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은 이처럼 부조리하고 불행한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백신과도 같은 미의식이다. 해학이 있는 사람은 남과 비교할 수 없는 자신의 존귀함을 신뢰한다. 그러면 남과 비교해서 생기는 상대적 열등감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재감만으로도 본성에 나오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본문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희극은 보통 이하의 악인을 모방하고, 비극은 보통 이상의 선인을 모방한다”고 전제했다. 희극 주인공인 악인은 대체로 지위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이들의 행위는 웃음거리를 제공하는데 이때의 웃음은 일종의 비웃음이다.

이와 달리 해학적 웃음은 자족적인 특징을 지닌다. ‘웃음의 동기가 자신의 본성에서 발현되는 것’으로, 희극적 웃음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사전적 의미의 해학(諧謔)은 “세상사나 인간의 결함에 대한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말이나 행동”을 뜻한다. 비웃음이 아닌 품위가 깃든 자연스러운 웃음인 것이다.

한국인의 해학을 미의식으로 조명한 책이 발간됐다. 최광진 홍익대 초빙교수가 펴낸 ‘미술로 보는 한국의 미의식 2- 해학’은 180여 점의 미술작품으로 만나는 한국인의 해학을 담고 있다. 책은 ‘미술로 보는 한국의 미의식’ 시리즈 두 번째 기획으로 1권 ‘신명’에 이어 ‘해학’을 조명한다.

저자는 해학의 근원적 뿌리를 한국인의 친화적 풍류정신에서 찾는다. ‘풍류는 나와 남을 분리해 고립시키지 않고 타자와 소통하며 친근하게 어우러지는 것’을 뜻한다. 최치원은 ‘난랑비서’에서 풍류를 뭇 생명과 어우러지는 ‘접화군생’(接化群生)으로 정의하는데, 이는 만물평등사상과 낙천적인 정서가 투영돼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해학(諧謔)을 들여다보면 ‘해’(諧)는 ‘화합하다’는 뜻이, ‘학’(謔)은 ‘희롱하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부조리한 권력에 희롱을 하면서도 공동체 화합을 위해 선 포용한다는 뜻이다.

책은 모두 4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은 귀면 귀와와 장승, 사천왕상 같은 민속신앙에 드러난 해학을 조명한다. 나주 운흥사지의 ‘상원주장군’과 ‘하원당장군’은 보는 이에게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한다. 전자는 둥근 눈망울, 큰 코, 드러난 이빨이 무섭다기보다 인상 좋은 할아버지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후자는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데다 잔뜩 목을 움츠리고 있어 절로 웃음을 짓게 한다. 저자는 “초월적인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고 하기보다는 인간의 본성과 휴머니즘을 떠올리게 한다”고 평한다.

2장은 조선의 풍속에서 길어올린 해학이 주제다. 저자는 윤두서의 ‘휴식’을 주목하면서 선비가 있어야 할 자리에 농민을 그린 의도를 분석한다. 아름다운 산수를 배경으로 작업복 차림으로 앉아 있는 농민의 모습이 이채롭다. 고답적인 산수화의 전통에서 농민을 주인공으로 세운 것 자체가 파격적이다. 작품은 당시 흔들리는 봉건질서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3장은 민화로 승화한 낭만적 해학에 초점을 뒀다. 민화의 해학은 ‘민성의 자유로운 유희본능’과 연관돼 있다. 19세기 후반의 ‘까치호랑이’를 보고 있으면 호랑이에 대한 선입관이 무너진다. 호랑이는 무섭다기보다 귀여운 모습이다. 까치의 놀림에 화가 났는지 털이 쭈뼛하게 선 모습은 동물의 왕이라기보다는 혀를 날름거리는 애완동물의 이미지다.

마지막 장은 현대미술에 계승된 해학의 미학을 조명한다. 저자는 이중섭, 장욱진, 이왈종, 주재환, 최정화의 작품을 주목하며 유쾌한 웃음의 기저를 들여다본다. 최정화의 ‘청소하는 꽃’은 청소도구를 화분에 핀 꽃으로 표현했다. “미와 추의 이분법적 차별을 무너뜨리고 하찮은 존재를 존귀하게 만들고자 한다는”점은 다분히 해학적이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사회에 내던져진 우리는 부조리한 현실을 알면서도 사회를 등질 수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안으로 끌어안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술문화·1만9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