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정의 독일이야기<1> 연재를 시작하며 - 광주에서 베를린으로
베를린서 상생의 해법을 묻다
2017년 07월 28일(금) 00:00
과거를 청산하고 자유를 되찾은 도시, 자유를 지키기 위해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도시가 베를린이다. 2000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은 이곳 베를린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초석이 된 베를린선언을 발표했고, 그로부터 7년 뒤 베를린자유대가 제정한 자유상을 수상했다.

80년 5월 광주가 신군부의 총칼에 도륙되고 있을 때, 베를린에 거주하던 파독간호사들은 광주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독일 제1공영방송 ARD 기자 힌츠 페터는 목숨을 걸고 5·18을 카메라에 담아 전 세계에 전했다. 힌츠 페터의 이야기는 ‘택시운전사’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곧 개봉이 된다. 뿐인가. 세계적인 작곡자 윤이상 선생이 조작간첩사건으로 회한의 생을 보낸 곳도, 5·18을 위한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를 작곡한 곳도 이곳 베를린이다. 비 내리는 베를린 거리를 우산 없이 걷다보면 이 도시는 우리와 참 깊은 인연으로 이어졌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최근의 베를린은 ‘리스타트의 도시’로 불린다. 뭔가를 다시 시작하고 싶은 유럽 각지의 젊은이들이 베를린으로 모여드는데, 그 수가 2014년에만 17만4000명이다. 지금도 꾸준히 이주해오고 있다고 하는데, 필자 역시 베를린에 머무르다 보니 왜 예술가들과 창업자들이 재기를 꿈꾸며 베를린으로 모여드는지 알 것 같다. 우선 집값이 싸고, 저렴하고 질 좋은 생필품과 식료품이 있으며, 이방인들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 스타트업 지원정책도 잘 돼있다. 포용과 배려는 자유도시 베를린의 또 다른 상징이 된 듯하다.

해오던 대로 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Rethink’, 근본부터 바꿔내는 ‘전환’이 절실한 순간에 베를린을 택했던 이유도 이런 연결선상에 있다. 피와 눈물로 이뤄온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쩌면 이리도 허약한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사회적 강자와 약자가 상생하고 공존하는 경제의 민주화는 왜 아직인가. 일상이 안정되고 신뢰가 가득한 나라는 요원한가. 세월호를 겪으며, 탄핵 촛불을 들며 우리는 참으로 아프게 되물어야 했다. 이곳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앞에서 탄핵집회에 참여하고 시가행진을 할 때면, 그 고뇌는 참담함을 넘어 절실함이 돼 다가왔다. 대한민국이, 광주가, 내 자신이 전환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근본적인 것부터.

그런 의미에서 12년 동안의 숨가쁜 정치여정을 잠시 멈추고 베를린 자유대 방문학자 코스를 밟은 것은 행운이었다. 베를린 자유대에 머무는 동안 여러 정치인과 행정가, 기업인, 연구자을 만날 수 있었고 변화의 현장을 찾았다. 그리고 그들의 목표와 과정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 현장에서 만난 독일은 한마디로 상생의 나라다. 갑을관계는 없으며, 공익과 미래를 위한 정책이라면 집권당이 바뀌어도 정책은 이어진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정당과 정당이, 도시와 도시가, 노사가 함께 한다. 이런 풍토 속에 나치 청산과 탈원전,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제조업 혁신이 가능했다. 정치의 상생, 경제의 민주화는 법과 제도가 뒷받침한다. 또한 끊임없는 교육으로 실천력을 높여간다. 상생이 아니면 공멸이라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가 필자에게 정의와 책임을 심어줬다면 베를린은 상생의 해법을 제시한다. 광주가 흘려온 피와 눈물은 약자와 강자의 상생, 지역 간의 상생, 자연과의 상생이라는 실천을 통해 완성될 것임을 믿는다. 그 길로 가는 길목에 베를린은 유의미한 하나의 좌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강기정의 독일이야기’는 정치인 강기정이 12년의 의정활동을 잠시 멈추고, 베를린자유대학교(Free University of Berlin)에 머물며 기록한 ‘독일의 industry4.0’, 에너지, 경제, 정치 현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총 10회에 걸쳐 매주 금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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