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들어선 우린 곧장 추억에 빠져들었다. 캐리커처가 그려진 음반,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 공연을 알리는 낯익은 팸플릿, 그리고 그의 목소리. 친구는 “학교 다닐 때 ‘서해에서’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나는 ‘북한강에서’를 좋아했다고 했다. 청아한 박은옥의 목소리로 부르는 ‘서해에서’, ‘봉숭아’와 읊조리는 듯한 정태춘의 목소리가 머릿 속에 재생됐다.

출장 중 짬을 내 들른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정태춘 박은옥 40주년 기념전-다시, 건너간다’(29일까지)전을 만났다. 임옥상·강요배·이철수·노순택 등 쟁쟁한 시각예술가 54명이 참여한 대규모 기획전이다. 한명의 대중가수를 기억하기 위해 이 많은 사람이 모인다는 게 놀라웠다. 트리뷰트 음반과 기념 공연 등은 가끔 있었지만 이처럼 대규모 전시는 드물다. 여기에 심포지엄까지 열릴 예정이라고 하니 행사 규모가 예사롭지 않다. 두 사람은 14개 도시 순회공연도 연다. 정태춘이라는 예술가는 참으로 행복하겠다 싶으면서, 한편으로는 그의 삶과 노래가 그만큼 의미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 대중음악사는 정태춘을 음유시인으로, 풍류가객으로, 자유의 상징으로 명명한다. 그의 음악을 들어온 이들 중 어떤 이는 ‘촛불’, ‘시인의 마을’, ‘사랑하는 이에게’ 등 서정적 이미지로 그를 기억한다. 어떤 이는 음반 사전심의제 철폐와 평택 대추리(정태춘의 고향이다) 미군기지 이전 반대운동 등을 하며 발표한 ‘92장마, 종로에서’, ‘5·18’ 등 노래운동가로 그를 기억한다.

인터넷으로 오랜만에 노래를 찾아들었다. 예전 음반도 좋지만 얼마 전 라디오 프로에서 부른 ‘북한강에서’는 65세 할아버지의 담담한 목소리가 담겨 더 마음에 닿았다.

“강물속으론 또 강물이 흐르고/ 내맘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치며 흘러가고/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또 가득 흘러가오/ 아주 우울한 나날들이 우리곁에 오래 머물때/ 우리 이젠 새벽강을 보러 떠나요/ 강으로 되돌아 가듯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 처음처럼 신선한 새벽이 있소/ 흘러가도 또 오는 시간과/ 언제나 새로운 그 강물에 발을 담그면/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천천히 걷힐거요.”

맞다. 그가 쓴 가사는 한편의 ‘시’다.

/김미은 문화부장mekim@