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프랑스 파리. 6층 건물 창문에 서 있던 만삭의 여인이 몸을 던진다. 잔 에뷔테른(1898~1920)이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을 견디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고 만 것이다. ‘목이 긴 여자’를 주로 그렸던, 그녀의 남편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는 바로 전날 세상을 떠났다. 아내를 모델로 한 ‘큰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 등 수많은 초상화를 그렸지만 자신의 모습은 화폭에 담지 않았던 모딜리아니의 ‘마지막 작품’은 1919년에 그린 ‘자화상’이다. 팔레트를 들고 망연히 정면을 응시하는 한 사내의 모습은 마치 죽음을 예감한 듯 쓸쓸하다.

이유리의 책 ‘화가의 마지막 그림’에는 빈센트 반 고흐, 에곤 실레, 이중섭 등 유명 화가들의 ‘마지막 명작’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예술가의 ‘최후의 작품’은 단순히 연대기 순의 ‘마지막’을 넘어서, 한 작가의 인생이 응축돼 있는 터라 묵직하고 의미 있게 다가온다.

누군가의 ‘마지막’에 대한 글을 읽으며 누군가의 ‘처음’을 생각한다. 며칠 전 금호 주니어콘서트(28일까지)에 다녀왔는데, 이제 막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젊은 연주자들의 무대를 보는 건 설레는 일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산하 양은 개인 사정으로 서울예고를 중퇴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한 레슨과 연습을 통해 이날 공연에서 멋진 무대를 선보였다.

금호 주니어콘서트에는 최연소자인 플루트의 홍채리(유안초 4년, 28일) 양을 비롯해 바이올린의 남빈(예원학교 1년, 13일) 양 등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12명이 무대에 선다. 1시간 30분에 이르는 독주회를 홀로 책임지는 건 이들에게 큰 도전일 것이다. 화려한 드레스가 아직은 쑥스럽고, 박수갈채를 받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지만, ‘꿈’을 향한 첫 항해에 나서는 이들에겐 더없이 소중한 무대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클래식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공연장을 찾아 응원의 박수를 쳐 주는 건 어떨까. ‘의외의 실력’에 깜짝 놀라며 즐거운 경험을 할 수도 있으리라. 또 시간이 흘러 이들이 큰 무대에서 활약하게 된다면, 그들의 ‘처음’에 내가 있었음을 기억하며 빙그레 미소 지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미은 문화부장 me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