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사랑·삶…감성과 사유가 담긴 풍경들
2020년 10월 06일(화) 18:35
천세진 시인 ‘풍경도둑’ 펴내
“수백, 수천의 풍경이 나를 낳았다. 풍경이 낳았으므로, 내내 풍경에 갇혀 있었고, 풍경이 품었던 고질(痼疾)을 유전자로 받았다. 지혜를 엿보는 것으로는 지병(持病)만한 것이 없어서 지혜를 얻게 되었으나 병인(病人)의 지혜였다.”

문화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는 천세진 시인이 두 번째 시집 ‘풍경도둑’(모악)을 펴냈다.

삶의 다양한 풍경에서 길어 올린 52편의 작품에는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심상과 사유가 담겨 있다. ‘풍경’이라는 시어가 암시하듯, 시인의 감성과 시심이 닿는 모습들은 잔잔하면서도 한편으로 날카롭다.

이소락 시인이 해설에서 밝혔듯이 천 시인의 시는 “자유, 사랑, 삶…… 그 모든, 혹은 아직 이름 없는 풍경 속으로 걸어가는 사람의 발자국”처럼 삶의 현상을 다각도로 접근한다. 삶의 현장과 풍경은 다름아닌 이야기다.

이 시집의 장점은 삶을 바라보는 다채로움과 그 안에 깃든 서정성이다. 사물과의 일체감을 추구하기도 하고 타자와의 소통을 희원한다. 그것의 대상은 자연과 사물, 동물, 낯선 타자를 넘는다. 삶을 단선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에둘러 응시한다.

“오랫동안 덜컹거리며 굴러온 생이, 풍경의 정거장이 된 걸 알았다.(중략)// 풍경의 시간표를 따로 걸어두지 않아도 언제 어느 때 꽃들이, 새들이, 향기들이 정차하는지를 모두 알았다.// 한때는 이름의 정거장이었다. 읽어낸 이름들이 머릿속에 머무르곤 했는데, 한 번 머문 이름들은 잊지를 않아서 다들 놀라곤 했다…”

위의 시 ‘풍경의 정거장’은 한때는 이름의 정거장이었지만 지금은 풍경만 왔다 떠나는 이미지들을 초점화한 작품이다. 이름으로 머물렀다 풍경으로 떠나는 것은, 어쩌면 삶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인지 모른다. 시인이 바라본 풍경이 오래도록 여운을 주는 이유다.

한편 천 시인은 고려대 영문과와 한국방송대 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시집 ‘순간의 젤리’, 문화비평서 ‘어제를 표절했다’를 펴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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