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만에 ‘칠산바다’ 펴낸 이형권 시인 “돌고 돌아 마침내 시의 세계로 돌아 왔어요”
2021년 03월 23일(화) 05:00 가가
남도 감수성·우리문화 열정 오롯이 담겨
문화유산 관심 많아 답사 관련 글·강의
80년대 시화전 등 통해 문예운동 참여도
문화유산 관심 많아 답사 관련 글·강의
80년대 시화전 등 통해 문예운동 참여도
“원래부터 떠돌이 기질이 있었습니다. 민속이나 민요, 무속 같은 분야에 관심도 많았구요. 그러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지요.”
고교 시절 여러 백일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대학(전남대)에 진학해 1학년 때 신문사 현상공모에 시가 당선해 주위를 놀라게 했던 이 형권 시인. 그러나 정작 그는 시인의 길을 걷지 않았다. 내면에 움텄을 시에 대한 열망을 억누르고 파란의 시대를 건너왔다.
그가 돌아왔다. 80년대 광주에서 이십 대를 문학청년으로 보낸 이라면 이형권 시인의 이번 첫 시집을 받아 든 순간 ‘마침내 그가 돌아왔다’는 반응을 보일만하다. 마치 연어가 자기가 태어난 곳을 기억하고 수천, 수만의 길을 돌아 찾아오듯 말이다.
시인은 “오랫동안 돌고 돌아 마침내 시의 자리로 돌아왔다”며 감회어린 안부를 전해왔다. 김형수 시인은 “그가 기왕에 걸어온 길의 출구이자 다시 새로운 또 하나의 입구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므로 이번에 펴낸 시인의 첫 시집 ‘칠산바다’(문학들)는 40여 년만에 펴낸 첫 창작집이자 ‘청춘의 비망록’인 셈이다. 그는 분명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운명까지는 거스를 수 없었다.
“대학 때 용봉문학회에 가입해 문학활동을 했습니다. 국문과 동아리인 비나리에서도 선후배들과 함께 시 공부를 했구요. 당시는 문학을 통해 세상에 대한 모순을 고발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을 꿈꾸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시인은 그렇게 시 공부를 했다. 그러다 틈틈이 문화유산 쪽으로 지평을 넓혀갔는데 당시 이태호 교수의 ‘한국미술’ 강좌가 계기가 됐다. “이태호 교수님 시각으로 풀어낸 남도문화에 대한 아름다음과 깊이에 매료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나자 진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이후 그는 서울로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유홍준 교수가 이끌던 ‘겨레미술공부방’ 연구소에 합류한다.
“답사를 하면서 문화유산과 관련된 다양한 글을 썼습니다. 그런 연유로 ‘나의 문화유산을 찾아서’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지요. 이후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답사와 관련한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답사와 글을 쓰는 일을 병행하게 된 이유다. 전 국토의 대부분을 가봤을 정도로 안 가본 데가 없다. 우리 산하를 떠도는 동안, 문득문득 그의 내면에는 시심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애써 억눌렀던, 아니 잊은 줄 알았던 시에 대한 그리움이 불현 듯 명치끝을 타고 올라왔다. 그렇게 한 줄, 두 줄, 자신만의 창작 노트에 시를 옮겨 적었다.
이번 시집은 ‘떠돌이의 기록’인 셈이다. 우리 국토의 발끝이 닿는 곳마다 거기에는 절절한 아픔과 슬픔, 더러는 그리움이 배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젊은 시절에는 “세상을 바꿀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곤 했지만” 혼자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을 시로 옮길 때면 “알게 모르게 위안을 얻는다”고 한다.
80년대 그는 시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82년 ‘5월항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이승철, 박선욱, 조진태 등과 ‘광주 젊은 벗들’을 결성해 시 낭송 운동과 함께 시화전을 열었다. 이후 1988년에는 ‘광주청년문학회’를 결성해 문예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1990년 진보 문예지 ‘녹두꽃’과 ‘사상문예운동’, ‘창작과비평’ 등에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 때문일까. 이번 시집에는 청춘시절의 뜨거움과 이후 답사를 하면서 느꼈던 우리 땅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 그럼에도 시인의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운명 등이 오롯이 배어 있다.
“지금도 칠산 바다에 가면/ 빈 마을 어귀로 속병 앓는 불빛이 들어오고/ 해안으로 기어오르는 바다 울음소리/ 물썬 개펄 위에 해초들과 누워/ 먼 곳으로 보내는 신호처럼 내 곁에 일렁이고/ 지금도 칠산바다에 가면/ 열린 눈물같이 침몰해가는 겨울…”
표제시 ‘칠산바다’는 뛰어난 서정시다. 남도의 감수성과 문화에 대한 미학이 버무러진 절창이다. 전통적 가락과 구슬프면서도 아련한 정조는 어쩌면 시의 세계로 돌아온 자신에 대한 위로일 수도 있다.
“대학시절엔 선각자적 입장을 노래했기에 이후엔 투사가 되거나 농민이 됐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어요. 지식인의 길을 선택했기에 현실과의 괴리로 시를 쓰지 못한 측면도 있습니다. 물론 저의 변명이지만요. 이제는 저의 감성을 담은 시를 쓰고자 합니다.”
고향이 해남인 그는 곧잘 남도에 들른다. “많은 곳을 다녔지만 남도만큼 풍부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곳은 없다”는 말에서 전라도에 대한 애착이 느껴진다.
한편 곽재구 시인은 추천사에서 “40년 만의 첫 시집 ‘칠산바다’ 속을 배회하며 걷는 동안 시는 세월보다 위대함을 느낀다”고 평하고 김호균 시인은 “그의 ‘저 홀로 피었다 지는 붉은 꽃’처럼 쓸쓸하고도 적막한 아름다움은 그동안 잠들어 있던 우리의 감각을 깨운다”고 덧붙인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고교 시절 여러 백일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대학(전남대)에 진학해 1학년 때 신문사 현상공모에 시가 당선해 주위를 놀라게 했던 이 형권 시인. 그러나 정작 그는 시인의 길을 걷지 않았다. 내면에 움텄을 시에 대한 열망을 억누르고 파란의 시대를 건너왔다.
시인은 “오랫동안 돌고 돌아 마침내 시의 자리로 돌아왔다”며 감회어린 안부를 전해왔다. 김형수 시인은 “그가 기왕에 걸어온 길의 출구이자 다시 새로운 또 하나의 입구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 시인은 그렇게 시 공부를 했다. 그러다 틈틈이 문화유산 쪽으로 지평을 넓혀갔는데 당시 이태호 교수의 ‘한국미술’ 강좌가 계기가 됐다. “이태호 교수님 시각으로 풀어낸 남도문화에 대한 아름다음과 깊이에 매료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나자 진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이후 그는 서울로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유홍준 교수가 이끌던 ‘겨레미술공부방’ 연구소에 합류한다.
“답사를 하면서 문화유산과 관련된 다양한 글을 썼습니다. 그런 연유로 ‘나의 문화유산을 찾아서’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지요. 이후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답사와 관련한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답사와 글을 쓰는 일을 병행하게 된 이유다. 전 국토의 대부분을 가봤을 정도로 안 가본 데가 없다. 우리 산하를 떠도는 동안, 문득문득 그의 내면에는 시심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애써 억눌렀던, 아니 잊은 줄 알았던 시에 대한 그리움이 불현 듯 명치끝을 타고 올라왔다. 그렇게 한 줄, 두 줄, 자신만의 창작 노트에 시를 옮겨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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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그는 시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82년 ‘5월항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이승철, 박선욱, 조진태 등과 ‘광주 젊은 벗들’을 결성해 시 낭송 운동과 함께 시화전을 열었다. 이후 1988년에는 ‘광주청년문학회’를 결성해 문예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1990년 진보 문예지 ‘녹두꽃’과 ‘사상문예운동’, ‘창작과비평’ 등에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 때문일까. 이번 시집에는 청춘시절의 뜨거움과 이후 답사를 하면서 느꼈던 우리 땅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 그럼에도 시인의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운명 등이 오롯이 배어 있다.
“지금도 칠산 바다에 가면/ 빈 마을 어귀로 속병 앓는 불빛이 들어오고/ 해안으로 기어오르는 바다 울음소리/ 물썬 개펄 위에 해초들과 누워/ 먼 곳으로 보내는 신호처럼 내 곁에 일렁이고/ 지금도 칠산바다에 가면/ 열린 눈물같이 침몰해가는 겨울…”
표제시 ‘칠산바다’는 뛰어난 서정시다. 남도의 감수성과 문화에 대한 미학이 버무러진 절창이다. 전통적 가락과 구슬프면서도 아련한 정조는 어쩌면 시의 세계로 돌아온 자신에 대한 위로일 수도 있다.
“대학시절엔 선각자적 입장을 노래했기에 이후엔 투사가 되거나 농민이 됐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어요. 지식인의 길을 선택했기에 현실과의 괴리로 시를 쓰지 못한 측면도 있습니다. 물론 저의 변명이지만요. 이제는 저의 감성을 담은 시를 쓰고자 합니다.”
고향이 해남인 그는 곧잘 남도에 들른다. “많은 곳을 다녔지만 남도만큼 풍부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곳은 없다”는 말에서 전라도에 대한 애착이 느껴진다.
한편 곽재구 시인은 추천사에서 “40년 만의 첫 시집 ‘칠산바다’ 속을 배회하며 걷는 동안 시는 세월보다 위대함을 느낀다”고 평하고 김호균 시인은 “그의 ‘저 홀로 피었다 지는 붉은 꽃’처럼 쓸쓸하고도 적막한 아름다움은 그동안 잠들어 있던 우리의 감각을 깨운다”고 덧붙인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