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시대의 사랑, 진정한 로맨스는 없을까?
2021년 05월 01일(토) 13:00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러브 주식회사' 로리 에시그 지음, 강유주 옮김
코로나와 빈부격차, 경제난으로 고달픈 일상이 지속되고 있다. 부동산 폭등과 취업문제로 젊은이들은 절망하고, 노인들은 노후 빈곤과 건강문제로 불안하다. 기성세대는 자녀 교육과 주거, 부모 봉양 등으로 시름을 앓고 있다. 이처럼 모든 세대가 저마다 걱정과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더 나은 미래, 더 나은 세상을 꿈꾸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러한 때에 로맨스는 힘겨운 삶을 버티게 해주는 생존전략이 되기도 한다. 마치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마시는 한 잔의 시원한 맥주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랑을 이데올로기라고 규정하는 이가 있다. 미들버리 칼리지의 젠더, 성, 페미니스트학 교수인 로리 에시그가 바로 주인공이다. 자본주의시대 사랑은 오염됐다고 단언하는 그는 로맨티스트이자 냉소주의자이다.

최근에 펴낸 책 ‘러브 주식회사’는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본 21세기 로맨스다. 오늘의 사랑은 자본주의와의 결혼으로 ‘러브 주식회사’로 변했다는 게 기본 논조다. ‘자본주의로 포장된 로맨스라는 환상’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책은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돼버린 오늘의 로맨스를 비판적으로 풀어낸다.

저자는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해 심장이 빠르게 뛰고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느끼며 첫 키스를 한다고 해도 환경 파괴와 빈부격차 같은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비판적인 관점을 취한다. 그러나 사랑이 전부가 아니지만 삶이 고달프고 힘겨울 때 역설적으로 우리를 위로하는 것 또한 사랑이다. 지난 2016~2017년 캘리포니아 산불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북핵문제로 정세가 불안했지만 미국인 8000만명은 홀마크 채널에서 방영된 영화 33편을 시청했다. 비뉴스 채널에서, 그것도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를 본 것이다.

사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산다는 ‘해피엔딩’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사랑이 행복한 미래로 이어진다는 믿음은 근대사상과 함께 싹텄다. 로맨스는 근대사회를 이해하는 방편이자 “소비에 의미를 불어넣는” 기제인 셈이다. 어떤 사랑이 좋고 나쁜지, 누가 사랑을 얻을 자격이 있는지 명시한다는 점에서 로맨스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인 셈이다. 그렇게 이데올로기화된 로맨스는 “완전한 시민권과 국가가 주는 추가 권리와 특권뿐 아니라 해피엔딩의 자격이 특정한 사람에게 있다”고 강제한다. 일테면 백인 남성이 갑옷을 입은 기사로, 백인 여성은 위기에 빠진 여주인공과 같은 설정이 그런 연장선에서 나왔다.

한발 더 나아가 로맨스는 ‘계급과 인종, 젠더, 성에 관한 생각 외에도 다이아몬드 반지, 고가 주택 심지어 선거후보자까지 파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렇듯 로맨스는 다양한 소비 자본주의와 연결돼 개인의 행복까지 좌지우지한다.

문제는 로맨스가 부리는 마법에 돈이나 소중한 자원이 낭비된다는 점이다. 공동의 문제를 외면케 하고 나아가 사회안전망을 위해 써야 할 시간과 에너지, 재화를 ‘개인화된 해피엔딩’을 위해 쓰도록 만든다. 일명 ‘러브 주식회사’가 그런 양상과 무관치 않다.

저자는 로맨스가 희망을 주지만 그 희망이 사랑만 있으면 된다는 식은 거짓말이라고 강조한다. 로맨스 이데올로기 안에서 개인의 미래로 초점이 향하는 한 공동체의 해피앤딩은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데 로맨스 마법을 원하게 강제하는 모순이 오늘날 많은 갈등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해피엔딩에 대한 미련마저 버려야 할까. 다음은 일말의 희망을 갖게 한다.

“로맨스는 희망이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에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로맨틱한 사랑의 힘을 믿는 것은, 증오와 탐욕이 우리를 숨 막히게 할 때 조금이나마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산소와도 같다.”

<문학사상·1만35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