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평가한다는 것은 결국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남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가 분명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인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비공개적으로, 그리고 장점보다는 단점 위주로 이뤄지게 마련이어서 점수도 박한 경우가 적지 않다. 사람은 원래 불완전한 데다, 평가라는 작업 자체가 ‘갑의 위치에서 타인을 내려다보며 관찰하는’ 일방통행식 작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평가 내용이 외부에 알려질 것으로 생각되는 경우, ‘공정하고 냉철해야 한다’는 명분에 기대어 더욱 박한 점수가 매겨질 가능성이 크다.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걸출한 위인이나 지도자들도 박한 평가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철의 여인’(Iron Lady)으로 알려진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지난 1975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 외교관들로부터 ‘다소 순진하고’ 심지어 ‘너무 소녀답다’는 평가를 받았다. 배우 출신인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지식이 짧다’는 혹평을 들어야 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과 소련의 지도자였던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과 니키타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도 각각 ‘이기적이다’ 혹은 ‘돼지 눈’이라는 악평을 받았다.

미국 외교관들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에 대해 ‘무책임하고 허영심이 많으며 효율성은 낮다’고 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에 대해선 ‘비판에 민감한 독재자 스타일, 벌거벗은 황제’라는 악평을 내렸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 대해선 ‘위험을 회피하며 창의력이 없는 인물’이라고 했다.

요즘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치열한 싸움판이 벌이진 우리 정치권에서도 상대에 대한 악의적인 평가가 범람하고 있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나의 생각, 감정, 소망 등을 자신으로부터 떼어 내 상대에게 씌우는’ 투사(投射, Projection)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다. 남에게 내리려고 하는 평가가 사실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것은 심리학에서는 기본이다. 남을 평가하려는 사람들, 이제부터는 자기 자신부터 스스로 평가해 볼 일이다.

/홍행기 정치부장 redp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