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은 ‘사건’이 아니라, ‘항쟁’입니다. 우리 가족을 비롯해 많은 이들에게 아픔을 줬던 여순사건이 ‘빨갱이’ 오명을 벗고 올바른 역사로 기록되어야 합니다. ‘여순항쟁, 되찾은 역사’전을 열게 된 이유입니다.”

여순사건 72주년을 맞아 순천대학교 박물관에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박금만(50) 작가가 여수·순천·구례·벌교 등을 배경으로 여순사건 역사를 그린 역사화전이다.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박 작가의 작품 16여점을 만나볼 수 있다.

박 작가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여순사건을 알리고, 진상 규명·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박 작가는 여순사건 유족 2세대로, 할아버지 고(故) 박기조씨가 피해자였다. 박 작가가 여순사건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지난 2006년, 처음으로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시작됐다.

“그 전까진 ‘먼 이야기’로 여겨왔는데, 다름아닌 우리 가족이 여순사건 한 가운데 있었던 거죠. 당시 서울에서 작업 중이었던 저는 그 사실을 듣고 ‘여순사건이 작가로서 내 운명이겠구나’ 생각했어요.”

이후 박 작가는 10년이 넘도록 할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왔다. 관련 역사를 공부할 뿐 아니라 경찰에 사실조사서를 요청하고 발품을 팔아 지역 어르신들의 증언을 들었다.

“2017년에야 실마리를 찾았죠. 경찰 자료에 ‘제명사유활동, 광천다리 밑 총살’이라 적혀있었습니다. 최근에는 할아버지가 당시 ‘지역 인민위원장’이었다는 사실도 밝혀냈어요. 주목할 점은 ‘부역했는지 확실하지 않음’이라 적힌 부분이었습니다. 직함만 보고, 사실 확인도 없이 ‘빨갱이’로 낙인찍혀 죽은 이들이 많았다는 뜻이에요.”

할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담은 역사화는 박 작가 아버지의 소원이기도 했다. 11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학교조차 다니지 못한 채 힘들게 살았던 아버지였다. 박 작가는 “아버지뿐 아니라 당시 같은 고통을 겪었던 모든 유족의 한을 풀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5년 전부터 여수에 정착하게 된 박 작가는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여순사건 연구가 주철희 박사를 찾아가 자문을 받고, 이승만 정부 시각에서 쓰인 글도 빠짐없이 살피는 등 자료를 모았다. 배경은 관련 장소를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거나 옛 사진을 참고했다.

“학살 위주로 표현한 작품은 많이 있으니, 저는 피해자 입장을 벗어나 보편적인 시각에서 ‘항쟁’의 의미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학살과 죽음, 피는 최대한 그리지 않은 이유입니다. 편하게 감상하면서 여순사건의 순간 순간을 느낄 수 있도록 그렸습니다.”

박 작가는 여수 출신으로 세종대 미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지난 2018년 길거리 전시부터 시작해 매년 여순사건 역사화전을 열며 ‘역사를 바로세우자’는 메시지를 전해 왔다.

“최근 전시회에 들르신 한 유족이 ‘그림 보고 울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작가로서 소임을 다 했다는 기분입니다.(웃음) 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 작업을 계속하고, 다른 지역에도 알려지도록 하는 게 제 역할이죠. 전남뿐 아니라 경기도, 경상도 등 다른 지역에서도 여순사건 전시회를 여는 게 목표입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여순사건이란

제주도에서 1948년 4월 3일 단독선거·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주장하며 무력충돌이 빚어졌다. 이른바 제주4·3이다. 국방경비대는 제주도 소요사태가 진정되지 않자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에 진압 명령을 내렸다. 14연대 병사들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군대가 오히려 국민을 진압하고 학살하라는 명령은 부당하다’고 항명하며 무기를 들었다. 당시 정부는 군대 내에 침투한 좌익세력의 반란으로 보고 진압에 나섰다. 군경의 진압작전과 14연대 등의 교전 등으로 1만1000여명이 희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