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진상규명 열쇠 사진첩 1~4권 반드시 찾아야”
옛 전남도청 별관서 보안사 사진첩 설명회 열려
21일 집단발포 사진 안보여…사라진 네권 중요자료 포함 가능성
재판 대응 등 상급자 보고용 추정…2007년 제출 문서넘버와 연관성
사진·자료수집 지속적 업데이트 돼 17권 이후 추가자료 있을 수도
2019년 12월 04일(수) 04:50
5·18민주화운동 당시 보안사령부가 만든 사진첩(17권) 중 감쪽 같이 ‘사라진 1~4권’<광주일보 2019년 11월28일자 6면 >이 5월 진상규명의 열쇠가 될 수 있는 만큼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5·18 기념재단과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대안신당 박지원·장병완·천정배·최경환 국회의원 공동주최로 지난달 공개됐던 ‘5·18 사진첩 대국민 설명회’가 3일 광주시 동구 옛 전남도청 별관 1층에서 열렸다.

이날 설명회에는 5·18 기념재단 자문위원인 이성춘 송원대 교수와 안길정 박사, 5·18기록관 김태종 연구관이 발표자로 나서 보안사 사진첩 제작 배경을 밝혔으며, “사라진 1~4권을 찾아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이성춘 교수 등 3명의 발제자는 지난달 공개된 사진첩 13권(1769매·중복포함)은 5~17권으로, 가장 중요한 자료가 담겨 있을 가능성이 높은 1~4권이 사라진 사실을 지적하고, 5월 진상규명을 위해선 사라진 1~4권을 찾아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제자들은 이번에 공개된 사진첩은 5·18에 대한 진상 규명에 자료로 쓰일 수 있고, 국민에게 공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첫번째로 발제에 나선 이성춘 송원대 교수는 “사진첩은 상급자 보고용으로 만들어져 군 정보활동 및 채증자료·군 작전보고서 작성·각종 여론조성용 및 대외 제공 사진용·5·18관련 재판 등 증거자료 및 각종 상황 대응용으로 활용됐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구체적으로 사진첩을 살펴보면 10권의 14쪽 하단 사진설명 부분 중 오타를 수정한 것으로 볼 때, 이는 전형적으로 군에서 상급자에게 보고할 때 수정한 방식이라고 근거를 제시했다.

이 교수는 또 “10권 50쪽 ‘살인마 전두환’, 12권 13쪽 ‘두환아 내자식 내놔라’, 14권 3쪽 ‘전두환 죽여’, 15권 51쪽 ‘전두환 죽여라’ 라는 문구가 적힌 사진물이 포함돼 있던 것으로 판단해보면 전두환에게까지 보고할 용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어 “사라진 1~4권은 주요한 현황 사진첩으로 판단되며 여기에는 보고에 필요한 도표 등 당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 자료 등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5권 사진첩 9쪽 아시아자동차 방산물자 납품실적(1977~1982년 실적 내용)등의 사진이 찍힌 시기 등을 볼 때, 사진 및 자료수집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고 관리된 듯 하다”며 “17권 이후 추가 사진첩과 자료집이 있을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두번째 발제자인 안길정 자문위원은 보안사 사진첩의 제작목적과 용도 그리고 제작한 곳이 어떠한 일을 하는 곳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안 위원은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에 제출된 문서 넘버들이 383-1980-XXX으로 돼 있으며, 이번에 공개된 사진첩의 문서넘버(393-1980-5~17)과도 긴밀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 두 문서의 정확한 문서명 등 연관성을 밝혀 내면 1~4권을 추적하는 데 유용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 위원은 또 “사진첩 제목이 ‘증거물 사진’으로 돼 있는데, 이는 5·18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연루자를 처벌하기 위한 입증자료로 제작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9권 36쪽에는 김대중 내란음모 범죄 개요 현황이 포함돼 있다. 김대중을 내란수괴로 만들기 위한 증거로도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사진설명에 나선 김태종 5·18기록관 연구실장은 “사진 설명이 왜곡된 부분도 다수 발견됐다”며 “시민군을 ‘폭도’, ‘극렬분자’, ‘사회혼란 조성자’, ‘난폭자들’로 표현하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진은 설명을 붙이지 않는 등 철저히 보안사 중심으로 작성됐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실장은 “어머니가 도청 앞에서 아들을 데리고 들어가려는 사진을 ‘폭도가 된 아들을 말리는 어머니’라는 식으로 왜곡하는가 하면, 무등고시학원에서 계엄군을 향해 야유하는 학생들을 끌고 내려와 마구 폭행한 사진을 ‘군경에 투석하는 난폭자들’라고 적는 등 진압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억지성 사진설명이 다수였다”고 덧붙였다.

김 연구실장은 이어 “사진첩에 집단발포 시기인 5월 21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의 사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이는 사진첩 1~4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함께 일부 사진이 누락·은폐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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