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통해 본 아시아 역사·사회·문화…
2020년 02월 17일(월) 00:00 가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23일까지 ‘이주서사’전
9개 도시 기반 활동 9명 큐레이터·21팀 참여
영상과 시각예술로 문화 다양성·복잡성 등 조명
9개 도시 기반 활동 9명 큐레이터·21팀 참여
영상과 시각예술로 문화 다양성·복잡성 등 조명
몽골에서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최초 학생들의 경로를 추적하기 위해 2만km를 여행하며 담은 영상. 비얌반얌 우르트나산 외 ‘기억의 이주’. <ACC 제공>
태평양 전쟁 당시 남방으로 간 사람들은 어떻게 ‘열대’를 만났을까? 그 무렵 많은 사람들은 전쟁과 노동 등 다양한 이유로 남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전쟁과 식민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에서 열대를 겪었다.
화면은 당시 사람들이 머물렀던 일본, 오키나와, 남양군도뿐 아니라 인도네시아와 주변 섬까지 아우른다. 선언문을 읽었던 장소, 글을 썼던 방, 오갔던 길 등 머나먼 여정이 차례차례로 이어지며 흐릿하게 지워진다. 화면을 따라가다 보면 특정한 공간은 상상하는 것보다 광범위하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또한 그 공간은 특정한 시기와 사건과 연동돼 있으며 역사적 함의를 지닌다는 것과도 만나게 된다.
오늘의 시대 ‘이주’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다각도로 조명한 전시가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오는 23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복합2관에서 개최되는 ‘이주서사’전이 바로 그것.
아시아문화전당과 아시아문화원, 주한독일문화원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전시는 이주라는 통합적인 주제를 매개로 아시아 역사와 사회, 문화를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했다. 특히 독일문화원의 전략적 프로그램으로 시작돼 2018년부터 진행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이주 서사’의 마지막 여정이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9개 아시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9명의 큐레이터와 21팀의 작가들이 참여한다. 노민투야 바산쿠, 곽소연 등 큐레이터들은 서울, 광주, 베이징, 홍콩, 울란바토르, 타이베이, 싱가포르, 방콕,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각각 활동했다. 몽골 출신 비얀반암 유트트나산 등 21팀에 소속된 작가들 국적 또한 싱가포르, 대만, 한국 등 다양하다.
이번 전시는 이주와 맞물려 있는 다양한 양상과 상황, 예술과 이주의 관계를 다각도로 조명하는 데 초점을 뒀다. 작년 9월 현재, 국내 체류외국인은 192개국 약 245만 명이다. ‘외교부 2019 재외동포현황’에 따르면 세계 각 지역의 재외동포는 180개국 약 750만 명에 이른다. 그만큼 ‘이주’의 현상은 현재적이며 역동적이라는 사실을 전제한다.
곽소연 아시아문화원 큐레이터는 “이주라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사회, 문화의 변화와 그 다양성과 복잡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며 “이주가 보이는 방식뿐만 아니라 이해되고 다루어지는 방식에 미치는 이미지의 영향력과 힘에 대한 인식을 전제한다”고 밝혔다.
이주를 명징하게 환기하는 작품은 몽골 작가 비얌반얌 우르트나산 등 4인작가의 ‘기억의 이주’다. 이들은 기억의 본질은 무엇이며 과연 기억은 어디에 저장될 수 있는가를 묻는다. 몽골에서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최초 학생들의 경로를 추적한다. 이를 위해 30일간 2만km를 여행하며 각자의 생각의 단상을 풀어놓는다.
“건물, 도시, 도로, 사람들은 바뀔 수 있지만 도시의 소리, 사람들의 음성, 교통 소음,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는 동일하게 남는다.”
이 같은 사유는 인간이 소리와 무빙 이미지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인간의 이야기는 시시삭각 느끼는 희로애락, 고통과 상상력의 조합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일본 작가 시무라브로스의 ‘구출’이라는 작품에서는 이주와 함께 인간애를 엿볼 수 있다. 영상화면은 ‘기억하기’의 의미와 구출이 지니는 행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은 제2차세계대전 중 리투니아에서 일본 제국 부영사로 재직했던 스키하라 치우네와 그의 아내 유키코. 이들은 폴란드 및 리투니아계 유대인들이 유럽을 탈출할 수 있도록 일본 경우 비자를 써준 인물들이다. 일설에 따르면 이들은 가능한 많은 비자를 발급하기 위해 하루 18~20시간을 일했다. 일본 제국주의 입장에서 보면 명백한 불복종 행위이다. 작품은 우리 시대에 인도적 행위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의 확장 가능성을 묻는다.
김아영 작가는 ‘페트로제네시스, 페트라 제네트릭스’(광물), ‘다공성 계곡2: 트릭스터 플롯’이라는 두 작품을 통해 인간에 대한 신화를 더듬어간다. 작가는 몽골 조사를 바탕으로 돌과 바위는 지구의 기억을 저장하는 메모리와도 같다고 본다. “석영(石英)은 일종의 자연산 컴퓨터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많은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저장하기 때문이지요.”
작가는 이주와 관련된 난민과 데이터의 이주를 다양한 층위로 보여준다. 광물이 지니고 있는 데이터는 오늘의 이주를 신화적, 철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화면은 당시 사람들이 머물렀던 일본, 오키나와, 남양군도뿐 아니라 인도네시아와 주변 섬까지 아우른다. 선언문을 읽었던 장소, 글을 썼던 방, 오갔던 길 등 머나먼 여정이 차례차례로 이어지며 흐릿하게 지워진다. 화면을 따라가다 보면 특정한 공간은 상상하는 것보다 광범위하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또한 그 공간은 특정한 시기와 사건과 연동돼 있으며 역사적 함의를 지닌다는 것과도 만나게 된다.
아시아문화전당과 아시아문화원, 주한독일문화원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전시는 이주라는 통합적인 주제를 매개로 아시아 역사와 사회, 문화를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했다. 특히 독일문화원의 전략적 프로그램으로 시작돼 2018년부터 진행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이주 서사’의 마지막 여정이다.
곽소연 아시아문화원 큐레이터는 “이주라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사회, 문화의 변화와 그 다양성과 복잡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며 “이주가 보이는 방식뿐만 아니라 이해되고 다루어지는 방식에 미치는 이미지의 영향력과 힘에 대한 인식을 전제한다”고 밝혔다.
이주를 명징하게 환기하는 작품은 몽골 작가 비얌반얌 우르트나산 등 4인작가의 ‘기억의 이주’다. 이들은 기억의 본질은 무엇이며 과연 기억은 어디에 저장될 수 있는가를 묻는다. 몽골에서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최초 학생들의 경로를 추적한다. 이를 위해 30일간 2만km를 여행하며 각자의 생각의 단상을 풀어놓는다.
“건물, 도시, 도로, 사람들은 바뀔 수 있지만 도시의 소리, 사람들의 음성, 교통 소음,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는 동일하게 남는다.”
이 같은 사유는 인간이 소리와 무빙 이미지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인간의 이야기는 시시삭각 느끼는 희로애락, 고통과 상상력의 조합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일본 작가 시무라브로스의 ‘구출’이라는 작품에서는 이주와 함께 인간애를 엿볼 수 있다. 영상화면은 ‘기억하기’의 의미와 구출이 지니는 행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은 제2차세계대전 중 리투니아에서 일본 제국 부영사로 재직했던 스키하라 치우네와 그의 아내 유키코. 이들은 폴란드 및 리투니아계 유대인들이 유럽을 탈출할 수 있도록 일본 경우 비자를 써준 인물들이다. 일설에 따르면 이들은 가능한 많은 비자를 발급하기 위해 하루 18~20시간을 일했다. 일본 제국주의 입장에서 보면 명백한 불복종 행위이다. 작품은 우리 시대에 인도적 행위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의 확장 가능성을 묻는다.
김아영 작가는 ‘페트로제네시스, 페트라 제네트릭스’(광물), ‘다공성 계곡2: 트릭스터 플롯’이라는 두 작품을 통해 인간에 대한 신화를 더듬어간다. 작가는 몽골 조사를 바탕으로 돌과 바위는 지구의 기억을 저장하는 메모리와도 같다고 본다. “석영(石英)은 일종의 자연산 컴퓨터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많은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저장하기 때문이지요.”
작가는 이주와 관련된 난민과 데이터의 이주를 다양한 층위로 보여준다. 광물이 지니고 있는 데이터는 오늘의 이주를 신화적, 철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