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태양
2021년 04월 11일(일) 11:00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어느 거리의 한 매장, 쇼윈도에 전시된 ‘클라라’는 하루 종일 유리벽 너머 바깥세상을 바라본다. 클라라와 비슷한 시기에 세상으로 나온 다른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선택’받기 위해 사람들 눈에 잘 띄는 쇼윈도 자리를 원하지만, 호기심 많은 클라라는 바깥 세상을 볼 수 있는 매장 중앙부 잡지 테이블 자리를 좋아한다. 클라라는 이 자리에서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무직 노동자, 조깅하는 사람, 관광객 등을 바라보며 사람들의 감정을 파악하고, 그 감정에 자신을 대입해보기도 하면서 다른 아이들이 그렇듯, 자신을 데려갈 누군가를 기다린다. 클라라는 인간 아이들의 친구로 생산된 인공지능(AI) 로봇, AF(Artificial Friend)다.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신작 장편소설을 들고 4년만에 돌아왔다. ‘클라라와 태양’은 AI 제조기술과 유전공학이 지금보다 발전된 가까운 미래, ‘AF(Artificial Friend)’라고 불리는 인공지능 로봇 클라라와 몸이 불편한 소녀 조시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를 담고 있다.

클라라는 갓 출시된 최신형 모델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인간 감정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들의 소통 방식을 익히는 데 관심이 많다는 점에서 조금 특별한 로봇이다. 그런 클라라 앞에 어딘가 아파 보이는 소녀 조시가 나타난다. 매장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짧은 대화를 나눈 뒤 조시는 클라라를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하고, 클라라 역시 다른 아이의 ‘간택’마저 거부하며 조시가 자신을 데려갈 그날만을 기다린다. 마침내 조시가 찾아오고, 조시의 ‘동반자’가 된 클라라는 ‘해가 내려가는 정확한 지점’을 볼 수 있는 조시의 집으로 향한다.

이시구로는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인사의 말을 통해 이 책이 그의 대표작 ‘남아 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 마’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만의 불완전한 1인칭 화자를 통해 세상과 인간관계의 부조리함과 슬픔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일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이 아닌 존재인 클라라의 인간에 대한 한결 같은 헌신이 실현되는 과정 속에서 ‘인간됨’이란 무엇이고 무엇이 인간 개개인을 고유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 그것은 인간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민음사·1만7000원>

/전은재 기자 ej662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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