파트까지 제공한 후 모셔오기도 했다.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 등으로 사진관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한 때 목포에 100여개 넘었던 사진관은 이제 30여개 정도 남았다. 미영스튜디오 역시 직원을 줄여야 했다. 사진을 전공한 아들과 둘이서 운영을 하던 기간을 거쳐 2년 전부터는 혼자 사진관을 지키고 있다. 학교 앨범 작업 등을 할 때만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아들이 함께 작업한다. 4층까지 스튜디오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아기 사진 촬영을 접으면서 1층과 2층만 사용하고 있다.
단골 손님들은 언제나 반갑다. 백일 사진을 찍었던 이들이 이제는 결혼해 아이들을 데려와 다시 가족 사진을 찍는다. 지난 설날 연휴기간, 스무 가족의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한곳에 오래 있다보니 가족처럼 느껴 어려운 부탁을 하는 이도 있다.
“언젠가 가족 사진을 찍은 분이 오셔서 며느리 사진을 파달라고 하는 거예요. 며느리가 집을 나갔다는 말을 하면서요. 제가 그랬어요. 사진에 찍힌 세 아이들에게는 이 엄마가 가장 소중한 사람일 수 있다고. 잠시 기다려보자고요. 얼마 후 엄마는 다시 돌아왔고, 지금 잘 살고 있어요.(웃음)“
흑백필름, 컬러, 디지털 시대를 모두 아우른 그에게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손님을 가족처럼 대하는 것이다. 이날 70대 할머니가 휴대폰에 담긴 사진을 정리하러 왔을 때 일일이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조씨는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으로도 활동중이다. 사진관에는 백두산 천지와 목포 전경 등 그가 찍은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특히 33년전 찍은 목포 전경 사진은 지금까지 6000만원어치가 팔린 히트작이다. 삼학도에서 바라본 목포 시내 전경을 담은 와이드 사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남진등 수많은 사람들이 구입했고 목포 지역 가게들이 개업할 때면 많이 사간다.
조씨는 지난해 개업 70년을 맞아 어르신들을 위한 특별행사를 진행했다. 60∼100세 노인들을 대상으로 모든 사진에 대해 50% 할인 행사를 열었고 올해는 70∼100세 어르신 영정 사진을 50% 할인하고 있다.
“세월이 지날수록 내 집에 오는 손님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조씨는 “좋은 인연’을 만나 오랫동안 사진관을 운영할 수 있었다”며 작은 부분이나마 고객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