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토대로 삶과 죽음 성찰했죠”
2019년 06월 17일(월) 04:50 가가
염창권 시인 ‘마음의 음력’ 펴내
“죽음의 관념, 풍부하게 담아”
시·시조·평론 등 다양한 활동
문학은 동반자…치유의 방편도
“죽음의 관념, 풍부하게 담아”
시·시조·평론 등 다양한 활동
문학은 동반자…치유의 방편도
“시를 쓰는 일은 대상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거창하게 생의 비의(秘意)를 발견하는 일이라고도 하지요. 저는 삶과 죽음을 한통속으로 놓고 가벼운 일상의 관념 위에서 충돌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전통적 사유 가운데 ‘음력’의 개념을 빌려오게 된 것이구요.”
염창권 시인은 시와 시조, 동시, 평론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그려낸다. 한마디로 그는 시를 다채롭게 변주하는 다재다능한 문학인이다. 광주교대 교수로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것까지 하면, 문학적 재능을 십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시집 ‘마음의 음력’(발견)을 펴낸 염 시인을 만났다. 아직 여름 방학에 접어들기 전이라 캠퍼스는 몇몇 학생들의 모습과 우거진 녹음으로 차분한 분위기다. 염 시인은 예의 소탈하면서도 겸손한 인상이다. 오래 전부터 알아온 이웃집 아저씨 같은 느낌이 묻어난다. ‘문학인은 이래야 한다’는 고정적인 이미지나 ‘젠체하는’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마야 달력에는 ‘18월’까지 달이 있다고 합니다. 한 달이 20일이니 360일에 5일을 더하면 365일의 태양력이 완성되지요. 나머지 5일은 ‘우아옙’(Uayeb)이라 하는데 이 날들은 금식 기간으로 불길한 것을 쫓기 위해 스스로 고통에 처하는 날이지요. 사랑을 잃거나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5일간의 고통스러운 기간을 통해 자기점검을 하죠.”
그는 처음에 시집 제목을 ‘18월’로 하자고 했지만 주위에서 “어감이 좋지 않다”고 해서 바꿨다고 한다. 그러면서 작년에 ‘우아옙’(Uayeb) 같은 시간이 있었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시인이란, 아니 예술가는 그러한 고통의 시간을 통해 작품이 한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번 작품집 제목에서 키워드 ‘음력’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전통적인 사유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죽음의 관념을 보다 더 풍부하게 하고 싶었다”는 말에서 작품집 경향이 가늠된다.
“죽음에 대한 인식은 역으로 삶의 관념을 더욱 충실하게 해준다고 봐요. 다들 죽음이 무섭다고 피하려 들지만 죽음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사막을 걷는 것과 같이 타는 갈증의 연속이겠지요. 즉 끝(finish)이 없다면 생의 의욕이나 목표도 없어지겠죠.”
“민소매 끈 지나간 곳, 가늘은 선 그어져 있다// 세상에서 가장 멀고// 힘들게 건너가서는/ /아무도, 그 경계선을 지워내지 못한다”(‘이경(異境)’전문)
‘이경(異境)’은 서로 다른 경계를 뜻하는, 우리 일상에 무수히 드리워진 이쪽과 저쪽을 의미한다. 시인이 바라보는 경계는 “아무도, 그 경계선을 지워내지 못하는” 원형적이면서도 운명 같은 선이다. 다른 작품 ‘18월’에도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담겨 있다. ‘금기’를 스스로 설정한 시인의 속내는 작품에 대한 치열한 열정으로 읽힌다. “사랑은 스무날에 한 번씩 왔다가 갔다/ 마야달력은 18월 뒤에 닷새를 추가했다// 남겨둔, 허기로 굶는 날// 너라는 울(鬱) 속에 있다”
전체적으로 작품은 기본적인 정형시의 틀을 유지하면서 자유시의 방식이 혼합돼 있다. 두 장르의 ‘이경(異境)’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형국이라고 할까. 염 시인은 “어떤 분들은 시조 형식의 분방함과 난해성을 견디기 힘들다고 말하는 반면에 어떤 분들은 자유시의 싱거움이 느껴진다고 한다”며 웃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문학의 길로 들어섰을까. 오지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던 무렵 소설 창작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업무에 쫓긴 나머지 표현의 욕구를 좇아 자연스럽게 시를 쓴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대학시절에는 정기 간행물실에서 살다시피했다”고 한다. 이른 아침부터 기다렸더니 언젠가부터 자신에게 열쇠를 맡겨두더라는 것이다.
그는 언급한대로 시와 동시, 시조, 평론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장르에서 창작활동을 한다. 보통의 각오와 노력 없이는 지속하기가 어렵다. “같은 갈래에 속하므로 글쓰기의 원리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한편으로 “평론을 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하니 시 창작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앞으로도 그는 다양한 경계를 오가며 창작을 계속할 참이다. “문학은 저의 동반자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문학에 무한정 다리가 푹 빠져서 마침내 한 몸이 된 상태지요. 문학이, 아니 시가 세상을 구원해 주지는 못하겠지만, 이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치유의 시간을 주지 않나 싶습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염창권 시인은 시와 시조, 동시, 평론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그려낸다. 한마디로 그는 시를 다채롭게 변주하는 다재다능한 문학인이다. 광주교대 교수로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것까지 하면, 문학적 재능을 십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마야 달력에는 ‘18월’까지 달이 있다고 합니다. 한 달이 20일이니 360일에 5일을 더하면 365일의 태양력이 완성되지요. 나머지 5일은 ‘우아옙’(Uayeb)이라 하는데 이 날들은 금식 기간으로 불길한 것을 쫓기 위해 스스로 고통에 처하는 날이지요. 사랑을 잃거나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5일간의 고통스러운 기간을 통해 자기점검을 하죠.”
“민소매 끈 지나간 곳, 가늘은 선 그어져 있다// 세상에서 가장 멀고// 힘들게 건너가서는/ /아무도, 그 경계선을 지워내지 못한다”(‘이경(異境)’전문)
‘이경(異境)’은 서로 다른 경계를 뜻하는, 우리 일상에 무수히 드리워진 이쪽과 저쪽을 의미한다. 시인이 바라보는 경계는 “아무도, 그 경계선을 지워내지 못하는” 원형적이면서도 운명 같은 선이다. 다른 작품 ‘18월’에도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담겨 있다. ‘금기’를 스스로 설정한 시인의 속내는 작품에 대한 치열한 열정으로 읽힌다. “사랑은 스무날에 한 번씩 왔다가 갔다/ 마야달력은 18월 뒤에 닷새를 추가했다// 남겨둔, 허기로 굶는 날// 너라는 울(鬱) 속에 있다”
전체적으로 작품은 기본적인 정형시의 틀을 유지하면서 자유시의 방식이 혼합돼 있다. 두 장르의 ‘이경(異境)’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형국이라고 할까. 염 시인은 “어떤 분들은 시조 형식의 분방함과 난해성을 견디기 힘들다고 말하는 반면에 어떤 분들은 자유시의 싱거움이 느껴진다고 한다”며 웃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문학의 길로 들어섰을까. 오지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던 무렵 소설 창작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업무에 쫓긴 나머지 표현의 욕구를 좇아 자연스럽게 시를 쓴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대학시절에는 정기 간행물실에서 살다시피했다”고 한다. 이른 아침부터 기다렸더니 언젠가부터 자신에게 열쇠를 맡겨두더라는 것이다.
그는 언급한대로 시와 동시, 시조, 평론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장르에서 창작활동을 한다. 보통의 각오와 노력 없이는 지속하기가 어렵다. “같은 갈래에 속하므로 글쓰기의 원리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한편으로 “평론을 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하니 시 창작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앞으로도 그는 다양한 경계를 오가며 창작을 계속할 참이다. “문학은 저의 동반자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문학에 무한정 다리가 푹 빠져서 마침내 한 몸이 된 상태지요. 문학이, 아니 시가 세상을 구원해 주지는 못하겠지만, 이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치유의 시간을 주지 않나 싶습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