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10만원이 든 봉투 두 개를 들고 광주시 서구 화정2동 행정복지센터를 찾는 할아버지.

이번 달에도 그는 손에 꼭 쥐고 온 봉투 두 통을 복지센터 직원에게 건넸다. 한 봉투에는 ‘적지만 좋은 곳에’, 다른 봉투에는 ‘적지만 필요한 곳에’라는 손글씨가 쓰여 있다.

화정2동에 거주 중인 박영배(86)씨는 지난 2018부터 기부를 이어왔다. 3년 동안 그는 500만원이 넘는 기부금을 복지센터에 전달했다.

“하나는 내 몫, 하나는 아내 몫. 꼭 필요한 사람들한테 전해주길 바란다”는 박씨. 기부금에는 아내 장야림(84)씨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아내 장씨는 지난 2014년 고관절, 무릎, 허리 수술을 하며 3차례 병원 신세를 졌고, 홀로 걷지 못하게 돼 노인장기요양등급 3급 판정을 받았다. 그런 아내에게 ‘작은 기적’이라도 일어나길 바라며 기부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기적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부를 생각했지. 좋은 마음을 쓰고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하늘도 아내가 걸을 수 있게 기적을 내려줄 것이라고 믿는 거지. 또 아픈 아내와 늙은 나보다도 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야.”

3년 동안 10만원씩 기부하던 그는 최근에는 아내 몫까지 더해 기부금을 20만원으로 늘렸다.

박씨가 품은 따뜻한 마음씨는 과거에도 변함없었다. 박씨는 지난 1965년부터 35년동안 광주 무등중학교, 나주 남평중학교, 신안 하의중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교사 시절에도 박씨는 형편이 어려운 제자들을 위해 책값·용돈을 마련해주는 등 선행을 이어왔다. 그 공로가 뒤늦게 알려져 교육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박씨는 당시 도움을 줬던 제자들이 커서 찾아왔을 때, 큰 뿌듯함을 느꼈다고 한다.

박씨는 “내가 도와줬다는 사실을 기억조차 못하던 순간에 제자들이 나를 찾아와 감사하다고 했다”며 “그 때 ‘더 많이 베풀고 나눠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퇴직 후 다시 시작된 그의 ‘나눔’은 화순 노인복지관 등을 거쳐 화정2동 행정복지센터로 이어졌다.

“우리의 이 마음이 닿아서 어려운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또 우리의 행복을 빌어주길 바라지. 지금은 아내가 걷지 못해 혼자 복지센터에 오지만 나중에는 기적이 생겨 함께 손을 잡고 기부금을 전하고 싶어.”

조자영 화정2동 행정복지센터 주무관은 “할아버지를 매달 뵐 때마다 건강하게 잘 계시는 모습에 반갑고 기쁘다”며 “할아버지께서 할머니를 생각하시는 마음이 너무도 애틋해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퇴직 어르신께서 매달 20만원씩 기부하신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님에도 지역사회를 위해 마음을 주신다는 것에 감사하다. 그 마음을 잘 전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