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18대 왕이었던 현종의 실록에는 예송논쟁(禮訟論爭)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효종 사후 인조의 계비(繼妃)인 조대비의 복상(服喪) 문제를 둘러싸고 서인과 남인이 치열하게 벌였던 예법 논쟁이 그것이다. 일반적인 예송논쟁은 왕이 죽었을 때, 왕의 생모 또는 계모가 상복을 얼마나 입어야 하는지가 주된 쟁점이었다. 어머니보다 장남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경우 어머니는 3년 상복을 입고 차남부터는 1년 상복을 입는데 장남은 종통의 계승자였기에 그 같은 차등을 뒀다.

당시 예송논쟁은 차남 출신의 왕이었던 효종의 죽음에서 비롯됐다. 그는 병자호란 이후 볼모로 청나라에 머물다 형인 소현세자가 죽자 조선으로 돌아와 세자에 책봉됐다. 그러나 인조에 이어 왕위에 오른 그가 조대비(인조의 계비)보다 먼저 죽으면서 조정은 조대비가 상복을 3년 입어야 할지, 1년 입어야 할지를 두고 서인과 남인이 첨예하게 갈렸다. 이 문제는 장·차남의 서열뿐 아니라 왕도정치를 주창했던 조선의 성리학적 이념과도 연관돼 있었다.

3개월째 접어든 ‘식물국회’가 개원은 했지만 여전히 파행이다.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철회에 이어 경제청문회를 요구하며 보이콧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만든 선진화법마저 부정하며 국회를 볼모로 삼는 한국당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한편으로 청문회의 명칭·의제 등에 경직된 태도로 일관하는 민주당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역사의 쓸모’라는 책을 쓴 최태성 작가는 역사의 관점을 거론하며 ‘예송논쟁’을 예로 든다. 과연 수십 년에 걸쳐 당파 싸움을 해야 할 만큼 그 문제가 중요했는지 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떤 논쟁이든 100년 뒤 우리의 후손들이 평가했을 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첨예한 대립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내 생각, 우리 진영만 옳다는 주장은 독단이다. 경기 불황과 취업난으로 민생은 막다른 벼랑에 내몰려 있다. 정쟁으로 세월을 보내다시피 했던 조선은 결국 망국을 피하지 못했다. 오늘의 식물국회에서 300년 전 예송논쟁의 데자뷰가 느껴져 씁쓸하다.

/박성천 문화부 부장sky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