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에게 물었다. “천리포 수목원에서는 어떤 나무를 봐야 하는지?” 그는 ‘목련’이라고 답했다. 4월말부터 5월초 사이에 목련을 보러 가면 ‘아마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한 그 역시 목련과 깊은 인연이 있다. 20여 년 전 기자를 그만두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수목원에 머무를 때다. 12월에 핀 ‘리틀 젬’(태산목)이라는 목련을 만나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후 나무에서 인문학적 이야기를 듣는 칼럼니스트로 변신했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 큰 맘 먹고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에 자리한 천리포 수목원을 찾았다. 마침 4회 목련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수목원은 문자 그대로 ‘만화방창’(萬化方暢: 따뜻한 봄날에 온갖 생물이 나서 자라 흐드러짐)이라 할 만했다. 그중에서 목련은 수목원 내 연못 주변에 만개해 있었다. 스펙트럼, 지니, 불칸, 골든 걸, 빅 버사, 콜럼너 핑크 등 품종마다 색깔과 모양이 조금씩 달랐다.

이곳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을 만들어 40여 년간 가꾼 이는 ‘민병갈’(미국명 칼 페리스 밀러, 1921~2002)이란 사람이다. 미국 태생인 그는 한국을 사랑해 1979년 귀화했다. 1962년 모래땅 3000평을 처음 매입한 후 개인 재산을 들여 18만 평으로 늘렸다. 현재 목련류 700종을 비롯해 호랑가시나무류, 동백나무류, 무궁화류 등 1만6000여 종의 수목을 갖추고 있다.

그는 목련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고 한다. 파종 실험을 하며 변종 목련 ‘라스베리 펀’을 얻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1996년 101세로 세상을 떠나자 천리포 숙소 마당에 이 목련을 심어 아침마다 ‘굿모닝 맘’이라고 문안 인사를 했단다. 그 역시 타계한 지 10년이 지난 2012년 4월, 수목원 내 태산목(리틀 젬) 아래에 수목장으로 안장됐다.

수목원 중앙에 자리한 ‘민병갈’ 흉상 좌우에는 그가 잠든 ‘리틀 젬’과 그의 어머니가 좋아했던 ‘라스베리 펀’이 나란히 심어져 있다. 생전에 한번 만나지 못해 아쉬운 ‘큰 인물’ 민병갈. 한국을 사랑했고 목련을 좋아했던 그의 향기가 목련과 함께 퍼지고 있는 것만 같다.

/송기동 문화2부장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