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말)도 역사성을 가지며 한 시대를 반영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유명한 말도 결국 언어를 존재의 양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존재는 의식을 결정한다”라는 명제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의식과 존재, 언어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글이 처음부터 좀 까다로운 철학적 담론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국 우리 사회에 대한 해석을 위해서는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정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 출신이니 하는 단어는 대학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먼저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소위 ‘수저 계급론’이라고 한다. 신자유주의가 심화되며 사회가 양극화되고 계층이 고착화되어 가면서 10여 년 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말이다. 수저 계급론은 옛날 봉건시대 유럽 귀족층에서 주로 은식기를 사용하면서 태어나자마자 유모가 은수저를 이용해 젖을 먹이던 풍습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요즘 우리 사회가 옛날 유럽식 봉건 계급 사회로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주지하다시피 봉건 사회의 특징은 출신 성분에 따라 신분이 계급으로 나뉘어진 것이다. 사회경제적 계층 분화가 오랜 세월 속에서 계급(class)으로 변해간다. 계급이란 고정되고 세습된 신분을 말하는 것이다. 한창 꿈을 좇아야 할 젊은이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금수저, 흙수저로 등급을 나누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지금으로부터 5년여 전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 First Century)을 출판하여 세계 지식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주장이 새삼 주목된다. 그는 18세기 이후 3세기에 걸친 20여 개국의 부(wealth)와 소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역사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하면서 ‘세습 자본주의’라는 말로 최근 전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불평등의 흐름을 통찰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지금처럼 진행되었다가는 자본 소유의 집중도가 점점 더 높아져서 중세 봉건 시대처럼 세습받지 않고서는 자산을 보유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나라의 한 자료에 의하면 노동과 자본의 불균형한 격차를 잘 보여주고 있다. 2016년 우리나라 상위 1%의 배당 소득은 약 75%, 이자 소득은 45%에 이르고, 상위 10%까지 내려오면 배당 소득은 약 94%, 이자 소득은 92%다. 반면 근로 소득으로 보자면 상위 1%는 약 9%, 상위 10%까지는 37%에 이른다.

상위 1%는 노동을 거의 하지 않고 다른 노동자들의 노동력으로 살고 있다는 뜻이다. 즉 자신이 소유한 ‘부’를 손대지도 않은 채 배당 소득과 이자 소득에 영세 자영업자들 임대 소득까지 노동의 결과물을 챙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상위 1~10%는 가만히 앉아서 나머지 99~90%의 노동력을 부리고 있다는 의미다. 노동자들의 노동 소득으로 빈부격차를 더 이상 줄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과거 봉건신분제 계급 사회 구조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불평등한 국가일수록 자살률, 정신 질환 유병률과 수감률 증가, 상호 신뢰도 하락과 같은 부정적 현상도 심화된다고 한다. 지난 11월 2일 서울 성북구의 한 다가구 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70대 노모와 40대 세 명의 딸. 이들은 빚이 늘어 경제 상황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극심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채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근래 경제적 고통 속에서 연속되는 가족 동반 자살 행렬을 보면서 사회 문제와 복지 문제를 고민하는 한 사람으로서 무거운 마음이다.

일찍이 중국의 고전 ‘논어’ 계씨(季氏)편에서 공자는 “적음을 걱정하지 말고 균등하지 않음을 걱정하라(不患寡而患不均)”고 했다. 이 말은 성장보다 분배를 강조하는 뜻으로 절대적 빈곤보다 빈부격차로 인한 상대적 빈곤을 더욱 불행하게 느낀다는 의미다. 소득 불균형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은 사회 갈등을 야기하는 위험 요인이며 사회 복지의 역할을 더욱 필요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