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2019년 08월 09일(금) 04:50
어린 시절의 기억 한 토막. 70년대 초반만 해도 TV에서 권투 중계를 자주 했다. 특히나 낯선 이국 땅에서 원정 경기라도 하는 날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동네 사람들이 모두 TV 있는 집에 모여서 흑백 브라운관이 뚫어져라 시청하곤 했다. 난타전이 이어지고 우리 선수가 좀 밀리는 듯하면 ‘저러다가 다운되면 어쩌나’ ‘다운되서 못 일어나면 어쩌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마치 미리 보기라도 한 사람처럼 확신에 차서 “저 봐라! 안된다! 에잇… 졌다! 졌어!”라고 거칠게 말하는 어른이 꼭 한두 사람 있었다. 그럴 때마다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속에서 짜증이 확 나곤 했었다. 그때만 해도 유교 문화가 당연시되던 시절이라 어린 것이 감히 따박따박 말대꾸하지는 못하고, 대신 어떻게든 우리 선수가 이기기를 마음 속으로 간절하게 바라고 또 바랐다.

희망(希望). 바랄 희에 바랄 망, 바라고 또 바란다는 말이다. 소원(所願)은 바라는 바. 그러니까 희망, 소원, 바람 모두 같은 말이다. 절에 기도하러 오는 신도분들 중에 더러 이런 분들이 있다. 이 분들의 스토리 전개 패턴은 거의 일정하다. “제가 딱히 걱정거리가 없어요. 그런데…”라며 가족 중에 조금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치 같은 대본을 읽는 것처럼 이구동성으로 이런 식으로 말한다. 가족도 없고 집도 없는 내가 듣기에는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굳이 일부러 찾아내서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에둘러서 은근히 자식 자랑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사소해 보이는 그 하나의 결핍이 당사자에게는 무척이나 마음을 힘들게 하는 모양이다. 희망할 거리가 없다면 어떻게든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 인지상정일까. 그게 뭐든 희망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듯하다.

살다 보면 온갖 이유로 희망을 잃을 때가 있다. 지금의 삶에 지극히 만족해서 바라는 바가 없거나, 아니면 숱한 좌절의 경험으로 희망해 봐야 소용없음을 터득해서…. 뭐, 이유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 인간에게 희망이 없다면 왠지 아주 중요한 뭔가를 잃은 듯한 느낌에 빠져들 것 같다. 마치 희망이 삶의 필수 요소라도 되기라도 한 것 같다.

그런데 문득 의구심이 일어난다. ‘고양이에게도, 멧돼지에게도, 나비에게도 희망이 있을까? 희망 한 쪼가리라도 없다면 마치 인생 포기자로 낙인 찍힐 것 같은 인간 세상이 과연 정상일까?

희망, 소원, 바람 이들은 모두 욕망의 표현이다. 굳이 내 맘대로 구별지어 말하자면 소원은 남이 이루어 주는 것에 가깝고, 희망은 내가 스스로 이루는 것이라고나 할까. 바람이라고 하면 상당히 포괄적이다.

가끔 나도 모르게, ‘오늘은 뭐 하나 뜻대로 되는 일이 없구만…’하고 푸념하는 날이 있다. 마치 내가 뭘 원하는 지 진즉부터 환하게 꿰뚫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뭐하나 제대로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다. 애초에 내가 원했던 그 무엇은 흐릿하고 애매하고 언어화되지 않은 일종의 감정 덩어리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비로소 막연한 느낌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말이나 글로 드러내 표현하게 된다. 그 때야 비로소 내가 뭘 욕망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애초의 모습이 아니다. 그러니 대책 없이 부딪히는 것보다 먼저 자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막연한 바람이 있다면 구체적인 소원으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소원이 있다면 희망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희망이 있다면 희망을 향한 믿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기도는 마음 속의 희망을 형상화하는 일련의 행위이다. 희망을 형상화하는 가장 큰 이유는 희망을 구체화하고 의식화하는 것, 즉 자각하는 것이다. 자각된 희망은 곧 의지이다. 희망을 의지화하는 과정에서 희망은 전망이 되고 비전이 되고 현실을 바꾸는 실천 전략이 된다. 욕망이 없다면 산 자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 그러므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품는 것은 산 자의 숙명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설움의 날들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라.”

인간은 희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굳이 푸시킨의 시를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들은 이 사실을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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