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있는 박찬호가 KIA 타이거즈 내야 지도를 바꾼다.

KIA는 지난 17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사직 원정에서 10회 연장 승부 끝에 6-8 끝내기패를 당했다. 진한 아쉬움이 남았던 이날 경기에서 박찬호의 아쉬움은 더 컸다.

이날 박찬호는 강적 레일리를 상대로 중앙 담장을 넘기며 프로 데뷔 홈런을 기록하는 등 첫 3안타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볼넷으로 출루한 연장 10회에는 박준태의 우익수 플라이 때 스타트를 끊었다가 주루사를 기록했다. 잊지 못할 짜릿한 홈런과 아쉬웠던 실수가 동시에 기록된 날이었다.

박찬호는 “프로 첫 홈런을 기록했지만 주루사를 당했다. 기대했던 역할을 하지 못해 아쉽다”고 17일 경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찬호는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이다. 지난가을 제대 후 복귀를 준비했던 박찬호에게 예상보다 빨리 기회가 왔다. 주전 유격수 김선빈이 허벅지 통증으로 재활군이 되면서 그는 지난 5일 엔트리에 등록됐다.

콜업과 함께 유격수 겸 9번 타자로 나서 복귀전을 치른 박찬호는 첫 타석에서 유격수 앞 내야 안타를 기록했고, 무엇보다 기대했던 수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수비’ 역할을 기대했지만 박찬호는 손맛까지 보는 등 17일까지 9경기에서 0.357의 타율과 0.438의 출루율을 기록하며 김선빈의 공백을 잊게 했다.

군대에서 웨이트에 신경을 쓰면서 몸과 힘을 키우는 데 주력했던 박찬호는 “생각했던 것 보다 기회가 정말 빨리 왔다. 이제는 뒤가 없다. 욕심이 많이 났다. 내 것을 만드는 데 신경 많이 썼다”며 “군대에서 틈나는 대로 스윙 연습도 많이 했지만 공을 안쳐봤다는 게 고민이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생각보다 빨리 적응됐다. 제대하고 1주일 정도 공을 치면서 감을 잡았다. 그리고 힘도 많이 붙고 군대 가기 전보다 훨씬 낫다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또 “예전에는 맞추기만 했는데 지금은 내 스윙을 끝까지 돌리고 있다. 예전에는 잡힐 타구가 야수 넘어가기도 하고, 내야를 빠져나기도 한다. 그만큼 더 내 스윙을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잘 준비된 과정과 ‘약속된 내일’이 박찬호의 타격 실력을 끌어올렸다.

“예전에는 방망이가 방망이 치는 게 아니었다. 타석에 들어가면 나도 불안했었다”며 웃은 박찬호는 “아직 많은 경기를 하지 않아서 평가를 하기는 이르지만 내 리듬이 생긴 것 같다. 또 내일이라는 게 있으니까 생각하는 게 달랐다. 팀 상황으로 기회를 계속 받을 수 있었다. 지금 이 타석에서 결과가 안 좋아도 다음 기회가 있다는 생각에 여유있게 경기를 했다. 그런 부분이 컸다”고 말했다.

박찬호는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내야 경쟁 구도에 변화를 줬다. 하지만 아직 박찬호가 갈 길은 멀다. 앞으로도 꾸준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돌아온 김선빈의 벽도 넘어야 한다.

박찬호는 “군대 가기 전에도 자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때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웃음). 그 때는 할 사람이 없어서 나간 것이었다”며 “나름 열심히 준비했고 자신감도 생겼다. 치는 것은 기복이 있는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우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역시 내가 보여줄 것은 수비인 것 같다. 좋은 모습으로 앞으로도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김여울 기자 wool@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