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성종 때 압록강 동쪽의 영토에 설치한 6개의 주(州)를 ‘강동 6주’라고 한다. 군사적 요충지인 이곳은 서희(942~998)가 거란의 장수 소손녕과의 담판으로 획득한 영토다. 당시 고려는 오랑캐인 거란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서경 이북의 땅을 내어 주고 평화조약을 맺자는 현실적인 주장도 제기됐다.

서희는 거란의 의도가 고려와 송나라와의 국교 단절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당시 거란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고려가 자신들은 상대하지 않고 강 건너 송과 교류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했다. 서희는 고려가 거란과의 교류가 불가능한 것은 압록강 일대 여진족 때문이라는 논리를 폈다. 결국 서희의 지략으로 고려는 북진정책 장애물인 여진족을 몰아내고 강동 6주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한일 관계가 파국이다. 우리의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 심사 강화는 강제징용 노동자의 배상 판결과 무관치 않다. 한편으로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반한 감정을 이용하려는 아베정권의 정략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우리의 대응에 따라 일본의 추가 조치가 예상되지만, 일련의 움직임이 치밀한 시나리오에서 비롯됐다는 데 이견이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인의 덕목으로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 감각’을 꼽았다. 국익을 위해선 명분 못지않게 실리도 중요하다는 의미로, 취임 후 방일 시 일본 내 한국 호감도가 90%에 달했다. 그러나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 이벤트로 독도를 방문했는데 이는 사업가 기질에서 연유한 퍼포먼스였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일 합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전혀 동의하지 않은 ‘무늬만 합의’였다.

‘협상의 전략’ 저자인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똑같은 기술이라도 상황에 따라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다. 협상의 기술은 줄타기에서 균형을 잡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원칙에만 매몰돼 실리를 잃거나, 현실에 집착한 나머지 가치가 훼손돼서도 안 된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문 대통령은 선비 기질이 강한 데다 주류인 586정치인들도 다수가 운동권 출신이어서 우려되는 상황이다. 실타래처럼 얽힌 정세, DJ의 ‘서생과 상인’에 답이 있다.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