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필수 제2사회부장·편집부국장] 주식시장의 ‘기울어진 운동장’
2021년 02월 03일(수) 00:00
‘동학개미’와 ‘주린이’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주식 열풍 속에 등장한 대표적인 신조어다. 동학개미는 외세에 맞선 동학농민운동에 빗대 코로나19 폭락장에서 국내 주식시장의 반등을 이끈 개인 투자자다. 주린이는 주식과 어린이를 합친 말로 초보 주식 투자자를 말한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개인투자자(개미)라는 점이다. 두 신조어가 최근 조명을 받는 것은 개미들이 주식시장의 주도 세력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의 3대 세력은 외국인과 기관 그리고 개미들이지만 그동안 개미들이 주도 세력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말 610만 명이던 개미들은 1000만 명으로 늘었고 올해 들어 한 달 만에 이들이 사들인 주식 매수액은 무려 26조 원에 달한다. 개미들이 주식시장에 몰리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에선 동학개미와 같은 의미의 ‘로빈후드’가 주식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고착화된 저금리에 넘쳐 나는 유동성이 주식시장으로 개미들을 불러 모으는 것도 세계적인 추세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지난해는 대세 상승장이어서 주린이라도 웬만하면 이익을 냈지만, 올해는 스마트 개미들조차 수익을 내기기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개미 입장에서 볼 때 주식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다. 자금이나 정보력에서 외국인이나 기관과 비교할 수 없는 데다 매매 기법에 있어서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개인투자자에게 불리한 불공정한 매매 기법의 하나로 공매도 제도를 들 수 있다. 공매도는 주식이 하락할 것을 예상하고 증권사에서 주식을 빌려 팔고 나중에 그만큼 사서 되갚는 제도인데 사실상 외국인이나 기관의 전유물이나 마찬가지다. 개인들은 공매도를 위해 주식을 빌리려고 해도 일정 금액 이상의 자금에다 높은 수수료, 짧은 대여 기간 등 조건이 불리해 사실상 이용하기가 힘들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개인의 공매도 비중이 1.1%에 불과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도 개선해 공정한 기회 제공을

요즘 공매도 폐지를 주장하는 반(反)공매도 운동이 국내외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 미국에선 헤지펀드가 ‘게임스톱’이란 종목을 공매도하자 로빈후드들이 뭉쳐 대거 매수에 나서면서 결국 헤지펀드가 백기를 들었다. 공매도를 놓고 헤지펀드와 로빈후드가 벌이는 전쟁으로 급등락이 심해지자 미국 의회가 공매도를 점검하겠다고 나설 만큼 정치판에서 이슈화가 되기도 했다.

국내에선 3월 15일 재개를 앞둔 공매도를 폐지하거나 다시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식시장 안정을 위해 지난해 3월 공매도를 금지한 후 한 차례 연장해 다음달 재개할 예정인데 차제에 아예 폐지하자는 것이다.

물론 공매도는 주가 거품을 방지하고 유동성을 공급하는 순기능이 있다. 그렇지만 역기능이 워낙 많다. 주가 하락 시기에 하락를 더욱 가속화시킬 우려가 있고 시세 조정 수법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 중화기 부대에 소총으로 맞서야 하는 개미들에겐 출발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는 것과 같다.



불붙은 개미들의 공매도 전쟁

공매도가 탄생한 배경을 봐도 개미들에겐 불공정한 게임이다. 공매도는 하락장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매매 기법의 하나로 만들어졌는데 불리한 조건에서 공매도를 이용하는 개미들은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개미들이 주식시장으로 몰려드는 원인은 투자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더니 어느 날 ‘벼락거지’가 됐다는 자조 섞인 말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자고 나면 부동산 가격은 급등하는데, 은행 이자만으로는 노후를 전혀 대비할 수 없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개미들의 공매도 반대 운동을 보면서 3년 전 비트코인 투자 열풍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당시 암호화폐 시장에 젊은이들이 대거 몰렸던 이유는 외국인이나 기관이라고 해서 정보를 더 많이 가지고 있거나 특별한 매매 기법이 허용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암호화폐 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 공정한 무대였다는 얘기다.

정부가 지금 주식 공매도 제도 개선을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고 한다. 개미들의 요구처럼 폐지하는 것까지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 개선책을 내놓을 필요는 있다고 본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라는 문재인 정부의 모토가 주식시장 제도 개선에도 반영되길 희망한다.

/bung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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