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유일 생황 연주자 신선민 “생황 공연 많이 펼쳐 대중과 친해져야죠”
2021년 02월 03일(수) 00:00
2021 새로운 출발 <8>
부모 모두 국악인…대학선 대금 전공
풍류회 죽선방 결성 계기 생황과 인연
배울곳 없어 서울 오가며 레슨 받아
“다양한 장르 협업…연주 앨범 발매”

광주 유일의 생황 연주자 신선민씨 .

‘생황’. 이름부터 낯설다. 생황은 한국 전통 관악기로 국악기 중 유일하게 화음을 낼 수 있는 악기다. 사람들에게 친숙하지 않지만 조선시대 풍류객이 즐겨 연주했으며 옛 문헌이나 그림 속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영화 ‘사도’(2014)에 삽입된 신비롭과 단아한 소리의 생황 연주는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기도 했다.

꾸준히 생황을 연주하며 그 매력을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연주자가 있다. 광주 유일의 생황 연주자 신선민(31)씨가 그 주인공이다.

최근 광주시 북구 두암동의 한 연습실에서 신 씨를 만났다. 원광대 국악과 박사과정을 밟으며 현재 논문을 쓰고 있다는 그는 “생황은 보편화되지 않아 중국 악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며 “생황만의 매력적인 소리가 더 많이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악인 집안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부터 국악과 특별한 인연을 맺어왔다. 그녀의 아버지 신경환씨는 국립국악원 출신으로 내벗소리민족예술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어머니 최광자씨는 대금을 전공,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단원으로 활동하다 지금은 대금연주단여울림 단원으로 연주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12살 때부터 대금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 전에는 장구, 설장구, 판소리 등 여러가지를 조금씩 배웠죠. 아무래도 부모님께서 국악을 전공하셨기 때문에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신 씨는 광주예고, 전남대 국악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대금을 전공한 그는 대금연주단여울림, 사)내벗소리민족예술단, 풍류회 죽선방, 창작국악그룹 그루 등 다양한 국악연주단체의 단원으로 활동하며 대금 연주로 관객과 만나왔다.

이런 그가 어떻게 생황과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신 씨가 생황을 접한 것은 불과 6년 전이다. 중요무형문화재이자 대금 정악 보유자인 조창훈 선생이 풍류 음악 부흥과 보급을 위해 ‘풍류회 죽선방 결성’을 제안하면서 그녀에게 생황 연주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물어온 것이다.

“생황은 그저 이름만 들어본 악기 중 하나였어요. 막연히 ‘언젠가 생황 연주를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죠. 조창훈 선생님의 권유을 받고도 고민했어요. 왜냐하면 악기 가격도 비싸고, 광주에는 생황을 배울 수 있는 곳도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일단 배워보기로 마음을 먹었고,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 덕에 지금까지 연주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신 씨는 2015년부터 일주일에 한 번, 새벽 5시면 한 시간 레슨을 받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 2018년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과의 협연 무대를 준비할 때는 일주일에 두번씩 서울을 찾았다. 그렇게 코로나 19가 확산되기 전까지 약 4년간 서울로 왔다갔다 하며 생황을 배웠다.

생황은 어떤 악기일까. 신 씨는 “생황은 봉황의 날갯짓 하는 모습을 형상화해 박 속에 관을 꽂아 만든 악기다”며 “하모니카처럼 들숨과 날숨을 이용해 연주하는 악기”라고 설명했다.

생황은 17관, 24관, 36관 세 종류가 주로 사용되는데, 관이 많아질수록 무거워지고 연주도 어려워진다. 하지만 음색이 곱고 아름다워 합주에 자주 쓰이며 화려하면서도 소박하고 따뜻한 소리를 내 매력도 많다.

“국악기이지만 현대적인 테크닉을 사용할 수 있어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사용되고 매니아 층도 두터워요. 이렇게 장점이 많지만 생황이 다른 전통악기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이유는 조선시대 전쟁을 겪으며 그 맥이 끊어졌기 때문이예요. 생황 연주가 부활한지는 20년도 채 안됐어요. 광주에서는 생황 연주를 쉽게 접할 수 이유이기도 합니다.”

신 씨는 2019년 약 세 달간 매주 토요일마다 소쇄원에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생황을 소개하고, 연주를 선보였던 시간이 가장 인상깊었다고 말한다. 신 씨는 “이 때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황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며 “굉장히 아쉬운 마음이 있기에 생황을 더욱더 알리는데 힘쓰기로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의 올해 가장 큰 목표는 박사과정을 마무리 하는 것이다. 이후 생황 연주를 녹음해 앨범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대중들이 좀 더 쉽게 생황 연주를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앨범도 준비하고 있어요. 연습실 안에 녹음실도 마련했습니다. 또, 코로나 19로 어려운 시기가 계속되고 있는데 치유의 기원을 담은 우리 소리로 관객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싶어요. 요양병원에 있는 어르신들을 위한 공연도 펼칠 예정이예요. 이렇게 꾸준히 생황을 연주하다 보면 좀더 대중들과 친해지지 않을까요.(웃음)”

/전은재 기자 ej662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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