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유럽 ‘철의 실크로드’ 관문, 잠에서 깨어나다
극동 러시아 거쳐 유럽행 출발지·아·태 진출 거점 항구
2012년 APEC 정상회의 계기 공항·도로 등 탈바꿈
푸틴 ‘신 동방정책’ 추진 … 남·북·러 경제협력기구 구상
2015년 08월 20일(목) 00:00

러시아 극동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토크. ‘APEC의 상징’ 블라디보스토크 대교와 항구가 펼쳐져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박정욱기자 jwpark@kwangju.co.kr

한국은 유라시아다. 목포는 한반도의 남쪽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뒤집어보면 유라시아 대륙의 출발점인 셈이다.

전남도교육청은 당초 시베리아횡단 독서토론열차학교를 목포에서 출발해 북한을 경유하고자 했다. 호남선의 시발점인 목포를 출발해 민주성지 광주, 수도 서울에 이어 북녘땅을 거쳐 시베리아를 가로지르는 프로젝트였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세계 평화와 남북 통일의 의미를 담아 한반도종단열차(TKR)와 시베리아횡단열차(TSR)를 연결한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북한과의 교류가 끊기면서 한반도는 섬 아닌 섬이 되어버렸고, 북한을 경유한다는 원대한 열차학교의 꿈도 다음 기회로 미뤄졌다.

◇APEC의 기적=독서토론열차학교는 극동의 중심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됐다. 공항에서 한 시간을 달리면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다. 가장 눈에 띈 것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큰 다리다. 2012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 루스키섬과 블라디보스토크 도심을 잇는 3.1㎞의 세계 최장 사장교(斜張橋)다.

‘블라디’는 러시아어로 ‘지배하다’는 뜻이고, ‘보스토크’는 ‘동방’으로, 도시명 블라디보스토크는 동방을 지배한다는 뜻이다.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오랜 동면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다. 공항, 도로, 대교, 호텔, 가스,상하수도, 문화시설 등이 한꺼번에 탈바꿈했다. 러시아 정부가 APEC 개최를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 쏟아부은 예산이 무려 210억달러(약 23조원)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극동 러시아와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출발지이자 아시아·태평양 진출을 위한 거점 항구다. 천연가스 등 극동 러시아의 풍부한 자원을 운반하는 전초기지이다.

열차 플랫폼에는 숫자 ‘9288’이 새겨진 조형물이 서 있다.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 사이 TSR의 길이 ‘9288㎞’를 의미하는 상징물이다. 역사 맞은편 해안에는 항구가 붙어 있다.

유럽 대륙으로 향하는 관문인 이 곳을 확보하기 위해 동북아 각국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블라디보스토크를 동아시아와의 협력의 창으로 열어 번영하는 극동의 수도로 만든다는 구상을 밝혔다. ‘신(新)동방정책’이다. 푸틴이 다음달 초 블라디보스토크를 찾는다. ‘동방경제포럼’을 참석하기 위해서다.

동방경제포럼은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고위급 관료가 참석해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게 된다. 러시아는 이번 포럼에 남북한 장관을 동시에 초청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 등 남·북·러 경제협력 사업을 논의할 목적으로 보인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러시아산 유연탄을 러시아 하산과 북한 나진항을 잇는 54㎞ 구간 철도로 운송한 뒤 나진항에서 화물선에 옮겨 실어 국내 항구로 가져오는 복합물류 사업이다. 북한 나진항과 러시아 하산을 잇는 철도가 완공되면서 블라디보스토크는 한반도와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연결통로다.

◇남·북·러 경제협력=러시아는 동방경제포럼을 통해 남·북·러 3국 협력을 위한 구체적 사업 방안과 이를 협의한 3자 실무협의기구를 만들려 하고 있다. 알렉산드르 갈류시카 극동개발부 장관은 이 포럼에서 ‘한·러 극동-시베리아개발공동위원회 회의’와 ‘한-러 도지사포럼’도 개최한다고 밝혔다. 또 외국과의 전력 협력을 위한 섹션 및 ‘국가간 대화의 창’도 예정돼 있다. 이 국가간 대화의 창에서 남북러 3국 프로젝트를 논의할 ‘한반도 대화’ 회의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남·북·러 3자 프로젝트 사업으로 성사시키려는 것이 나진에서 시작해 한반도로 이어지는 거대한 통합 전력망(그리드) 구축이다. 2015년 들어 러시아는 동해권을 잇는 통합 전력망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위시한 극동 지역은 놓칠 수 없는 신시장이다.

사할린에서 석유와 천유가스를 들여오는 등 기존의 에너지 확보 기지로서 입지뿐만 아니라 아직 개발이 덜 된 만큼 향후 인프라스트럭처 건설사업에 뛰어들 기회가 무궁무진하다. 무엇보다 TSR-TKR 연결, 남ㆍ북ㆍ러 가스관 연결, 전력사업망 연계 등 대형 프로젝트들이 극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개별 사업으로는 나호트카 석유화학단지 건설, 블라디보스토크 및 하바롭스크 국제공항 현대화, 블라디보스토크 곡물터미널 건설, 보스토치니 항만특구 건설프로젝트 등 우리 기업들의 참여를 요하는 사업이 많다.

◇항일독립운동 주요 무대=이 곳은 또 일제시대 러시아로 건너간 독립투사들의 주요 활동무대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정착한 한인들은 ‘신한촌’이라는 코리아타운을 세워 한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자 애썼다. 나라를 잃고 러시아 땅으로 건너간 우리 조상들의 고난이 고스란히 간직된 곳으로, 연해주 항일독립운동의 기지이자 민족의 성전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박정욱기자 jw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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