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예술가가 산다
2020년 01월 07일(화) 00:00
대인동에 스튜디오 낸 서양화가 강 운
“대인동 작업실은 ‘도심속 오픈스튜디오’
광주 잠재력 바탕으로 세계로 나아갈 것”
‘GB작가 스튜디오 탐방’ 1호 주인공
예술의 거리·문화전당 인근에 둥지
동료작가·큐레이터 등과 교류 지속
서울 신세계 본점서 6월까지 특별전

지난 2017년 가을, 서양화가 강운씨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광주시 동구 대인동에서 새로운 작업실을 오픈해 화제를 모았다.

강 운 작 ‘철책 단상’


보통 사람들에게 예술가의 집은 로망이다.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그들의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산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며 창작의 고통을 이겨내는 것일까. 그들의 작업실에는 어떤 열정과 이야기가 숨쉬고 있을까.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인근에 스튜디오를 낸 강운 작가와 예술가들의 창작에너지가 깃들어 있는 나주 남천예술인마을, 구례 예술인 마을을 들여다 봤다.



만약 우리 동네에 예술가가 산다면 어떨까? 근래 지역 문화계에서 이런 호기심을 풀어주는 특별한 프로그램들이 선보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광주시가 예술의 거리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궁동 예술축제 ‘빛나는 거리 예술로, 궁동 아티스트’ 투어와 광주비엔날레재단의 ‘GB작가 스튜디오 탐방’이 대표적인 예다.

그중에서도 지난 2017년 8월부터 매월 한차례 열리고 있는 ‘GB작가 스튜디오’는 지역의 문화브랜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자신의 작업실을 오픈한 지역작가는 28명. 이들은 내밀한 작업실로 시민, 예술가, 국내외 큐레이터들을 초대해 새로운 소통의 장을 열었다.

‘구름화가’로 잘 알려진 강운(55)작가는 ‘GB작가 스튜디오’의 첫번째 주인공이었다. 지난 2017년 8월 자신의 작업실(광주시 동구 계림동 4층 건물 지하)을 공개한 그는 당시 작업실을 오픈하는 데 부담을 느낀 다른 작가들을 제치고 GB 스튜디오 프로젝트의 물꼬를 텄다.

“10여년 전만 해도 작가들이 함께 모여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하고, 미술에 대해 의견을 나누던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작가들이 개별화돼 아쉬웠습니다. 이런 ‘자리’가 매개체가 돼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 가면 좋겠습니다. 꼭 거창하고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

이날 강운 작가의 바람처럼 ‘GB작가 스튜디오 탐방’은 정선휘, 박상화, 이이남 등이 바통을 받아 현재까지 만남의 장이 이어지고 있다. 초기엔 지역작가와 비엔날레 재단 관계자들이 참가했다면 1년 전부터는 작가의 작업실을 엿보고 싶은 일반인들이 늘어나면서 비엔날레 재단의 커뮤니티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강운 작가를 만난 곳은 광주 동구 대인동에 자리한 스튜디오였다. 8년간의 ‘계림동 시대’를 접은 그는 지난 2017년 가을 동구 예술의 거리와 국립아시아문화전당(문화전당)이 가까운 5층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작업 특성상 100호 이상의 대작을 주로 하는 탓에 공간이 협소해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것이다.

20평 규모의 5층 건물은 상가로 임대한 1층을 제외하곤 작업실 겸 숙소로 꾸며졌다. 2층은 작업실, 3층은 사무실 겸 숙소, 4~5층 소장고로 그의 초기 작품에서 부터 최신 작업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일종의 ‘강운 갤러리’이다.

지난 2017년 8월 광주비엔날레 재단이 진행한 ‘GB작가 스튜디오 탐방’에서 강운 작가(왼쪽 네번째)가 김선정 비엔날레 재단대표(왼쪽 세번 째),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층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서가가 눈에 띄었다. 광주를 대표하는 작가답게 그의 화력(畵歷)을 읽을 수 있는 전시회 팸플릿들이 빼곡히 꽂혀 있고 철학, 미학, 여행 등 작업의 ‘뿌리’를 엿볼 수 있는 책들이 많아 흥미로웠다. 아마 이런 게 작가의 작업실을 들여다 보는 즐거움이리라.

그가 제2의 창작공간을 도심에 낙점한 이유는 거대한 문화벨트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싶은 기대감 때문이다.

“예전에는 일부러 주변이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작업실을 내는 작가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문화전당과 예술의 거리가 광주의 대표적인 문화지구로 부상하면서 작가들이 시너지 효과를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이들 문화공간에서 대형 이벤트와 프로젝트가 자주 열리다 보니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기회가 많은 데다 외지에서 온 기획자들과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겨’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카페나 식당도 좋지만 작업실에서 만나다 보면 좀 더 작업에 대한 깊이있는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거든요.”

그의 말대로 지난 1년 동안 대인동 스튜디오를 방문한 미술계 인사는 달라진 광주미술의 위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광주비엔날레가 열리는 기간에는 내로라 하는 국제 미술계의 스타들이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전시기획자인 후미오 난조 전 일본 모리미술관 관장을 비롯해 김홍희 전 서울시립미술관장,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마리아 린드 전 스톡홀름 텐스타 쿤스트홀 디렉터 등 면면도 화려하다. 무엇보다 문화전당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게 한몫했다.

기자가 방문한 전날에는 서울의 한 일간지 미술담당기자가 다녀갔다. 문화전당에서 개막한 전시를 취재하기 위해 온 그는 광주 미술판의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강 운 작가의 작업실과 가까운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렀다고 한다.

“서울의 미술관계자들은 올해 광주에서 열리는 비엔날레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5·18민주화운동 40주년에 맞춰 대대적인 이벤트와 특별 기획전이 추진되고 있어서 인지 진행과정 등이 궁금한가 보더라고요. 처음 이 자리에 스튜디오를 열 때는 나만의 공간으로 활용하려고 했었는데 이런 의미있는 만남 때문에 지금은 ‘제한적으로’ 공개하고 있어요. ”(웃음)

사실 그는 대인동으로 작업실을 옮기면서 ‘도심속의 암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평소 선후배나 동료들과의 격의 없는 자리를 좋아하지만 작업실을 활짝 열어 놓으면 정작 작업에 대한 고민과 연구에 전념할 시간이 부족할 거 라는 우려에서였다. 그래서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가급적 방문을 삼가해달라는 부탁(?)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예전 만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술자리를 갖는 풍토가 사라진 것이다. 오히려 자신들의 작업에 매달리는 작가들이 늘어나면서 서로의 작업실을 드나드는 게 일상이 아닌 특별한 일이 됐다. 광주비엔날레의 ‘GB작가 스튜디오 탐방’은 그래서 꽤 의미있는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대인동 스튜디오 시대 2년을 맞은 그는 올해 누구 보다도 바쁜 한해를 보낼 듯 하다. 지난해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DMZ 전시(기획·김선정 광주비엔날레 재단 대표)를 비롯해 부산 신세계 센텀 초대전, 사비나 미술관 초대전, 아트스페이스 전시회에 이어 올해 6월까지 신세계 본점 아트월 갤러리에서 특별전을 개최하기 때문이다.

특히 ‘구름’, ‘밤으로 부터’, ‘순수형태-순환’, ‘물위를 긋다’ 시리즈에 이어 최근에는 자신의 군대경험들을 투영한 ‘철조망 연작’에 매진하고 있다.

“철조망을 모티브로 한 유화 작품은 살기 위해 버티고, 견뎌야 했던 숱한 감정들을 철조망 형상으로 표현함으로써 누구나 안고 살아가는 상처에 대한 느낌과 태도, 그리고 그 감정의 기억을 어떻게 치유하고 살아가는가를 되묻는 작업이다.( 변종필·미술평론가)

“작업실과 가까운 문화전당은 지역 작가들이 세계 무대를 향해 꿈을 펼 수 있는 지렛대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광주의 잠재력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촌놈’이 되고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지역에서 활동하지만 국제적인 흐름에 뒤처지지 않는 ‘글로컬리즘’적 마인드가 필요할 것 같아요.” (강운)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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