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5월 21일 ‘2차 차량시위’
2020년 02월 06일(목) 00:00

<삽화 이정기>

할머니는 초파일인데도 절에 가지 못했다. 손자인 최동기가 공수부대원이 휘두른 진압봉에 머리와 어깨를 다쳐 일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작은아버지가 운영하는 약국으로 가서 파스를 가져와 멍든 데에 붙여주었다. 소염제 알약은 식사 후 복용했다. 찢어진 머리 부분에는 동생이 소독약으로 소독한 뒤 연고를 짜서 발랐다. 아무래도 진압봉으로 맞은 어깨뼈가 으스러진 듯 통증이 심했고 몸은 쇳덩이처럼 무거웠다.

할머니는 아파트 유리창에 이웃집에서 가르쳐준 대로 솜이불을 씌웠다. 최동기는 어두컴컴한 방에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 몰래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할머니가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최동기는 할머니에게 삼영다방 마담이 치마로 숨겨주어 공수부대원에게 잡혀가지 않았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말했다.

“옛날에 마실에 당골이 살았는디 장터에서 애기를 델꼬 와 수양아들로 삼음서 그라드라.”

“에릴 때 장날 장터에 장돌뱅이들을 따라댕기는 고아들이 많았지라.”

“금메마다. 수양아들로 삼을랑시롬 자기 치마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라고 허드란 말이다.”

“긍께 지가 마담 수양아들이 됐다는 말인게라?”

할머니는 초하루마다 공양미를 이고 마을 절에 가서 기도했더니 손자가 살아왔다고 믿었다. 그런데도 초파일날 손자를 붙들고 있느라고 마을 절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니가 살아온 것은 부처님 덕인께 그리 알아. 머시기, 다방 주인여자 수양아들은 아니드라도 고마움은 잊지 말어라잉.”

“궁전제과 빵이나 사서 동생 편에 보내야겄소.”

“그래, 생각 잘했다. 고마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어야. 그라고 올해는 초파일인디도 마실 절에 못 갔는디 니가 대신 가서 부처님께 빌어라.”

최동기는 옆에 있는 동생에게 내일이라도 궁전제과 빵을 사서 삼양백화점 2층에 있는 다방 마담에게 전하라고 시켰다. 할머니의 부탁도 약속했다.

“할머니, 이삼일 집에서 약 묵고 나으면 절에 댕겨올게라.”

“니가 그리 해주믄 내 원이 ?겄다.”

최동기는 어깨 통증만 가시면 내일이라도 할머니가 다니던 마을 절이 있는 이양을 다녀오리라고 결심했다.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의 심부름이라면 다 해왔던 그였다. 또한 할머니는 손자의 실수를 모두 받아주고 덮어주는 부처님이나 다름없었다.



화가 지망생 나상옥은 월산동파출소 앞을 지났다. 집에서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나선 길이었다. 문득 그제 공수부대원에게 잡혀 봉변을 당할 뻔했던 일이 떠올랐다. 시위를 한 것도 아닌데 왜 도망쳤는지 화가 났다. 광주경찰서 부근에 있는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후배 조병철과 함께 밖으로 나오면서부터 벌어진 일이었다. 금남로 쪽에서 최루탄이 터지고 돌멩이가 날아가는 등 시위가 한창이었으므로 두 사람은 반대방향인 양영학원 쪽으로 걸어갔다. 길에서 공수부대원들과 마주쳤지만 “수고하십니다. 좀 지나갑시다!” 하고 고개를 뻣뻣하게 든 채 지나쳤다. 두 사람이 호기 있게 걸어가자 광주경찰서 형사인 줄 알고 잡지 않았다. 아무 탈 없이 양영학원 앞에 이르자, 시외버스공용터미널 쪽으로 달리는 군용트럭이 보였다. 그런데 군용트럭에 탄 공수부대원 하나가 두 사람에게 진압봉으로 가격하는 시늉을 하며 소리쳤다.

“야, 이 새끼들아! 니들 죽여버릴 거야!”

나상옥과 조병철은 공수부대원의 위세에 눌려 골목으로 피했다. 두 사람 모두 시위를 한 적이 없는데도 겁이 났다. 나상옥은 월산동 집으로 빨리 들어가고 싶은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조병철과 헤어진 나상옥은 광주천변을 따라 광주공원으로 서둘러 갔다. 광주다리에서도 공수부대원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공원 앞 광장에는 청년 예닐곱 명이 팬티만 입은 채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허리띠로 손이 묶인 상태였으므로 도망치기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청년들의 신발짝이 여기저기서 나뒹굴었다. 청년들은 기압을 받으면서 자세가 흐트러지면 공수부대원에게 걷어차이곤 했다.

“이 짜석, 그기밖에 몬해? 원산폭격이 뭔 줄 모르는기야!”

한 청년은 도망치다 붙잡혔는지 허리띠로 손발이 함께 묶인 채 신발을 입에 물고 있었다. 일부 공수부대원들은 공원 앞 식당에서 국밥을 먹고 있었다. 팀장인 듯한 중사는 엎드린 청년들을 보고 히죽히죽 웃으면서 낮술을 마셨다. 나상옥이 그 앞을 지나가려고 하자, 한 아주머니가 달려와 붙잡았다.

“젊은 사람덜을 무조건 잡아다가 족치고 있응께 가지 마씨요.”

순간, 나상옥은 ‘젊은 사람들을 잡아다가 족친다’는 아주머니 말에 부아가 치밀었다. 지나칠까, 말까 망설였다. 그러는 사이에 한 공수부대원이 나상옥에게 말했다.

“빨리 꺼져!”

그래도 나상옥이 버티고 있자, 공수부대원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엠16소총을 멘 공수부대원은 1미터짜리 긴 박달나무 진압봉을 들고 있었다. 나상옥은 맨손으로는 버겁겠다 싶어 슬그머니 피해버렸다. 월산동 집으로 돌아온 나상옥은 분을 삭였다. 그런데 한 번 치민 분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적개심 같은 것이 막연히 솟구쳤다.

하루가 지난 뒤에도 울분이 치밀었다. 화실에서 밤 9시 30분쯤 나와 MBC방송국이 불타는 것을 보면서 문득 공수부대원들과 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국 건물에서 치솟는 연기와 불길이 심장을 뛰게 했다. 다시 화실로 들어온 나상옥은 그동안 그려왔던 고향의 풍경 스케치와 여성누드 수채화들을 박박 찢어버린 뒤 월산동 집으로 향했다. 선후배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화실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렸던 자신이 어이없고 부끄럽기도 했던 것이다.



나상옥은 화실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시위버스를 탔다. 유리창이 모두 깨진 시내버스였다. 시내를 돌아다니는 시위차량은 종류도 다양했다. 군용트럭과 지프차, 시외버스와 고속버스, 덤프트럭과 소형트럭, 승합차와 택시, 심지어는 청소차와 소방차 등등이 시내와 외곽을 무질서하게 막 휘젓고 다녔다. 나상옥은 화실에서 중구난방으로 돌아다니는 차량을 통제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나상옥이 조병철에게 말했다.

“이러다가 주유소들 기름이 다 동나불겄다. 어처께 감당허겄냐. 나라도 나서야 쓰겄다.”

나상옥은 어제 화실에서 밤에 나왔으므로 오후 5시쯤에 있었던 차량시위는 몰랐다. 무등경기장에서 출발한 택시와 시내버스, 화물차 등 2백여 대가 일제히 헤드라이트를 켠 채 공수부대 저지선을 향해 돌진했는데, 차량행렬은 도청 광장을 불과 1백여 미터 앞둔 동구청 앞까지 진출해 시위대에게 ‘우리도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던 것이다.

“차들을 이끌고 도청으로 가서 공수를 진압해불자. 내 아이디어가 기발허지 않냐?”

“형 생각이 기발허요만 차들이 따라줘야지라.”

두 사람은 백운동 로터리에서 목적 없이 다니는 시위차량들을 세웠다. 오전 10시 30분쯤 되자 20여 대가 모였다. 아세아자동차공장에서 나온 장갑차까지 확보한 나상옥은 도청으로 출발하기 전에 차량행렬 순서를 정했다. 장갑차를 앞세우고 그 뒤는 차량을 통제하는 덤프트럭 2대, 그 뒤는 버스들을 배치했다. 그런데 그때 한 사내가 나상옥에게 다가와 말했다.

“시방 상무대에서 군인들이 몰려오고 있소. 빨리 바리케이트를 쳐야 헌께 좀 도와주시오.”

“우리가 어처께 할까요?”

“저짝에 원목을 겁나게 실은 트럭이 있소. 원목을 가져가서 막으믄 되지라.”

“한번 가봅시다.”

나상옥은 사내가 가리키는 곳으로 함께 갔다. 8톤 트럭 2대에 지름 30센티쯤 되는 원목이 가득 실려 있었다. 트럭 주변에 몰려든 주민들에게 수소문하니 운전기사는 부근의 민가에 있었다. 나상옥은 운전기사를 찾아가서 급박한 상황을 설명한 뒤 사정했다.

“시방 화정동 도로를 막지 못하믄 시민들이 계엄군에게 다 죽어라. 긍께 협조해주씨요.”

“여수에서 온 원목인디 내 맘대로 못허요. 나는 운반만 허는 월급쟁이 운전수란 말이요.”

“사람 목숨이 중허지 원목이 더 중허다는 말이요? 한시가 급허단 말입니다.”

운전기사가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절하더니 마지못해 운전키를 나상옥에게 내밀었다. 또 다른 트럭기사는 만나지 못한 채 몰려든 주민 중 한 사람이 수동으로 시동을 걸었다. 나상옥은 원목에 불을 지를지도 모르므로 백운동주유소에서 석유와 휘발유를 구해 조병철에게 주었다. 후배는 곧 트럭을 타고 화정동으로 갔다. 나상옥은 백운동주유소 휘발유로 주민들에게 빈 병을 가져오게 한 뒤 화염병 수십 개를 만들었다.

“장갑차 운전하실 분, 여그 기갑부대 출신 예비군 있습니까?”

“장갑차를 몰아봤소.”

“함께 탈 분 있소?”

장갑차를 운전할 줄 안다는 사내가 자원한 뒤였다. 앳된 청년이 손을 들고 나왔다. 청년은 와이셔츠 같은 티에 푸른색 추리닝을 입고 있었는데,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재수생 같았다. 시위청년들 대부분이 장발인데 청년만 머리가 짧았고 왠지 순진하게 보였다. 나상옥은 동생뻘 같아서 청년에게 말을 놓았다.

“니는 쪼깐 어린 거 같은디.”

“어리다고 못헙니까? 공수놈덜을 장갑차로 깔아불랍니다.”

“패기는 좋다만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결정허는 것이 으쩌겄냐?”

“형님, 지금 장갑차 못 타믄 은제 타보겄습니까?”

나상옥은 순진한 청년이 영웅 심리로 들떠 있는 것 같아 은근히 걱정이 됐다. 시민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하면 무슨 돌발행동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상옥은 청년에게 다짐을 받았다.

“좋다. 니가 타는 것은 허락허겄다만 절대로 장갑차 뚜껑을 열고 서지는 마라.”

“으째서 그럽니까?”

“저격병이 니를 노리니까 그라제. 시민들이 박수치고 와아와아 허고 소리 지르면 니도 모르게 흥분할 거 같은께 주의를 주는 것이여.”

“형님, 걱정허지 마십시오. 장갑차 속에서 꼼짝 않고 있을라요.”

어린 청년은 추리닝 바지를 허리까지 끌어올린 뒤 씨익 웃고는 장갑차에 승차했다. 나상옥은 화염병을 실은 덤프트럭 짐칸에 탔다. 장갑차가 위험에 처하면 뒤에서 화염병으로 엄호할 생각이었다. 덤프트럭은 키가 높아 앞뒤 차량행렬을 보면서 통제할 수 있었다. 나상옥이 탄 덤프트럭에 청년 대여섯 명이 합류했다. 버스와 승합차들은 2대의 덤프트럭 뒤쪽에 한 줄로 정렬했다. 나상옥은 운전기사들을 모아놓고 작전을 짰다.

“후퇴할 때는 한꺼번에 빠지면 뒤엉킬 수 있응께 한 조는 전여고 쪽으로, 또 한 조는 사직공원 쪽으로, 또 한 조는 양동시장 쪽으로, 또 한 조는 광주역 쪽으로 갑니다. 알겄지요?”

늙수그레한 운전기사가 젊은 기사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서로 몬자 갈라고 허믄 엉켜분께 약속헌 순서대로 빠집시다잉.”

차량시위는 점심 무렵에 시작했다. 장갑차가 선두에 서고 나상옥이 덤프트럭에 올라 지시했다. 차량들은 백운동로터리에서 출발하여 월산동으로 내려갔다가 양동에서 광주천을 지나 유동에서 우회전한 뒤 금남로로 향했다. 차량행렬 속도는 아주 느렸다. 시위청년 학생들이 걸어서 따라올 수 있을 만큼 서행했다.

금남로에 가득 찬 시민들이 차량행렬을 보자 양쪽 보도로 물러서며 개선군을 맞이하듯 환호했다. 장갑차는 가톨릭센터 앞에서 잠깐 멈칫거렸을 뿐 공수부대 저지선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런데 관광호텔 앞에서 청년이 갑자기 장갑차 뚜껑을 열고 나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시민들이 박수치고 환호했다. 나상옥이 걱정했던 대로였다. 청년은 러닝셔츠를 찢어 머리에 두르고 티를 벗어 흔들었다. 누군가가 청년에게 태극기를 던졌지만 장갑차 너머로 떨어졌다.

그 순간, 관광호텔 쪽에서 총성이 한 방 울렸다. 청년의 목에서 붉은 피가 솟았다. 나상옥은 저격병의 총알이 청년의 목을 관통했다고 직감했다. 청년의 상체는 연체동물처럼 스르르 뒤로 넘어졌다. 장갑차는 공수부대 저지선을 뚫고 도청 분수대를 돌아 노동청 쪽으로 달렸다. 총성이 10여 발 울리자 시위대가 썰물처럼 빠졌다. 금남로는 순식간에 텅 비었다. 차량행렬에 동원된 차들은 약속한 대로 빠지지 못한 채 지그재그로 뒤엉켰다.

잠시 후에야 차량들은 어렵사리 이리 저리 후진하며 사라졌다. 대신, 총성에 흩어졌던 시위대가 중앙교회 앞부터 다시 들어차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도로에 주저앉아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시위인파가 오전과 같이 불어나기 시작하자 앞쪽의 시민들은 동구청과 관광호텔 앞까지 떠밀렸다. 고교생 김수영도 어느 새 공수부대원들이 보이는 전일빌딩까지 와 있었다. 또 다시 총소리가 탕탕탕 났다. 이번에는 도청 쪽에서 들려오는 총성이었다. 총성이 뚝 멎자 누군가가 말했다.

“공포탄이 아니여!”

김수영은 한 사내를 따라서 미문화원 쪽으로 도망쳤다. 그때 뒤따라오던 학생이 쓰러지며 소리쳤다. “아저씨, 아저씨. 나 총 맞았그만요.” 그 학생 말고도 도청 앞에는 두세 명이 쓰러져 있었다. 청년 몇 사람이 공수부대원들이 총을 겨누고 있는데도 쓰러진 한 사람을 구해오려고 낮은 포복으로 접근했다. 이면도로로 도망치려던 시민들이 걸음을 멈추고 박수를 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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