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오아시스와 같아요. 가까이 가면 멀어지니까요. 어쩌면 잡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그렇기에 소설은 죽음을 닮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 또박또박 발자국을 남기는 자체가 죽음과 가까워지는 작업이니까요.”

차노휘 작가는 삶은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삶은 소설을 위한 구체적인 행위라고 정의한다.

오랜만에 만난 차노휘 작가는 따끈따끈한 장편소설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 들린 첫 장편 ‘죽음의 섬’(청어)은 제목부터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소설이 죽음과 닮았다”는 작가의 말을 듣고 실상 제목에 ‘죽음’이 들어 있는 소설을 받았을 때의 느낌은 강렬했다. 뭐랄까, 섬뜩하면서도 호기심을 유발하는 그런 느낌.

광주일보 신춘문예(2009) 출신인 차 작가의 이번 장편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소름끼치는 공포’로 가득하다. 미스터리한 사건 속에 전개되는 서사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재작년 여름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와서는 차 작가가 “소설을 하나 쓰고 있다”는 말을 했었다. 이번 신작이 그때 말한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시간이 참 빨리도 간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 포기하지 않고 장편을 풀어낸 작가의 뚝심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소설은 뵈클린의 ‘죽음의 섬’이라는 그림이 모티브가 됐어요. 다섯 개의 버전 중에서 1880년대 최초로 완성한 일종의 추모그림입니다. 젊어서 미망인이 된 마리 베르나의 요청으로 그렸다고 하지요.”

차 작가는 이 그림에서 배어나오는 어두우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 압도당했다고 한다. 조각배 뱃머리에 관이 실려 있는 그림이다. 바로 옆에는 생사를 알 수 없는 사제가 기도를 하고 있고, 뱃사공은 태연히 노를 젓는다.

“조각배가 미끄러지듯 바위섬으로 흘러가는데 그곳에는 사이프러스가 몇 그루 있습니다. 바깥쪽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묘혈이 있구요. 타르처럼 검고 깊은 바다는 적막과 고독을 담고 있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죠.”

차 작가는 등단작과 첫 소설집에서 죽음과 욕망의 문제를 탐색했다. 소설가나 시인,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도 첫 입문의 주제를 이후의 창작에서도 천착하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평생을 걸쳐 단 하나의 주제를 새롭게 변주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생경하지는 않다.(물론 일정한 주기를 두고 주제를 달리하는 예술가들도 있지만)

차 작가는 이번 장편을 수년 전에 구상했다. 모티브가 숙성이 되고 온전한 이야기로 발전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렸던 모양이다. 그러나 막상 작품을 집필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전체 분량을 3개월 만에 채웠다. “디테일한 묘사와 전체적인 구조를 아귀에 맞게 배열하는데” 공이 들었다는 얘기다.

소설은 27세의 설지원이라는 청년이 별장지기 구인광고를 보고 ‘영무도’라는 섬에 도착하면서 전개된다. 지원은 일을 시작하면서 점차 이상한 점을 발견하는데 섬 사람들이 자신을 보면 시종일관 웃는다는 사실이다. 얼마 후 지원은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외부와 차단된 섬에서 지원은 알 수 없는 울음소리를 듣게 되고 금지구역인 별장 2층과 3층에 들어간다.

소설은 현실과 환상을 수시로 넘나들며 전개된다. 차 작가는 “어디가 현실이며 어디가 환상인가를 이야기 곳곳에서 더듬게 만들고 싶었다”며 “각 절마다 제시된 주인공의 얘기는 ‘죽음의 섬’의 골격”이라고 했다.

최수웅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추천사에서 “차노휘의 소설에서 공포를 느꼈다면 강렬한 소재나 긴박한 진행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 우리시대의 불확실성을 감지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평한다.

차 작가는 이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지난 2017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했다. 철저하게 자신과 대면하고 싶어 무작정 산티아고로 떠났다. “발톱 4개가 빠지고 왼쪽 발바닥 피부가 다 벗겨지는” 절박한 상황에도 직면했지만 끝까지 완주를 했다. 걸으면서 때때로 소설을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무한한 자유를 느꼈다.

현재 차 작가는 창작활동 외에도 광주대에서 시간강사를 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박사논문을 쓰느라, 창작과 학문이라는 두 과정에서 줄타기를 해야 했다.

“박사논문이 통과되기까지 적잖이 에너지를 소비하기도 했지만 얻은 것도 많습니다. 당시에 ‘죽음의 섬’ 소설이 모 문학상 공모에 본심까지 올라가기도 했지요. 그러나 출판을 하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죠.”

차 소설가는 꾸준히 소설을 쓰다보면 언젠가는 “진정한 소설과 조우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인생이라는 길 위의 삶이 소설로 가는 길이라면 그 흔적들을 제대로 남기고 싶습니다. 요령 피우지 않고 내 힘으로, 물론 보폭을 존중하면서요. 무엇보다 걷는 것 자체를 즐기면서 그렇게 오늘을 살고 싶습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