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10 우승자 광주 출신 래퍼 조광일 “계속 하는 자에게 기회 올 것”
2024년 09월 14일(토) 09:40
광주 남구 출신…유튜브 ‘곡예사’ 조회수 1900만, 최근 기아 시구 및 공연
속사포 랩과 파열음 특징, 올해 ‘광순응’ 발매 광주 로컬 힙합씬과도 교류

최근 광산구 모 카페에서 광주 출신 래퍼 조광일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광주에서 서울로 상경하기까지의 여정, 쇼미더머니 우승 경험과 폐지에 대한 생각 등을 들려줬다.

“‘쇼미더머니’ 우승 전까지 힙합 씬에 저를 향한 의심의 시선이 많았습니다. 그런 목소리에 정면으로 응수하고 나 자신을 ‘증명’하는 과정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죠. 광주에서 나고 자라며 ‘부드러운직선’, ‘보헤미안 소극장’에서 활동하고 로컬 힙합크루에도 지원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지역에서 힙합으로 성공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제가 선례가 돼 희망을 준다면 좋겠습니다”

속사포 랩과 파열음이 특징적인 래퍼 조광일은 유튜브에서 자신의 노래 ‘곡예사’로 19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쇼미더머니 10에서 우승하고 힙합 서바이벌 ‘랩컵’에서 심사위원을 맡는 등, 현재 한국 힙합씬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 중인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얼마전 신보 ‘광순응’을 발표했으며 ‘암순응’으로 KHA 올해의 신인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최근 광산구 한 카페에서 래퍼 조광일을 만났다. 이날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시구 및 공연을 위해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다”는 조광일은 매스컴에서 봤던 것처럼 강렬한 인상이었다.

그는 ‘조팡일’, ‘조엘사’ 등 다양한 별명을 지녔으나 그중 ‘레퍼’라는 별명에는 특별한 추억이 담겨 있다. 쇼미 우승 당시 고향인 남구 주월동에서 축하 현수막을 걸어주며 ‘레퍼(래퍼)’라는 오타를 내는 웃지 못할 헤프닝이 있던 것.

조광일은 “별명까지 탄생하면서 유쾌하게 넘어갔던 사건으로 기억한다. 광주 성심병원에서 태어나 광산중 등 지역에서 중·고교 및 대학까지 나왔는데 ‘광주의 아들’이라 불러주시니 영광스럽다”고 했다.

래퍼 ‘조광일’ <사자레코드 제공>
조광일은 ‘쇼미더머니 폐지’에 대한 생각도 들려줬다. 지역 래퍼들이 중앙으로 진출할 수 있던 계기였으나 폐지 이후 새로운 스타를 마주할 기회 자체가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그는 “사실상 ‘쇼미’가 힙합을 메이저 장르로 진전시키고 대중에게 알리는 ‘첫 시작점’과 같았는데, 그 영향력이 다른 프로그램에서 계속됐으면 한다”고 언급했다.

조광일은 학창시절 노란색 꽁지머리와 화려한 귀걸이로 이목이 쏠렸던 추억도 꺼내 놓았다. “그 시절 용돈이 5000원이었는데 친구들에게 떡볶이를 사주는 작은 ‘FLEX(뽐내기 소비)’에 빠진 적이 있다. 물론 친구들은 나를 ‘물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며 웃어 보였다.

그는 친구, 게임(스타크래프트)도 좋아했지만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음악’이었다. 수업 시간에도 ‘줄 이어폰’을 귀밑머리 아래로 감춰 힙합 레전드 에미넴부터 다이나믹듀오, 드렁큰타이거 등 노래를 몰래 들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제스처를 취한 조광일.
“스물셋에 서울로 올라와 작은 방에서 지내며 ‘벌스(Verse·40초 분량의 가사묶음)’를 하루에 7개 정도 창작했어요. 힘들었지만 당시 만든 곡들이 자양분이 된 것 같습니다.”

그는 밤낮 가리지 않고 랩에만 집중했다고 한다. 비좁은 방에서 눈 뜨면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었다.

랩네임(예명)이 ‘조광일’ 실명 석자인 연유도 궁금했다. 화려한 랩네임이 난무하는 트렌드와 달리 본명을 사용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조광일은 “물론 언더그라운드 시절 랩네임을 썼던 적도 있지만 ‘일상의 조광일’과 ‘랩 하는 조광일’을 분리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면서 “실명으로 음악 하면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다. ‘자소서’, ‘광순응’ 등 곡들에서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낸 것도 그런 이유”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조광일의 작품에는 자신만의 철학과 삶의 여정이 녹아 있다. 나아가 광주에 대한 샤라웃(Shout out·힙합씬에서 특정 대상을 언급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가령 쇼미(음원미션)에서 코드쿤스트 팀과 불렀던 곡 ‘Wake up’에는 “이거 듣는 날 아들은 광주야/ 오늘 마지막으로 울고 웃을게”라는 가사로, 삶을 톺아보듯 써내려간 ‘자소서’에는 “180의 키에 넌 날 처음 본 걸 알어 고향은 전라남도 광주”라는 노랫말로 지역을 떠올린다. 자신의 삶과 고향에 천착하는 가사들을 보며 ‘오피셜 조광일’(래퍼 ‘언오피셜보이’처럼)이라는 랩 네임을 추천하자 웃어 보였다.

조광일은 사자레코드로 소속사를 옮긴 뒤 쿤타, 스컬, 식보이 등 정상급 아티스트와 협업 중이다. 레게 색채가 짙은 래퍼들이 다수 포진한 레이블이기에 색다른 작업물들이 기대된다.

그는 “사실 내가 하는 리듬, 래핑이 ‘레게’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는데 형들(쿤타, 스컬)의 음악을 듣고 관심을 갖게 됐다”며 “장르적 측면에서 다양한 콜라보를 기대해도 좋겠다”고 했다.

콜라보 무대를 꾸린다면 여성 보컬이나 로우톤의 ‘끈적한 랩’을 하는 래퍼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트랜디한 음색으로 주목받는 ‘카더가든’의 이름도 언급됐다.

래퍼 ‘조광일’ <사자레코드 제공>
그의 장기인 ‘속사포 래핑’에 대해서도 물었다. 통상 16마디 안에 담는 음절 수가 타 래퍼보다 2배 이상 많기에 벌스(가사)들을 어떻게 다 외우는지, 실수하면 어떻게 대처하는지 궁금했다.

“별다른 노하우는 없고 그저 외워질 때까지 숙달했다”며 “평소에 말을 안 해서 그런지 가사를 쓰고 외우는 데 큰 어려움은 없지만, 무대에 서면 100%를 준비해도 70%밖에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어 “물론 가사를 잊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사브레’라는 뜻 없는 추임새가 나도 모르게 나오는데, 과자 이름처럼 들리기도 한다”라며 “일단 공연을 완성시키는게 중요하기에 자연스럽게 넘기는 방법”이라며 웃었다.

힙합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는 “나이대가 있는 분들이 보시기에 이 장르가 ‘껄렁껄렁’해 보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알고 보면 랩하는 사람들이 가장 착하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힙합 씬에 강하고 센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멋있게 풀어내는 래퍼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단다.

“광주에 오래 살아서인지 지역에서 예술로 성공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요. ‘노력하면 빛을 볼 거다’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생각에 믿음을 준다는 면에서는 도움이 되더라고요.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타이밍이 오는 데 노력한 자만이 그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죠.”

/글·사진=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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