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규 목포대 명예교수 “‘시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역사’”
2021년 02월 17일(수) 00:00
‘역사 속의 시간 시간 속의 역사’ 출간
시간과 역사의 여러 모습·조선의 역서와 시계들 조명
“‘선수(先手)를 잡으면 남을 제압할 수 있고, 후수(後手)가 된다면 남에게 제압당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간차에 따라 지배국과 피지배국으로 나뉜다는 말이죠. 역사 속에서 시간이라는 ‘과학적 환경’을 바꿔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보여준다 할 수 있어요.”

역사가에게 시간은 중요하다. 역사는 시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사학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했던 고석규<사진> 목포대 명예교수. 제6대 목포대 총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그는 다른 무엇보다 시간에 관심이 많다. 구체적으로 ‘시간차의 서열화’, ‘시간차 따라잡기’와 같은 시간의 배면에 드리워진 환경과 변화의 중요성을 새삼 인식한다.

고 교수는 오랫동안 ‘시간’에 천착했다. 일테면 ‘시간에 대한 인식 차이는 역사관에 어떻게 반영되었는가’, ‘과학기술은 시간 측정 기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와 같은 조금은 철학적인 질문에 빠져 있었다.

일반인과는 다른 역사 전공자로서 갖는 시간에 대한 의문은 책 읽기와 탐색으로 이어졌다. 최근 고 교수가 ‘역사 속의 시간 시간 속의 역사’(느낌이 있는 책)를 발간했다. 기자는 목포에서 거주하는 저자와 전화로 책 발간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눴다. 막힘이 없이 술술 풀어내는 시간에 대한 단상은 과학과 철학,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무엇보다 “시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 20년 정도 됐다”는 말에서 신뢰가 느껴진다. 그러한 관심을 정리하고 글로 체계화하는 데는 줄잡아 5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E. H. 카의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정의는 역사란 결국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문제다.

“시간은 철학의 문제이며 동시에 과학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시간의 철학’과 ‘시간의 과학’이 어떤 상호관계를 가지면서 변화해왔는지 살펴보고 싶었죠.”

물론 시간에 관해 단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닐 터다. 모든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시간에 대해서는 누구도 모른다”고 답을 한다. 그러나 저자는 “혁명 중에서 가장 혁혁한 것은 시간 혁명”이라고 설명한다. 시간과 연계해 가장 중요한 사실은 “기계 시계의 발명”이었다는 것이다.

“기계시계의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고 정확한 기계시계의 발명은 시간의 개념 자체를 크게 바꾸었습니다. 그와 함께 시간의 측정에 바탕을 둔 새로운 형태의 문화가 생겨났죠. 그에 따른 사고의 변화는 근대적 사고, 합리적 사고로 나타났구요.”

저자의 말은 문명비평가 루이스 멈포드가 “증기엔진이 아니라 시계가 현대 산업사회의 핵심기계”라고 말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산업혁명, 다시 말해 시간혁명을 계기로 인식이 바뀌고 환경도 바뀌었다.

‘기계공학을 근거로 한 기계시계의 발명’으로 문명의 추가 유럽으로 넘어간 셈이다. 이후 유럽에서 아랍 술탄으로 시계와 시계공이 보내졌으며, 중국에서는 ‘과학을 통한 신앙의 전파’ 수단으로 작용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떠했을까. 저자는 “경학적인 틀에서는 천문적인 지식이나 수학적인 지식이 최고의 수준에까지 도달했다”고 설명한다. 다만 서양처럼 실물경제에 이용하는 것이 아닌 “경학적인 사고, 일테면 인성을 갖추고 사회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그쳤다고 부연한다.

이번 책은 크게 ‘시간과 역사의 여러 모습’, ‘조선의 역서와 시계들’로 구성돼 있다. 전자에서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시간과 역사의 관계 등을 다뤘으며 후자에서는 조선시대 역법과 역서, 다양한 시계 발달의 역사를 조명했다. 또한 풍부한 사료와 도판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조선의 실정에 맞는 본국력 등 다양한 역법 그리고 자격루, 통천의 등 시계를 다룬 대목은 흥미롭다. “‘자격’의 창조성과 경천근민의 정신”에서 시간의 중요성과 애민을 가늠할 수 있다.

책에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는 ‘시간차’를 선도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로 압축된다. 저자는 “기술 발전의 내적 축적이 있어야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인간 정신,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대학 때 한국사를 전공했지만 송상용 교수의 과학사, 과학철학을 들으며 과학기술이 역사의 변화를 견인한다는 사실을 접했다. 지금도 책상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나 호킹의 빅뱅이론 등을 다룬 다양한 과학책이 꽂혀 있다고 한다.

대학 총장으로 재임하면서 그는 평생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이노베이션아카데미 이사장을 맡고 있다.

“앞으로는 창의성을 키우지 않으면 미래에 적응할 수 없어요. 배울 수 있는 역량을 뒷받침하는 토대 마련이 시급하지요. 또한 우리 지역 인재들이 어디에 있든 남도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호남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게 중요합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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