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과 장소가 바뀌기는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는 비슷한 사건이나 흐름이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이는 지구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유형이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속해 있는 국가나 민족의 지정학적 위치가 거의 변하지 않고 있는 것도 역사가 반복되는 배경으로 꼽힌다.

‘군주론’으로 유명한 마키아벨리도 1531년 출간한 저서 ‘로마사 논고’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래를 내다보려는 사람은 반드시 과거를 돌이켜봐야 한다. 세상사는 항상 과거를 닮아 가기 때문이다. 모든 세상사는 과거든 현재든 똑같은 열정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창조되고 생명을 얻게 되며, 결국엔 같은 결과를 얻게 된다.”

최근 우리 한반도와 주변국 상황을 둘러보면 마키아벨리의 통찰이 얼마나 설득력을 갖고 있는지 새삼 감탄하게 된다. 최근 우리 한반도는 ‘불운하게도’ 신냉전 체제의 각축장으로 변해 가고 있다. 무역전쟁을 촉발한 일본. 시도 때도 없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북한. 한국의 영공을 침범한 중국·러시아. 그리고 한국을 꼭두각시로 만들려하는 미국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모든 위험 요소들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반도 주변을 감도는 이들 위협은 별안간 생겨난 것은 아니다. 우리 역사에서 먼 과거부터 항상 존재해왔고 또 우리를 괴롭혀왔던 것들이긴 하다. 문제는 최근 들어 갑작스레 수면 위로 떠오른 이들 위협 요소를 우리의 이해관계에 맞춰 통제할 수 있는지의 여부다.

헤겔은 1832년 ‘역사와 철학에 관한 강연’에서 “역사와 경험이 가르쳐 주는 것은, 민족과 정부가 역사를 통해서 무엇을 배우거나 원칙을 끌어내고 그에 따라 행동했던 적이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금 우리 민족과 정부는 국내 정치 싸움에 몰두한 나머지 국방과 국가의 안위를 잊어버린 것은 물론, 지난 세월 수많은 외세의 침략을 견디고 이겨 내며 체득한 ‘역사와 경험의 교훈’까지 뇌리에서 지워 버린 것처럼 보인다. 헤겔의 아픈 지적을 되새겨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홍행기 정치부장 redp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