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철 명창 “소리길 47년…‘적벽가’ 보유자 자긍심”
2021년 02월 02일(화) 00:00 가가
2021 새로운 출발 <7>
지난해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스승 정권진 명창에 소리 배워
대사습 대통령상…창극단 감독
광주 MBC ‘얼씨구 학당’ 진행
소리 공연, 전수교육관 건립 꿈
지난해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스승 정권진 명창에 소리 배워
대사습 대통령상…창극단 감독
광주 MBC ‘얼씨구 학당’ 진행
소리 공연, 전수교육관 건립 꿈
그저 음악과 노래부르는 것을 좋아해 판소리를 시작한 11세 소년이 47년이 지나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됐다.
광주 MBC ‘얼씨구 학당’과 ‘우리가락 우리문화’ 진행자로도 잘 알려진 윤진철(57) 명창이 지난해 12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적벽가)’ 보유자로 지정되면서 그 실력을 다시 한 번 인정받았다.
‘적벽가’는 소설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을 소재로 만든 작품으로 남성적인 소리와 여성적인 소리가 합쳐져 있어 호방하지만 섬세한 소리로 알려져있다.
지난 1월 한달간 화순에서 제자들과 소리 연습을 하면서 지냈다는 윤 명창은 “전통음악을 하는 사람으로 가장 최고의 위치인 국가무형문화재가 돼 말할 수 없이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어깨가 무겁다”며 “햇수로 47년을 걸어오면서 수많은 수상과 명예로운 표창들을 받았지만 가장 가치 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전통예술을 하는 사람에게 국가무형문화재는 가장 갈망하는 꿈이다. 윤 명창 또한 그랬다. 하지만 그는 “문화재가 되는 것은 그저 꿈이었다”며 “문화재에 대한 욕심보다는 소리가 좋아서 천직이라 생각하며 후회 없는 소리길을 걸어왔다”고 말했다.
윤 명창은 ‘소리의 고장’ 목포 출신답게 어려서부터 노래부르는 걸 누구보다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 국악원에서 들려오는 국악 소리에 마음을 빼앗겼던 소년은 김흥남 선생을 만나 판소리에 입문했고, 이후 한결같이 소리꾼의 삶을 살았다.
“국악을 처음 접했던 건 초등학교 4학년 때 였을 거에요. 동네에 국악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들려오는 음악이 너무 좋았어요. 종종 건물 아래에 한참 서서 듣곤 했는데, 어느날 선생님 손에 이끌려 국악의 길로 들어서게 됐죠.”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KBS 창극 프로그램에 소년 역할로 캐스팅됐고 당시 도창과 작창을 맡은 정권진 명창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고등학교 3학년 말 변성기로 고난을 겪었지만 노력 끝에 한양대 국악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전남대에서 전임강사로 있던 정권진 명창과 스승과 제자로 다시 만났다. 목포와 광주를 오가며 소리 공부를 하던 중 1985년 전남대에 수석으로 입학했고 4년 동안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다. 방학이면 스승의 집에서 먹고 자며 스승의 넓고 깊은 소리세계를 전수받던 중 처음으로 ‘적벽가’를 접했다.
“스승님께서는 소리 공부를 가르치실 때 처음부터 하나하나 가르친 것이 아니라 본인이 가르치고 싶은 부분을 가르치며 소리에 대한 이치, 소리의 길에 대한 이야기 등 철학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소리꾼으로서 성장하는데 아주 소중한 가르침이 되었죠. 1986년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3년여의 공부는 제 소리인생의 길라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스승이 세상을 떠나고 ‘적벽가’를 더 깊이 있게 다듬으며 공부하던 중 국립국악원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나가 ‘적벽가’로 대상을 수상하면서 군 면제 혜택까지 받았다. 2003년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적벽가 완창 발표회’를 선보였고, 정권진 명창의 ‘적벽가’를 이어받고 있음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는 “완창 발표 및 다양한 연주회 그리고 앨범제작(2010년) 등을 통해 끊임없이 정진하고 있다”며 “자칫 끊길뻔한 박유전-정재근-정응민-정권진의 보성소리 ‘적벽가’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 자긍심을 갖고, 꾸준히 ‘적벽가’의 부흥과 전승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힘든 시절도 있었다. 정권진 명창이 세상을 떠났을 때 윤 명창은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바른길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했고 독공이라는 혼자만의 연습과정이 처절했다”며 “스승이 앞에 계시는 것 같이 상상하며 연습을 했고, 스승의 음원자료를 분석하면서 수정작업을 하는 등 오랜시간 홀로 싸웠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윤 명창은 다른 소리보다도 스승의 대표적인 소리인 보성소리 ‘적벽가’에 애착이 간다.
“모든 소리가 다 귀하지만 ‘적벽가’는 다섯바탕 중 가장 어려운 작품이기 때문에 스승께서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항상 연습하셨던 소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호방하면서도 진중하고 다양한 음악적 표현이 가능한 매력적인 작품이죠.”
그는 국가무형문화재로서 욕심을 버리고 내적으로 더 많은 힘을 들일 계획이다. 우선 전수자를 지정해서 문화재 본래의 목적인 전승활동을 충실히 할 생각이며, 광주와 전남에서 소리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먼저, 무대를 마련해 저를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께 소리로 인사드릴 계획입니다. 또, 제자들과 함께 판소리 네바탕을 준비하고 있어요. 올해 4차례에 걸쳐 선보일 예정입니다. 일 년에 한 번씩 선보일 무형문화재 공개행사도 열심히 준비해서 이름에 누가 되지 않게 할 생각이고요. 장기적으로는 제대로 된 전수교육관을 건립해서 교육과 공연, 기획 및 아카이브 구축에 힘쓸 예정입니다.”
한편, 윤 명창은 제24회 전주대사습 놀이 전국대회 판소리 부문 대통령상, 제3회 서암전통문화대상, KBS 국악대상 등을 수상했다. 2011년에는 광주시립창극단 예술감독을 맡아 창작 판소리 ‘동기호태전’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전은재 기자 ej6621@kwangju.co.kr
광주 MBC ‘얼씨구 학당’과 ‘우리가락 우리문화’ 진행자로도 잘 알려진 윤진철(57) 명창이 지난해 12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적벽가)’ 보유자로 지정되면서 그 실력을 다시 한 번 인정받았다.
지난 1월 한달간 화순에서 제자들과 소리 연습을 하면서 지냈다는 윤 명창은 “전통음악을 하는 사람으로 가장 최고의 위치인 국가무형문화재가 돼 말할 수 없이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어깨가 무겁다”며 “햇수로 47년을 걸어오면서 수많은 수상과 명예로운 표창들을 받았지만 가장 가치 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국악을 처음 접했던 건 초등학교 4학년 때 였을 거에요. 동네에 국악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들려오는 음악이 너무 좋았어요. 종종 건물 아래에 한참 서서 듣곤 했는데, 어느날 선생님 손에 이끌려 국악의 길로 들어서게 됐죠.”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KBS 창극 프로그램에 소년 역할로 캐스팅됐고 당시 도창과 작창을 맡은 정권진 명창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고등학교 3학년 말 변성기로 고난을 겪었지만 노력 끝에 한양대 국악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전남대에서 전임강사로 있던 정권진 명창과 스승과 제자로 다시 만났다. 목포와 광주를 오가며 소리 공부를 하던 중 1985년 전남대에 수석으로 입학했고 4년 동안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다. 방학이면 스승의 집에서 먹고 자며 스승의 넓고 깊은 소리세계를 전수받던 중 처음으로 ‘적벽가’를 접했다.
“스승님께서는 소리 공부를 가르치실 때 처음부터 하나하나 가르친 것이 아니라 본인이 가르치고 싶은 부분을 가르치며 소리에 대한 이치, 소리의 길에 대한 이야기 등 철학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소리꾼으로서 성장하는데 아주 소중한 가르침이 되었죠. 1986년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3년여의 공부는 제 소리인생의 길라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스승이 세상을 떠나고 ‘적벽가’를 더 깊이 있게 다듬으며 공부하던 중 국립국악원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나가 ‘적벽가’로 대상을 수상하면서 군 면제 혜택까지 받았다. 2003년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적벽가 완창 발표회’를 선보였고, 정권진 명창의 ‘적벽가’를 이어받고 있음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는 “완창 발표 및 다양한 연주회 그리고 앨범제작(2010년) 등을 통해 끊임없이 정진하고 있다”며 “자칫 끊길뻔한 박유전-정재근-정응민-정권진의 보성소리 ‘적벽가’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 자긍심을 갖고, 꾸준히 ‘적벽가’의 부흥과 전승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힘든 시절도 있었다. 정권진 명창이 세상을 떠났을 때 윤 명창은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바른길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했고 독공이라는 혼자만의 연습과정이 처절했다”며 “스승이 앞에 계시는 것 같이 상상하며 연습을 했고, 스승의 음원자료를 분석하면서 수정작업을 하는 등 오랜시간 홀로 싸웠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윤 명창은 다른 소리보다도 스승의 대표적인 소리인 보성소리 ‘적벽가’에 애착이 간다.
“모든 소리가 다 귀하지만 ‘적벽가’는 다섯바탕 중 가장 어려운 작품이기 때문에 스승께서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항상 연습하셨던 소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호방하면서도 진중하고 다양한 음악적 표현이 가능한 매력적인 작품이죠.”
그는 국가무형문화재로서 욕심을 버리고 내적으로 더 많은 힘을 들일 계획이다. 우선 전수자를 지정해서 문화재 본래의 목적인 전승활동을 충실히 할 생각이며, 광주와 전남에서 소리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먼저, 무대를 마련해 저를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께 소리로 인사드릴 계획입니다. 또, 제자들과 함께 판소리 네바탕을 준비하고 있어요. 올해 4차례에 걸쳐 선보일 예정입니다. 일 년에 한 번씩 선보일 무형문화재 공개행사도 열심히 준비해서 이름에 누가 되지 않게 할 생각이고요. 장기적으로는 제대로 된 전수교육관을 건립해서 교육과 공연, 기획 및 아카이브 구축에 힘쓸 예정입니다.”
한편, 윤 명창은 제24회 전주대사습 놀이 전국대회 판소리 부문 대통령상, 제3회 서암전통문화대상, KBS 국악대상 등을 수상했다. 2011년에는 광주시립창극단 예술감독을 맡아 창작 판소리 ‘동기호태전’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전은재 기자 ej6621@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