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색 밤 실비 제르맹 지음·이창실 옮김
2021년 04월 09일(금) 11:00
창조적 서사 전개와 독특한 문체로 현대 프랑스 문단에서 독보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작가 실비 제르맹. 1981년 단편으로 데뷔한 이후 1985년 발표한 첫 장편 ‘밤의 책’으로 여섯 개 문학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당시 작품은 가브리엘 마르케스에 비견되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작가는 역사와 신화를 넘나들며 수많은 전쟁 길목에서 살아간 한 가문의 광기를 그만의 개성적인 문체로 그렸다.

이번에 펴낸 ‘호박색 밤’은 데뷔작인 ‘밤의 책’의 후속편이다. 전작의 마지막 페이지에 탄생을 알리며 수수께끼처럼 등장했던 페니엘 가계에서 마지막으로 태어난 아이 샤를빅토르 즉 ‘호박색 밤’이 마침내 이야기 중심으로 등장한다. 전쟁이 휩쓴 황무한 땅에서 페니엘가의 파란만장한 대서사는 펼쳐진다.

‘밤의 책’이 1870년 보불전쟁부터 1945년 제2차대전을 관통하며 인간의 광기와 잔인함, 그 속에서 명멸하는 페니엘가의 인물들을 그린다면 ‘호박색의 밤’은 프랑스 북동부 가상의 공간 ‘검은 땅’을 떠나 알제리와 파리 등으로 옮겨가며 전쟁 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알제리부터 프랑스 68혁명을 아우르며 망각 속 역사를 복원해낸다. 아울러 전후에도 여전히 상존하는 분노, 결핍이 부른 인물의 광기, 샤를빅토르의 성장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특히 이번 책은 역사적 현실과 신화, 우화를 떠올리는 서술이 돋보인다. 죽은 아이의 묘에 뿌리를 내리는 나무, 주인공이 노파를 좇아 폐허 속을 헤매는 장면, 천사와 벌이는 싸움 등 환상적인 요소가 곳곳에 등장해 이색적인 분위기를 환기한다.

<문학동네·1만68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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