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성 질병이 의심되는 노동자라면 누구라도 도움받으세요”
2023년 04월 19일(수) 20:30
[조선대병원 직업병안심센터]
광주·전라·제주권 노동자 모니터링
임상진료 통해 업무기인성 파악
직업적 질병 발견 추가피해 예방
업무 연관성 판단시 고용부에 보고

조선대 직업병 안심센터를 찾은 환자가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접수를 하는 모습. /나명주기자mjna@kwangju.co.kr

배전 전기원인 A씨는 잦은 야외작업 탓에 자외선에 쉽게 노출되는 환경에서 근무 중이다. 수십년째 배전 전기원으로 일하다 보니 A씨는 얼굴이며 팔, 목 등 피부 곳곳에는 반점들이 생겨났다. A씨는 그러다 문득 “혹시 피부암이 아닐까”하는 걱정에 빠져 들었다. 그러다 주위에 추천을 받아 조선대병원 직업병안심센터를 알게됐다. 이 곳에서 A씨는 피부과와 연계해 조직검사를 진행했는데 다행히 피부암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A씨는 “직업병안심센터에서 조직검사를 통해 피부암으로부터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었다”며 “피부암은 아니지만 다른 피부 질환을 발견해 치료까지 연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역 노동자들 ‘주치의’, 직업병 예방의 첨병 역할 톡톡

‘조선대병원 직업병 안심센터’(센터장 이철갑)가 광주·전라·제주 지역 노동자들의 ‘주치의’이자 직업병 예방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직업병 발생 현황을 모니터링 하기 위해 지난 2022년 전국 6개 지방노동청에 ‘직업병안심센터’를 설치하고, 운영을 대학병원에 위탁했다. 광주와 전라남북도·제주도지역의 경우는 조선대병원이 위탁 병원으로 선정, 병원 내에 직업병안심센터를 개소하고 노동자 모니터링 운영을 시작했다.

직업병 안심센터는 A씨처럼 직업성 질병 발병 환자가 병원을 방문할 경우, 임상진료과 진료단계에서 업무기인성을 파악해 직업성 질병을 신속하게 발견, 추가피해를 예방하고 필요 시 원인조사 등 후속조치를 수행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임무를 맡는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조선대병원 직업병 안심센터는 광주와 전라남북도·제주도지역 근로자의 직업병을 모니터링 해 데이터베이스(DB)화하는 한편, 호남·제주지역 산업 특성과 연관된 직업과 질병의 관련성을 증명해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조선대 직업병 안심센터는 환자를 심층 진료해 질병과 업무의 연관성을 조사하는 만큼 산업재해 처리에 도움을 주는 기관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질병 재해 수사의 전문성을 높이고 직업병을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조선대 직업병 안심센터에서는 자신의 질병이 직업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노동자 누구나 센터에서 직업환경전문의에게 상담과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한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과 산재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사람도 센터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센터에서는 환자에게 진료비와 검사비 등 상당 부분을 지원해 준다.

조선대병원 직업병 안심센터뿐 아니라 지역 내 일반 병원 혹은 조선대병원과 협력을 맺은 광주·전라·제주 지역의 7개 병원(광주첨단병원, KS병원, KMI 광주센터, 근로복지공단 순천병원, 목포기독병원, 대자인병원, 제주한라병원)을 방문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병원 의사가 환자의 질병이 직업과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환자를 센터와 연결해주는 체계가 마련돼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병이 직업병이 아닐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직업과 관련된 질병이 명확히 아닌 경우를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질병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센터에서는 환자의 질병이 업무와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고용노동부에 보고한다. 특히 급성 중독과 같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 명시된 24개의 직업성 질병 환자가 발생하면 즉각 관할 노동부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고용노동부는 보고된 질병이 중대재해처벌법에 명시된 질병이면 센터의 도움을 받아 수사에 들어가고, 데이터를 축적해 같은 직업병이 나타나지 않도록 예방 사업을 실시한다.

지난해 센터에 접수된 직업병을 살펴보면 전국 최대 곡창지대인 만큼, 농·축산업과 관련된 질병이 많았다고 한다.

조선대 직업병 안심센터는 이 가운데 축산업자, 수의사 등이 주로 겪는 인수공통감염병인 ‘Q열’ 질병 증세를 보인 여러 환자들을 확인해 산재처리를 도왔다.

이처럼 업무 중에 발생한 노동자들의 ‘직업병’을 치료하고, 나아가 산업재해로 인정받게 돕는 등 근로자의 건강과 가정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아직 직업병 센터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이 많다

직업과 연관된 질병은 원인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도 일회성 치료에 그치면서 병이 재발하는 케이스가 잦다.

조선대 직업병 안심센터가 여러 노동단체들을 만나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산업현장에서는 노동자 644명이 숨졌다. 숨진 노동자 대부분은 50인 미만의 영세한 사업장이거나 50억원 이하 소규모 건설현장 노동자였다. 대형 사업장보다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이 지켜지는 환경이 열악하다.

조선대 직업병 안심센터는 이들을 위한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올해 초 광주·전라·제주권역 5개 ‘근로자건강센터’와 간담회를 갖고, 아직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대상이 아닌 5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나 특수고용직 노동자 등 지역 내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소규모 사업장의 특성상 노동자가 직업성 질환이 의심되더라도 향후 고용 문제를 고려해 쉽게 회사에 알리거나 의료기관에서 직업과 관련한 진술을 꺼리는 경향이 있어, 결국에는 노동자가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사업장의 특성을 고려해 근로자건강센터가 주기적으로 사업장을 방문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조선대 직업병안심센터는 근로자의 안전하고 건강한 생활을 위해 지자체, 의료기관 등과 연계한 다양한 지원책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조선대병원 직업병안심센터 이철갑 센터장

“원인이 명확한 안전사고와 달리 직업성 질병은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어렵습니다. 직업성 질병이 의심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조선대 직업병 안심센터를 찾아 그 원인을 밝히고 치료하는 데 도움을 받길 바랍니다.”

이철갑 조선대 직업병 안심센터장은 “노동자들은 하루 24시간 중 8시간 이상을 회사에서 보낸다. 노동자에게 어떤 질병이 발생하면 직업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직업이 원인이 돼 질병이 발생할 수 있으니 조선대 직업병 안심센터를 찾아달라”고 말했다.

광주 전남을 넘어 전북, 제주에 이르는 노동자들의 직업병을 추적, 예방해야 하는 이 센터장의 어깨는 무거울 수 밖에 없다.

“직업병 안심센터는 특성상 다양한 직업병에 대한 데이터가 확보돼야 적절한 예방이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노동자들의 관심과 내방이 중요합니다. 바로 성과를 내려고 조급해 하진 않습니다. 장기적으로 센터의 연착륙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자체와 의료기관, 근로자들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당장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노동조합 등을 통해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센터가 알려지면서 이르면 2~3년 내 센터는 정착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센터장은 직업병 안심센터의 안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료진의 경우 환자를 진료 시 직업을 적극적으로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인 노동자 또한 치료 및 예방을 위해선 자신의 직업을 밝히는 걸 권장했다.

이철갑 센터장은 “직업성 질병을 통합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미리 찾아내 예방하는 것이 직업병 안심센터의 역할이다”라며 “관할지역 내 여러 병원, 고용노동부 등 관계기관과의 상호협력 시스템을 구축해 역할 수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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