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학교가 이번 주에 여름 방학을 한다. 걸어서, 승용차로, 카풀로 붐비던 등굣길은 멈추고 학생들은 각자 다른 길들을 경험할 것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시계의 지배를 받고,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는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교사와 학생은 방학과 묶여 있는 학기 단위의 생활이다. 1, 2학기 각 학기별 교육 성과로 한 해를 마무리하기 때문이다. 1학기를 마치면 그때서야 한 해의 절반이 지났다고 느낀다.

일곡 지구에 위치한 우리 학교는 뒷산 한새봉에 인접해 있다. 산벚꽃이 흩어지고 나면 늦봄 꿩소리가 들려오는 좋은 배움터다. 새벽같이 집을 나서서 한새봉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걸으면서 그날 처리할 사안들을 정리해 보는 정제의 시간이기도 하다. 스타카토로 끊어지는 고음의 뻐꾹 소리와 안개비 같이 가라앉은 산비둘기 울음이 아침 향연을 펼친다. 가는 나무 가지를 타거나 잽싸게 건너뛰는 청설모의 묘기 앞에서 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한새봉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안면이 없는데 큰소리로 안부를 묻는 청년이 있는가 하면 지팡이에 의지한 힘겨운 산행도 있고, 부부가 한마음으로 걸어가는 동행도 눈에 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나를 설레게 하는 만남은 한새봉을 넘는 등굣길 학생들이다. 이 숨 막히는 도심에서 매일 산을 넘어 등교하는 학생들이 있다니 놀랍지 않는가. 양산동이나 일곡 지구에서 수십 명의 학생들이 고개 너머 자리한 S중·고등학교에 다닌다. 중학생들은 끼리끼리, 고등학생은 듬직한 표정으로 생활복에 백팩을 메고 등교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오질 수가 없다. “얼마나 힘든가?, 아이고 훌륭하네, 세상에나 대단하다, 몇 년이나 넘어 다닌가” 산을 넘는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 말들이 절로 나온다. 그러면서 동시에 떠오르는 것은 이 학생들의 부모들이다. 시간 아깝고, 몸 피곤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고개 넘는 등굣길을 지지해 준 부모들의 건강한 성원은 또 얼마나 대단한가.

어느 TV에서 방송한 ‘세상에서 가장 험한 등굣길’을 관심 있게 봤다. 단순한 주제인데 소재 발굴은 세계적이다.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일주일 이상의 등굣길에서 얼음, 눈, 협곡, 강, 추위, 독충 등 그들이 극복해야 할 대상은 다양했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부모들의 간절한 소망과 아이들의 초롱한 눈빛이었다. 많은 시청자들이 이 방송에 끌렸던 것은 각자 간직한 유년의 기억 때문이 아닐까.

나는 60년대에 고흥 어느 면소재지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우리 마을에서 학교까지는 시오 리 길이었다. 약 6㎞. 그러니 하루 등하굣길이 삼십 리였다. 시계가 없어 앞산에 뜨는 해의 높이로 지각 여부를 가늠하여 발걸음을 조절했다. 큰 산을 넘고, 저수지를 끼고 가다가 다시 까끔(야트막한 산, 방언) 하나를 더 넘어서야 학교가 보였다. 측백나무 울타리에 벚나무로 둘러싸인 학교는 팔영산을 마주한 남도 끝자락 희망의 전당이었다. 개교(1919년)한 지 백년이 되었고, 한때는 2부제 수업으로도 학생들을 감당할 수 없어서 본교를 중심으로 동, 서, 북에 세 분교까지 있었으나 이제는 딸랑딸랑 필통 소리와 책보에 번진 김칫국물의 추억만 남긴 채 소규모 학교가 되었다.

여러 사연으로 나이 차이가 있는 동창이 많았다. 여덟 살이 되어도 마을 이장에게서 연락을 받지 못했거나 입학식 날 산에 땔나무를 하러 가버리면 그만이었다. 동네 형들을 따라 멋모르고 학교에 간 일곱 살짜리는 입학이었다. 윗니와 아랫니가 쫀득하게 달라붙는 원조 물자 분유와 노릇한 사각 옥수수빵. 이어지는 배탈의 그 시절. 6년 동안 30㎞ 안팎의 몸으로 삼십 리를 왕복한 힘은 학교가 모두의 미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자사고 재지정을 비롯한 여러 교육 현안들로 학생들의 등굣길이 심란하다. 자녀의 등굣길을 스스로 선택하겠다는 측과 누구나 평등한 등굣길이 되기를 바라는 시각이 혼재해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대입 제도를 건들지 않고는 여러 유형의 학교도 한때의 시범 학교일 뿐이다. 대학이 가르치는 경쟁을 해야지 모집 경쟁을 해서는 초·중 학생들의 등굣길은 계속 무겁고 험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