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두 작 ‘자동차 극장’

서진석 전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미디어 아트 전문 기획자로 꼽힌다. 국내외에서 활발한 기획전을 열어온 그가 이번에 광주시립미술관의 초청 큐레이터로 참여해 미디어 아트전을 기획했다. 광주시립미술관이 본관 전시에서 전시기획자를 초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전시에는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선보여 화제가 됐던 뉴질랜드 작가 리사 레이하나의 ‘금성을 찾아서(감염된)’ 등 7개국 8팀이 참여해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 개막일인 27일 서진석 큐레이터와 둘러본 2019 미디어아트특별전 ‘타임 큐비즘(TIME CUBISM)’(2020년 2월16일까지)전은 “실험성과 대중성을 아우르는 작품을 선정했다”는 그의 말처럼 재미있는 스토리텔링과 첨단 기술이 결합해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이 많았다. 전시 특성상 영상 작품이 많은 점을 감안,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관람하면 훨씬 즐겁게 관람할 수 있다.

전시 주제 ‘타임 큐비즘’은 동시대 디지털 기반의 영상미술에서 다뤄지는 ‘시간성’이 어떤 변화를 겪는지 탐색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자연스레 새로운 시공간의 개념을 만들어냈고 그 흐름을 반영한 작품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익숙하게 여겼던 시간 개념을 해체·확장·융합해 보여준다. 한마디로 ‘우리에게 낯선 시공간적 체험을 선사하는 기획’이다.

전시장서 만나는 첫 작품부터 눈에 띈다. 국내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는 정연두 작가의 ‘자동차 극장’은 관람객이 전시장에 설치된 모닝 자동차를 타고 체험하는 설치영상작품이다. 와이퍼에 설치된 조명이 운전석을 비추고 운전석쪽에 부착된 카메라가 차에 탄 관객과 반대편 유리창을 촬영해 마치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것처럼 관객이 주인공인 영상을 화면에 보여준다.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 중 ‘정결한 여신’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펼쳐지는 ‘거꾸로 된 세상’(38분)은 건축, 조각, 사진, 비디오에 디저털 기술을 접목시키는 작업으로 정평이 나 있는 러시아 콜렉티브 그룹 AES+F의 작품이다. ‘뒤집힌 세상’은 16세기 이탈리아 판화 ‘거꾸로 된 세상’을 모티브로 삼았다.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피사체를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대신 7만장의 스틸사진을 이어붙여 고화질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작품은 환영의 공간을 보여준다. 특히 사람이 당나귀를 등에 업고, 도시미화원이 오물과 쓰레기를 투척하는 등 말 그대로 ‘거꾸로 된 세상’이 모델같은 인물들과 다채로운 피사체를 통해 때론 유머스럽게, 때론 그로테스크하게 펼쳐진다.

또 다른 러시아 작가인 블루스프 그룹의 ‘편대’(11분)는 들판 위를 줄지어 지나가는 군용트럭, 설경 속을 달리는 수송열차, 물자를 지상으로 투하는 보이지 않는 수송기를 끊임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3개의 프로젝터를 통해 양벽면과 바닥 등에서 동시에 흘러나오는 영상은 컴퓨터 그래픽, 3D 모델링과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을 활용한 것으로 관람객에 가상 현실을 경험하게 해준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족 이야기를 다룬 대만작가 리아오 치유의 ‘마법의 열매’(30분)는 관람객들이 가장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일 것같다. 어머니와 아들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기억과 감정을 시적인 영상언어로 보여주는 이번 작품은 과거와 현재,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한 상황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작가가 핸드 페인팅으로 직접 그린 세트장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배경으로 두 개의 화면을 통해 등장하는 모자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뉴질랜드 작가 리사 레이하나의 ‘금성을 찾아서(감염된·64분)’는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뉴질랜드관에서 선보여 언론으로부터 집중적으로 조명받았던 작품이다. 1800년대 초 제작된 프랑스 장식용 벽지 ‘태평양의 원주민들’ 모티브 삼아 250년 전 유럽의 탐험역사를 21세기 첨단 기술의 힘을 빌려 애니메이션으로 재해석한 대서사시다.

1768년에서 1779년 사이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 직접 목격했던 원주민과 주요 사건이 손으로 직접 그린 목가적인 풍경화와 실사 촬영한 라이브 액션의 합성으로 영상 안에 펼쳐져 흥미롭게 다가온다.

일본작가 고이즈미 메이로의 작품 ‘시각적 결함’(12분)은 단일 스크린의 앞뒤 양면 투사로 이루어진 2채널 영상이다.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둔 어느 부부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가미카제로 떠나는 남편의 출격을 앞두고 있는 아내의 내면과 남편의 이야기가 식사하는 장면 등을 통해 흘러나오는데 작가는 표면적 현상 너머 진실과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정신적 맹목, 무지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밖에 중국작가 양푸동의 ‘다섯번째 밤 II 리허설’(52분)은 영화촬영 세트장에서 동일 장면들을 각기 다른 위치에서 다중 시점으로 촬영한 작품이며 호주 작가 안젤리카 메시티의 ‘시민밴드(21분)’는 고향을 떠나 파리와 호주 대도시로 이주한 4명의 음악가 이야기를 4개 영상을 통해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김미은 기자 me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