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재판을 거래하다니
2018년 08월 07일(화) 00:00
최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이른바 ‘재판 거래’를 둘러싼 물의를 보고 느낀 점이 많다. 법치 국가에서 법관은 절대적인 존재다. 민사 사건이거나 형사 사건이거나 모든 분쟁의 시시비비(是是非非)는 법관의 판결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리고 법관의 최종 판결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만약 신(神)이 있다면 법관은 신과 같은 존재이다.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권한이 오직 판사의 판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말뿐이었던 삼권 분립



그러므로 법관의 판결은 지극히 공정해야 한다. 법치 국가라 할 수 없는 조선 시대에도 이 점을 매우 중시했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판결의 요체는 밝게 살피고 신중히 생각하는 데 있을 뿐이다. 사람의 생사가 나 한 사람의 살핌에 달려 있으니 밝게 살피지 않을 수 있겠으며, 사람의 생사가 나 한 사람의 생각함에 달려 있으니 신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사법적 판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다산은 또 ‘흠흠신서’(欽欽新書)를 써서 이를 더욱 강조했다. ‘흠흠’(欽欽)은 ‘서경’(書經)의 “조심하고 조심하여 형벌을 신중히 하셨다”(欽哉欽哉 惟刑之恤哉)에서 따온 말로, 순(舜)임금의 치적을 칭송하는 구절이다. 순임금은 훌륭한 치적을 많이 남겼지만 형벌을 가함에 있어서도 조심하고 신중하였기 때문에 무오류(無誤謬)의 성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산이 ‘흠흠신서’를 저술한 의도는, 판결을 내림에 있어서 이 순임금의 정신을 본받자는 것이었다.

사법적 판결이 이렇듯 중요하기 때문에 법치 국가에서는 삼권 분립의 원칙에 의하여 사법부를 행정부·입법부와 독립시켜 외부의 간섭 없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판사의 취임 선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재판의 역사는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1958년 간첩죄로 사형이 집행된 조봉암 사건과 1975년 긴급조치 위반과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판결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도예종·여정남 등 8인이 연루된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다. 이들은 2011년과 2007년 재심에 의하여 모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비록 이들의 명예는 회복되었다고 하지만 그 억울한 죽음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 것인가.



국기 뒤흔든 사법 농단



이밖에도 무수한 ‘사법 살인’이 자행되어 온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신중하지 않고 공정하지 않은 판결에 의한 참사이고, 사법부에 대한 독재 권력의 부당한 간섭에 의한 비극이다. 그 시절의 삼권 분립은 허울뿐인 제도였다.

삼권 분립과 함께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제도가 3심 제도이다. 1심과 2심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여 더욱 명확하고 공정한 판결을 받을 수 있는 제도인데 조선 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평번’(平反)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평번에 힘쓰는 것은 천하에서 가장 선(善)한 일이요 덕(德)의 바탕이다”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형벌을 경감해 주는 것이 평번의 취지이기 때문에 다산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지금 평번에 해당하는 최종 판결을 하는 기관인 대법원은 양승태 시절에 ‘천하에서 가장 선한 일’과는 정반대의 일을 일삼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무수한 사례가 있지만, 2008년에 KTX 해고 승무원 34명이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의 경우가 그렇다. 이들은 1심과 2심에서 승소했지만 2015년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또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2010년에 제기한 소송이 1심에선 패소했지만 2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는데도 2014년 대법원이 최종 판결에서 이를 뒤집었다.

나는 이들 판결에 대하여 법리적으로 시비를 따질 능력이 없지만 적어도 다산이 ‘천하에서 가장 선한 일이요 덕의 바탕’이라 했던 평번(平反)의 취지에 어긋나는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더구나 대법원의 판결엔 행정부와의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지만 만에 하나 ‘거래’가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는 국기(國基)를 뒤흔드는 중대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재판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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