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문화 원류를 찾아서] <87> 10부 ‘네팔’ (8) 어린 소녀의 슬픈 눈물 ‘쿠마리’
왕실 보호하는 ‘탈레주’ 분신이자 살아있는 여신
샤카 집안 초경 안치른 소녀 선발
몸에 상처나 병 없고 반점도 없어야
그녀의 발 신성해 땅에 닿아선 안돼
가족일지라도 인간과 함부로 대화 못해
쿠마리 선발 과정 엄격하고 까다로와
초경 시작하면 쿠마리 자격 박탈
2019년 08월 02일(금) 04:50

현재 쿠마리.

쿠마리 사원을 찾은 관광객들이 사원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쿠마리가 된 소녀는 이 사원에서 생활하며, 외부인과의 대화·접촉에 제한을 받는다.






네팔 카트만두 더르바르 광장에 있는 쿠마리 사원 정문.






“아니, 어찌 이런 곳까지 오셨습니까.”

네팔 말라 왕조(1201∼1769)의 마지막 왕이었던 자야 프라카쉬 말라(Jaya Prakash Malla) 왕은 무릎을 꿇었다.

주사위 놀이를 즐겼던 왕은 어느 날 밤 갑작스레 붉은 뱀과 함께 그의 처소를 방문한 미모의 여성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 여성이 바로 왕실을 보호해주는 여신 ‘탈레주’(Taleju)였기 때문이다.

자야 프라카쉬 말라 왕은 여신 탈레주와 이야기하는 게 너무도 좋았다. 여신과 왕은 매일 밤 처소에서 주사위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만, 탈레주는 자신과 왕이 함께 주사위 놀이를 하는 걸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한다고 주의를 줬다.

왕이 매일 밤마다 자신의 처소에 들어가면 아침이 될 때까지 나오지 않자 왕비는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궁금증과 의심을 참지 못했던 왕비는 몰래 왕의 처소 앞에 다가섰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문 앞에 조용히 귀를 대고 있던 왕비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왕이자 자신의 남편이 처소에 왠 젊은 여성을 들여놓고 신나게 놀고 있든 게 아닌가. 왕비는 둘의 행태를 확인해보기 위해 작은 열쇠구멍에 눈을 가져갔다. 작은 구멍을 통해 내부를 살피던 왕비는 그만 여신 탈레주와 눈이 마주쳤다.

누군가 자신을 훔쳐본 것을 알게 된 탈레주는 왕에게 ‘버럭’ 화를 냈다. 노여움이 극에 달한 탈레주는 더 이상 자야 프라카쉬 말라 왕과 말라 왕국을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고, 왕은 거듭 용서를 구했다.

“그간의 정이 있으니 너를 용서하겠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탈레주는 왕에게 네팔의 민족 중 하나인 네와르족 중에서 샤카(Shaka) 성을 가진 소녀로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샤카 성을 가진, 초경을 치르기 전 여자아이를 분신으로 두고 극진히 섬기라고 했다. 여기서 샤카 집안은 석가모니 일가다.

네팔에서 현실에 존재하는 여신이자 탈레주의 분신 ‘쿠마리’(Kumari)와 얽힌 전설이 있다. 네팔에는 현재 3명의 쿠마리가 있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최고는 카트만두(Kathmandu) 왕실의 쿠마리다.

카트만두 더르바르(Durbar) 광장 쿠마리 사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 여신은 어린 소녀다. 원래 쿠마리는 자신의 집에서 생활했으나, 1918년 샤 왕조가 카트만두에 쿠마리 사원을 지은 뒤 이곳에 모셔지고 있다.

쿠마리 선발 과정은 까다롭다. 샤카 집안의 초경을 치르지 않은 어린 소녀로, 몸에 단 하나의 상처와 병이 없어야 한다. 몸에 반점도 없고, 치아도 가지런해야 하며,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검어야 한다. 신체는 아름다워야 하고, 태어난 날과 시간이 국왕과의 상성이 좋아야 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렇게 몇 명의 소녀가 걸러지면 여러 개가 놓인 물건 중 이전 쿠마리의 물건을 찾아야 하고, 짐승의 머리를 잘라 놓아둔 어두운 방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무서워 울거나 소리를 내도 쿠마리가 될 수 없다.

이렇게 엄격한 절차를 거치고 선발됐지만, 화려하고 강렬한 붉은 빛의 화장과 옷차림 뒤편에 가려진 소녀의 삶은 서글프다. 신으로 추앙받지만 그녀의 발은 신성해 땅에 닿아선 안되고, 사제들의 허락 없이 물건을 만져서도 안되며, 신성한 그녀의 입은 가족일지라도 하찮은 인간과 함부로 대화를 나눠서는 안된다. 신성한 눈도 나쁜 것을 보면 안돼 그저 사원에 갇혀 축제가 열리는 날이 아니면 밖으로 나올 수도 없다. 어린 소녀가 짊어지기엔 너무도 큰 시련이다.

초경을 시작하게 되면 더 이상 완벽한 존재인 신이 아니기에 쿠마리 자격이 박탈된다. 쿠마리 시절과 달리 일반인이 된 소녀는 ‘쿠마리와 결혼하면 남편이 단명한다’는 미신 속에 평생을 외로움과 멸시에 시달리며 생을 마감하곤 한다.

아동인권 침해라는 국제사회의 비난이 제기되면서 지금은 사원 내에서 개인교습도 받을 수 있고, 생활의 제약도 다소 완화됐다고 알려져 있다.

/네팔 카트만두 = 글 박기웅·사진 김진수 기자 pboxer@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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